“이재명·김기현 대표님 ‘노빠꾸탁재훈’ 강추합니다”[김영상의 오지랖]
병립형·위성정당 택일 움직임 감지
그러면 이재명 대표 정치공약 깨는셈
병립형 원하는 국힘은 은근슬쩍 반색
소수정당 설자리 점점 없는 ‘빠꾸’로?
일부에선 “양당 독식체제 공고” 비판
요즘 ‘노빠꾸탁재훈’ 유튜브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악마의 입담’을 내세운 개그 천재 탁재훈의 거침없는 화술을 보는 묘미가 장난이 아니다. 구독자가 무려 146만명인데, 탁재훈의 거침없는 말솜씨에 녹아난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얼마전 가수 이효리가 출연했는데, 내내 배꼽을 잡고 웃을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제목이 왜 노빠꾸일까, 이런 생각이 든다. 알아보니 ‘후진없는 입담’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의미로 이렇게 정했단다. ‘노빠꾸’란 말이 속어나 비어인가 했더니 네이버 어학사전에도 그 뜻이 소개돼 있다. ‘노빠꾸=No Back을 한국식으로 표기한 것. 여러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러나지 않고 돌진하는 것’이란다. 출연자들 속내를 과감히 벗겨 시청자를 무조건 즐겁게 해주겠다는 프로그램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좌고우면 없이 직진’하겠다는 기획 의도가 대박 유튜브의 비결인 듯 하다.
정치권에 ‘빠꾸(Back)’ 움직임이 감지된다. 선거제 개편을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내부 분위기가 그렇다. 현행 선거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지난 2019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 제도가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이는 20대 국회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합의됐다. 준연동형은 전국 정당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수가 적을 경우 모자란 의석수 일부를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2016년 총선때까지는 정당득표율로 비례대표(47석)를 배분하는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돼 왔다. 지역구든, 비례대표든 승자 독식구조 성격이 강했다.
준연동형으로 바꾼 대의적 명분은 사표가 되는 소수의 의견을 반영하고, 승자 우선주의의 판을 깨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 물꼬를 터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속내는 민주당의 검찰개혁 패스트트랙을 위한 것이었지만, 향후 의석수 확대를 기대했던 정의당 역시 반색하면서 일부 논란의 이슈에 대해선 눈을 감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위성정당 출현이라는 기형적인 구조를 출산했다. 2020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은 비례대표용 위성정당(미래한국당) 창당으로 반격했고 19석을 얻었다. 뒤늦게 민주당 역시 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 창당에 가세, 17석을 얻었다. 정의당은 겨우 5석 얻었다. 정의당이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왔다. 결국 준연동형은 소수 정당의 국회 진입 문턱을 낮추겠다는 취지와 달리 위성정당을 탄생시킴으로써 소수 의견도 존중한다는 비례성을 잃었고, 구태의연한 ‘꼼수 정치’만 키웠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거대 양당이 편법으로 독식구조만 더 챙겼고 소수 정당은 더 설자리를 잃는 ‘역주행’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몇년간 민주당 일부 의원은 물론 다른 야당, 진보성향 시민단체는 ‘위성정당 없는 선거제’로의 개편을 요구해왔다.
이를 의식했을까.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2월 대선공약으로 ‘비례대표제를 왜곡하는 위성정당 금지’를 필두로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 개혁 ▷비례대표 확대 내용의 정치개혁 분야 공약을 내걸었다. 지난해 8월의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자리에선 “정치공학이나 선거의 유불리, 향후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정치개혁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했다.
최근 분위기는 이 대표의 약속과는 다른 양상이 노출된다. 여야는 최근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 개편을 협상 중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논의 중인데, 지역구 소선거구제(다득표자 당선)를 유지하되, 현행 전국 단위 비례대표제를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쪽으로 의견 접근을 이뤘다고 한다. 다만 국민의힘은 병립형 비례제를,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제를 선호하는것으로 알려졌다. 거대 야당 앞에서 ‘여소야대’ 설움을 받아온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한 석이라도 더 얻을 수 있는 쪽을 목표로 두고, 이 안의 의원총회 추인을 받았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최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편집인 포럼에서 선거제 개편 방향에 대해 “연동형으로 갔으면 좋겠고, 위성정당 방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라고 함으로써 민주당 역시 연동형 비례제 쪽으로 기울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흐름이 바뀌었다. 이재명 대표의 말 한마디가 그런 역할을 했다. 이 대표는 지난 28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내년 총선과 관련해 “이상적인 주장으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현실의 엄혹함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지금 이 폭주와 과거로의 역주행을 막을 길이 없다. 지금은 국회에서 어느 정도 막고 있지만 국회까지 집권여당에 넘어가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이 윤석열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한 석이라도 더 차지해 1당 또는 과반 이상의 당이 되기 위해선 병립형 또는 위성정당 중 택일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런 쪽으로 귀결되면 이 대표가 자신의 대선공약을 철회하는 게 된다. 소수 의견을 비례적으로 반영하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당초의 정치개혁안에서 스스로 후퇴하는 셈이다. 정치인으로서의 신뢰성에 흠집 날 수 있는 사안이기에 이 대표가 ‘리스크’를 자임하는 셈이기도 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표가 ‘선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실리에 고민하는 것 같다”며 “야당의 의석수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의식한게 분명하다”고 했다.
