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엔 불황 없다” 중 산유·일 구사마가 휩쓴 경매···한국 이우환 유찰 ‘고전’
‘중국의 마티스’ 산유 작품 310억원대 판매
구사마 ‘꽃’은 작가 작품 두번째 최고가
한국 작품 7점 가운데 4점만 낙찰
정상화·박서보·이성자 ‘선방’
“이우환·박서보 다음의 젊은 작가 발굴 필요”
“1억4500만(홍콩달러)!”
“1억5000만!”
“아직 당신 것이 아닙니다. 더 입찰할 분 없나요?”
“1억6000만!”
마침내 경매사가 경매봉으로 “탕” 탁자를 내리쳤다. 지난 28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2023 하반기 이브닝 경매에서 ‘중국의 마티스’로 불리는 산유의 1929년작 ‘태피스트리 위의 누드(Nude on Tapestry)’가 수수료 포함 약 311억원(1억8737만 홍콩달러)에 판매되는 순간이었다. 경매장에서만큼은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인 프랜시스 벨린도 고객의 전화를 받고 경매에 응찰하느라 분주했다. 전화, 온라인, 현장 입찰을 오가며 치열하게 진행된 경매에서 산유의 그림은 직접 응찰한 현장 구매자에게 돌아갔다.
28~29일 열린 크리스티 홍콩 하반기 경매에서 가장 뜨거운 작품은 산유의 누드화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산유는 서양의 유화에 동양적인 미를 더해 파리 미술계를 매료시킨 화가다. 크리스티안 알부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부회장은 “이번에 판매된 산유의 누드화는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작품으로, 이번 경매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판매된 누드화는 몸의 윤곽이 동양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곡선으로 이뤄져, 동양과 서양의 조화가 절묘하게 이뤄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산유의 작품은 매번 경매의 ‘대표작’으로 출품된다. ‘다섯 나부들’은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459억원에 판매됐다.
‘땡땡이 호박’으로 유명한 일본의 현대미술가 구사마 야요이의 ‘꽃(A Flower, 2014)’은 7812만5000홍콩달러(약 130억원)에 낙찰되며 구사마의 작품 가운데 두 번째 높은 경매가를 기록했다.
“좋은 작품엔 불황이 없다.”
이학준 크리스티 한국 대표는 이번 경매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이 대표 또한 고객의 전화를 받고 경매에 입찰했는데, 구사마의 ‘Infinity-Nets’(2014)는 2457만5000홍콩달러(약 41억원)에 낙찰됐다.
경기 침체로 인해 미술품 경매시장이 경직된 가운데 시장에서 검증된 중국과 일본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들은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
한국 작가의 작품은 총 7점이 출품됐지만 4개 작품만 낙찰됐다. 지난 5월 상반기 경매에서 한국 작가 작품이 100% 낙찰된 것에 비하면 아쉬운 결과다. 작품의 보존 상태가 좋지 않고, 한국의 차가운 미술품 시장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경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이브닝 경매에서 정상화의 ‘무제 85-12-A’(1985)가 최고 추정가 180만홍콩달러(약 3억원)를 넘어 302만4000홍콩달러(약 5억원)에 판매됐다. 짙은 푸른색의 물감을 입체적으로 덧칠해 깊이감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새 주인은 홍콩 소장가로 알려졌다.
최근 세상을 떠난 박서보의 ‘묘법’은 29일 진행된 20세기 데이 경매에서 264만6000홍콩달러(약 4억원)에 낙찰됐고, 이성자의 ‘무제’ 시리즈 2점이 69만3000홍콩달러(약 1억2000만원), 37만8000홍콩달러(약 6000만원)에 판매됐다.
이우환의 작품은 이번 경매에서 아쉽게도 모두 유찰됐다. 지난 상반기 경매에서 이우환의 ‘다이얼로그’(2020)는 19억원에 판매되며 다이얼로그 시리즈 가운데 최고가를 경신했기에 이번 경매에서도 결과가 주목됐다. 이브닝 경매 출품작 ‘점으로부터’(1977)는 작품이 보관 중 침수 피해를 입으면서 훼손돼 상태가 온전치 않아 유찰됐으며 20세기 데이경매에 나온 ‘조응’(1996)도 유찰됐다. 김창열의 ‘물방울’(1976)도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크리스티 홍콩 하반기 경매에선 ‘블루칩’ 작가들의 선전이 돋보였다. 경기 침체 영향으로 전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에 찬 바람이 부는 가운데 매년 경매에서 인기리에 판매되는 산유, 구사마 야요이, 요시모토 나라의 작품이 최고가 상위를 차지했다. 산유의 누드화, 구사마의 ‘꽃’에 이어 요시모토 나라의 ‘Bad Barber’(2000)가 5119만5000홍콩달러(약 85억원)에, 구사마의 인기작 ‘호박’(2013)이 4635만5000홍콩달러(약 77억원)에 판매됐다.
이 밖에 샤갈,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조지 콘도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출품됐다.
당초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실리 칸딘스키의 ‘짙은 빨강’(1927)이 출품돼 아시아 시장에 처음 소개될 것으로 주목받았지만, 직전에 취소돼 경매에 오르지 않았다.
28일 열린 ‘포스트-밀레니얼 이브닝 경매’는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출연해 인기를 끈 배우 저우제룬(주걸륜)이 기획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1970년대생 이후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출품된 ‘포스트-밀레니얼 이브닝 경매’엔 현시대를 가장 잘 대변하는 작품들을 선별했다고 크리스티 홍콩 측은 밝혔다. 지난해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른 1977년생 루마니아의 작가 아드리안 게니의 ‘눈꺼풀이 없는 눈’(2016)이 4272만5000홍콩달러(약 71억원)로, 가장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 반 고흐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받은 게니의 작품은 과거의 기억이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현재 한국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일본의 인기 작가 고헤이 나와의 ‘픽셀 사슴{PixCell-Deer 32)’은 819만홍콩달러(약 13억5000만원)에 낙찰돼 작가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28일 이브닝 경매의 평균 낙찰률은 88%, 판매 총액은 8억1223만3800 홍콩달러(한화 약 1344억 원)에 달했다.
이학준 대표는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선전한 경매였다. 한국 작가의 작품은 한국 미술시장이 어려운 점이 반영돼 아쉽게도 3점이 유찰됐다. 이브닝 경매에서 정상화의 작품이 최고 추정가를 훌쩍 넘어 판매된 것은 좋은 성과”라고 말했다.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부회장이자 크리스티 홍콩의 20세기·21세기 미술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알부는 27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번 경매에선 산유와 샤갈, 구사마 야요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나아가 젊은 근현대 신진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엿볼 수 있다”며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온 작가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어떤 관계가 형성되는지 볼 수 있게 작품들을 선별했다”고 말했다.
알부는 “이우환과 박서보는 세계 경매 시장에서 굉장히 사랑받는 작가들이다. 유명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진가를 알아보고 소장, 전시한다”며 “이우환은 동서양을 아우르며 다리를 놓는 작가로, 일례로 프랑스 남부 아를엔 반 고흐의 미술관과 이우환의 미술관이 공존한다”고 말했다.
알부는 “이우환과 박서보 뒤를 이을 젊은 작가들이 누구인지, 동서양을 아우르며 글로벌 무대에 오를 다음 작가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학준 대표는 “세계적으로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한국 미술품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K콘텐츠가 넷플릭스란 플랫폼을 통해 세계적 인기를 끌 수 있었듯, 크리스티가 세계 시장에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개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culture/art-architecture/article/202311301827001
홍콩 |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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