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선거법 사기극, 두 번은 안된다

노동일 2023. 11. 2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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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연동형 선거법은 ‘미끼’
권역별비례제 등 중재안
경기 규칙은 합의가 원칙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한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은 잘못 끼운 단추였다. 공수처 설치법 처리를 위해 정의당 등이 원한 선거법 개정을 미끼로 낸 동기부터 불순했다. 여야 합의 처리가 관례인 선거법을 당시 제1야당(자유한국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소수 야당들이 일방 처리한 절차도 큰 잘못이다. 개정안은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 연동형을 도입하고, 17석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나누는 '준연동형'을 도입하는 내용이었다. 설명도 이해도 힘든 방식이다.

"국민들은 산식을 알 필요 없다"는 망언이 달리 나온 게 아니다. 결과는 다 아는 대로 비례와 지역구를 합쳐 거대 양당이 전체 300석 중 286석을 차지하였고, 정의당 등 소수당은 더 위축되었다. 이처럼 개정 선거법의 동기, 절차, 내용, 결과 모두 문제라면 원점 재검토가 정도이다. 단추가 엉켰을 때는 첫 단추부터 다시 끼우는 게 바른 해법이다.

국민의힘이 과거처럼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자와 정당에 각각 1표씩 던지는 '병립형'을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지지 여부를 떠나 기형적인 준연동형보다 더 나은 제도가 없다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 민주당은 지도부가 눈치를 보는 사이 일부 의원들이 현행 제도 유지를 전제로 위성정당방지법을 발의했다. 병립형을 재도입하는 건 거대 양당의 야합이요 정치개혁의 후퇴라는 주장이다. 위성정당 없는 준연동형비례제를 통해 다당제가 이루어지면 정치가 발전할 것이라고 한다. 동의하기 어렵다.

준연동형 폐지가 '정치개혁의 후퇴'라는 말부터 쓴웃음이 나온다. 21대 국회가 '정치개혁'이 되었는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불량정치인들이 대거 국회에 들어온 통로가 준연동형 비례라는 꼼수이다. 위성정당이 문제가 아니고 비례전문 정당이라는 황당한 장치가 문제이다.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국회 상황에 눈을 감고 정치개혁 후퇴를 운운하는 강심장이 놀랍다. 위성정당만 막으면 다를 것이라는 꿈도 몽상이다. 바야흐로 '비례 신당' 창당을 대기 중인 인물과 세력을 보라. 개혁적이고 정치발전에 도움이 될 이들이 과연 있는지. 21대 총선에서는 35개 비례정당이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에는 더 많은 정당이 나올 것이다. 정면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기 어려운 인물들이 2~3석을 노린 비례전문 정당을 만들도록 돕는 게 정치개혁이라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다당제가 양당제보다 낫다는 근거도 없다. "어느 특정한 선거제도가 다른 선거제도와 비교해 반드시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위헌 결정에서 나온 헌재의 의견이다. 위성정당방지법 내용을 보아도 결국 위성정당은 금지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정당설립과 정당활동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 특히 준연동형 유지를 강력히 주장하는 속내는 따로 있어 보인다. 현재 운위되는 조국, 송영길, 이준석 신당 등의 공통점은 친민주당(반국민의힘)이다. 어떤 무리수를 쓰더라도 위성정당방지법을 강행처리하면 국민의힘 손발을 묶고 친민주당 세력이 비례의석을 독식할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진보세력 200석' 운운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선거법 개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여야 합의 처리 관행을 되살리는 것이다. 양 팀이 축구를 하기로 했다면 11명의 선수가 경기하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상대 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15명 선수' 룰을 일방적으로 만들어 경기를 강행한다면 그건 개혁이 아니라 힘을 앞세운 행패일 뿐이다. 지난번 선거법 개정 과정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김진표 의장의 권역별비례대표제 등 중재안도 나와 있다. 김형준 교수는 "21대 총선의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성형이 잘못된 괴물"이라며 "민주당의 공수처 통과를 위한 '미끼상품'에 정의당이 속은 것"이라고 했다. 정의당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속인 게 준연동형선거법이었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는 사람이 바보라 했다. 정치개혁으로 포장된 선거법 사기극에 두 번 속을 수는 없다.

dinoh7869@fnnews.com 노동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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