민주당 내부는 이 대표의 의중에 촉각을 기울이면서 주시 중이다. 그 현실론에 수긍하는 이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각에선 ‘소탐대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두관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약속과 명분을 지키는 지도자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는 제목의 글에서 “정치개혁을 약속했는데, 당 지도부가 병립형 비례를 놓고 여당과 야합할 것이란 소식이 들리는데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병립형으로 야합하면 우리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선거운동을 하고, 무슨 염치로 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총선에서 의석을 늘려야 한다며 병립형 방향을 정한 여당에 휩쓸리면 대의명분을 잃고 야합마저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작은 이득에 취해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20일 한 방송에 출연해 “이재명 대표께서 이미 우리는 위성정당을 안만든다는 약속을 여러차례 했다”며 “이제는 침묵을 깨고 약속을 지킬 때”라고 했다.
이 대표의 멘트 이후 민주당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민주당은 선거제 개편안 논의 등을 위해 29일 오후 의원총회를 열기로 했는데, 이를 30일로 하루 늦췄다. “보다 많은 의원님의 참여 속에 선거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더 충분한 시간 동안의 논의를 위한 것”이란게 연기 사유였다. 전날 이 대표의 ‘메시지’와 관련해 정리가 덜됐고, 하루정도 더 숙고할 시간이 필요한 게 연기 배경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민주당에선 현재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와 병립형 회귀를 놓고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은 현행 준연동형을 유지하되 비례 위성정당 창당 금지 입법을 해야 한다는 데 무게가 실렸으나, 최근 총선 의석수를 가능한 많이 모아야 한다는 실리 쪽도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이미 병립형으로 의견을 모은 가운데, 민주당 흐름을 지켜보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의석수 과반 이하인 국민의힘으로선 독자적으로 선거법 개편을 주도할 힘이 없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적극적인 의지가 없으면 선거법 개편은 현재 불가능하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은근히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결론을 몰아주기 바라는 눈치인데, 이를 기반으로 활용하면 내년 총선에서 ‘힘있는 여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한때 국회의원수 10% 감축안을 내놓으면서 그 내용에 시선이 쏠리기도 했다. 현행 300명인 의석수를 270명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배경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 역시 과반 이상의 거대야당을 견제하기 위한 하나의 제안이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내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채 병립형을 택하지 못하고 현행 준연동형을 유지할 경우엔 위성정당을 창당하겠다는 입장이다. 만약의 경우 생길 ‘이준석 신당’ 등의 창당이 국민의힘으로선 밑질 게 없다는 자체 판단이 그 배경에 깔렸다. 김기현 대표는 원내대표 시절 “현재의 준연동형으로 선거를 치른다면, 우리는 위성정당을 내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한 적 있다. 이런 스탠스는 여전해 보인다. 야당의 특정 이슈몰이에 눈에 불을 켜고 경계하던 여당이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유독 잠잠한 것은 이와 관련이 크다. 야당의 흐름에 혹시라도 있을 어부지리를 겨냥했다.
결국 선거법 개편과 관련해서 여당과 야당의 시선은 어떻게 하면 의석수 한 석이라도 더 차지해 내년 총선 이후 정국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한다는 데 꽂혀 있다. 그동안 몇년간 겉으로 주창해왔던 소수 의견의 정치적 참여 확대, 비례성에 입각한 소수정당의 정치 참여 문 확장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여야의 관심은 의석수 독식 여부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 27일 서울대 강연 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안타깝습니다. 정치권에서 선거법 개정 논의가 한창인데 그 중요성에 비해 국민들 관심이 적어서입니다. 정치판을 바꾸는 중요한 문제를 ‘그들만의 리그’에 맡겨서는 안됩니다”. 그러면서 “선거법과 선거제도는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들이 있습니다”라며 “거대 정당이 기득권을 유지, 확대, 독식하는 병립형으로 회귀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정치판을 사기의 장으로 몰았던 위성정당과 같은 꼼수도 안됩니다”라고 덧붙였다. 김 지사는 평소 정치가 더이상 승자독식의 판이 돼선 안되고,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는 새로운 정치 판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병립형 또는 위성정당은 기득권에 매몰된 정치를 뜻하며 다양성 기반의 정치문화에 치명적인 독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 눈길을 끈다.
현재 흐름은 이렇듯 소수정당 몫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의석을 양당이 하나라도 더 챙기겠다는 쪽으로 정리되는 듯 하다. 다만 선거제 개편 시간표는 넉넉치는 않아 보인다. 정치권은 선거법 개편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개편을 한다면 소수 의견을 존중해 비례성을 강화하겠다는 그동안의 암묵적 합의방향에서 ‘노빠꾸’할 것인가, ‘빠꾸’할 것인가. 대의명분을 살리는 이와 잃는 이, 실리를 챙기는 이와 잃는 이, 훗날 긍정평가를 받을 이와 부정평가를 받을 이…. 향후 방향성과 실천론을 두고 다양한 군상이 생길 것이다.
김영상 논설실장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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