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상상 속 서울’은 어디까지인가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서울’이라는 유령이. 2023년 10월3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후, 비단 두 도시뿐 아니라 수도권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다름 아닌 김 대표가 인정했듯 기실 운동장 금을 새로 긋는 일에 불과한 이 ‘정치쇼’가 주목받는 이유는, 서울이 갖는 ‘이름값’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든 살지 않든, 그리고 그것이 실재하는 서울이든 그렇지 않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름의 방식으로 서울을 상상하고, 애정하며, 갈망하고, 질투한다.
송은영의 <서울 탄생기>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며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기는 ‘현대도시’ 서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만큼 지은이가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는 텍스트는 1960~1970년대 활동한 주요 작가들의 작품 110여 편이지만, 작품에 대한 비평이나 평론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학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이를 든든한 밑천으로 여기는 지은이는 문학작품 속 서울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한편, 이를 실제 역사와 촘촘하게 교차한다. 작가들이 보고 듣고 겪으며 키워나간, 현실과 조응하지만 때로는 엇나가기도 하는 ‘서울 상상’이야말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첫머리를 장식하는 이호철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말해주듯 1960년대 초반 서울은 아주 넓기도 좁기도 한, 다시 말해 1963년 대확장으로 몸집을 크게 불렸지만 실질적으로 도시라 할 만한 곳은 일제강점기 경성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은 모순적인 공간이었다. 해방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과거 일본인 거주지가 ‘부촌’으로 여겨지던 서울은,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불도저’ 김현옥 시장의 취임으로 크게 달라진다. 이청준이 ‘신전’이라, 김승옥이 ‘기적’이라 불렀던 서울 하늘 아래 “지상의 방 한 칸”은, 조해일의 1971년 소설 <방>에서는 아무에게나 선뜻 내줄 수 없는 프라이버시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1970년대에 이르러 서울은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를 맞는다. 영등포 동쪽에 있어 ‘영동’이라 부르던 드넓은 논밭이 비로소 ‘강남’으로 개발된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도시 중산층, 그중에서도 여성들은 강남 아파트의 편리함과 안정감에 감탄하면서도 “닮은 방들”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물론 서울의 1970년대가 오로지 ‘획일화’ 일변도만은 아니었다. 이 시기 서울은 강남과 강북, 단독주택과 아파트 단지, 서민들의 신흥 주택가와 도시 빈민의 판자촌 등 다층적인 분화를 겪었다. 조세희의 1978년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보여주듯 이는 서울을 적대적인 계급투쟁의 장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제목처럼 막 만들어지던 태동기의 서울을 그려낸 이 책은, 자연히 오늘날 우리는 서울을 어떻게 인식하고 감각하고 상상하는지 질문하게 한다. 그때의 서울이 여전히 채워야 부분이 많은 도화지였다면 지금 서울은 북쪽으로는 파주, 남쪽으로는 천안까지 뻗어나갔다. 당연히 ‘서울 상상’도 서울이라는 행정구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소설가 장류진의 ‘판교 문학’,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 ‘서준맘’이 연기하는 동탄의 미시족, 높은 확률로 용인을 배경으로 하는 웹툰 학원물, 안산이나 시흥 같은 경기 서남부 도시들을 무대로 삼는 도시 괴담과 아포칼립스물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서울을 상상한다. 이 복잡하고 다양하며, 때로는 모순적인 오늘날의 ‘서울 상상’을 제대로 이해할 때, 비로소 서울 편입이라는 ‘난제’를 해결할 실마리도 보이지 않을까.
유찬근 대학원생 *역사책 달리기: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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