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정쟁에 동네북 된 R&D 예산
"R&D 예산이 여야의 정쟁 대상이 되고 있는게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할 뿐입니다." 내년 R&D 예산 삭감 후폭풍이 국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을 한탄스러워하는 연구 현장의 목소리다.
지난 6월 말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불거진 R&D 예산 삭감 여파가 이해 당사자인 과학기술계의 반발이 사그라 들기도 전에 민의의 전당인 국회로까지 일파만파로 커지는 모습이다. 여야는 지난 13일부터 국회 예결위 예산소위에서 예산안을 심사했지만 R&D 예산과 원전·신재생에너지 예산 등에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인 다음달 2일까지 R&D 예산 등을 놓고 한바탕 줄다리기를 이어갈 태세다.
시계를 지난 6월로 돌려보자. R&D 예산 삭감은 지난 6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의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연초부터 준비해 왔던 내년 R&D 예산을 3일 만에 졸속으로, 그것도 법정 기한을 넘겨가며 삭감된 예산안을 뚝딱 만들어 냈다.
내년 R&D 예산을 올해 31조1000억원보다 5조2000억원(16.6%) 대폭 삭감해 25조9000억원으로 예산안을 구조조정했다. 25개 출연연의 경우 주요 사업비의 25%가 일괄 삭감됐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는 내년도 R&D 예산은 혁신성이 낮은 사업들을 구조조정하고 그동안 누적된 비효율과 낭비 요인을 걷어내고, 미래 대한민국의 절박함에서 비롯됐다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IMF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삭감되지 않았던 정부 R&D 예산이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깎여 나갔는지, 그 누구도 명쾌하게 지금까지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국감에서조차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에게 퇴짜를 맞은 당초 R&D 예산안과 수정안 원본 데이터를 과기정통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받아 내지 못했다. 소위 깜깜이 방식으로 R&D 예산이 삭감된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이례적으로 내년 R&D 예산 삭감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국회 예산안 심의를 통해 재조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면밀한 타당성 검토 없이 불명확한 기준에 근거한 예산안이라고 일침을 놓은 것이다. 그동안 투입된 정부의 R&D 지출 성과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이후 6개월 가깝게 R&D 예산은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각됐다. 급기야 여야 이념과 노선 대립으로 확전됐다. 과반 의석을 앞세운 야당은 정부와 여당의 R&D 예산 삭감을 이념의 프레임 속으로 끌어 넣어 정쟁의 도구로 삼았다.
민주당은 정부 R&D 예산을 1조5000억원 복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당의 이념과 노선에 배치되는 원자력 생태계 관련 예산(1814억원)에는 칼날을 들이댔다. 대통령 공약이자 정부·여당이 강력히 추진하려던 글로벌 R&D 예산도 1조원 가량 감액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대신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를 계승하고자 신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을 4501억원이나 늘리는 거침없는 예산 폭주에 가담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R&D 예산을 놓고 여야 간 커다란 이견이 없었던 터라 올해 국회 예산 심의 풍경은 무척이나 생경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러다간 올해 예산 심사가 법정시한을 넘을 것으로 우려된다.
R&D 예산은 여야가 당의 노선과 이념, 그리고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증액·감액 여부를 다투는 정쟁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미래 대한민국의 먹거리 창출과 국가 신성장동력의 원동력이 R&D 예산이라는 이유에서다. 여야는 R&D 예산이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 근거에 바탕해 예산안 심사에 숙의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정부 R&D 예산은 여야가 만만하게 봐선 안 될 동네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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