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엑스포 무산, 뼈아픈 90표차···‘박빙 승부’ 정부 예측 실패[뉴스분석]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밀려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에 실패했지만 예상보다 큰 득표 차로 충격은 배가됐다. 정부가 투표 직전까지 박빙 승부를 거론하며 대역전극을 기대한 것과 달리 결선 투표조차 만들지 못해 외교력과 정보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모든 것은 제 부족함”이라고 사과했지만, 근거 없는 장밋빛 전망에 대한 책임론 등 후폭풍이 예상된다.
부산은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투표국 165개국 중 29표(18%)를 얻어 2030년 엑스포 유치에 실패했다. 사우디 리야드가 1차 투표에서 119표(72%)로 3분의 2 이상을 받아 개최지로 확정됐다. 이탈리아 로마는 17표(10%)로 부산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부산엑스포 유치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는 결과 발표 직후 현지에서 “성원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해 대단히 죄송하다”며 “기대에 미치지 못해 송구스럽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아쉬운 결말을 드리게 돼 송구하다”고 말했다.
부산이 ‘오일 머니’ 자본력을 앞세운 리야드와 승부가 쉽지 않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90표 차이의 참패는 예상 밖의 결과다. 윤 대통령을 비롯한 민관이 막판 총력 유치전을 벌인 상황에서 정부는 투표 직전까지 “(리야드를) 어느 정도 따라왔다고 느껴진다”(지난 27일 한 총리), “박빙의 승부가 될 것”(전날 외교부 당국자)이라고 자신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1차 투표에서 사우디의 3분의 2 득표를 저지하고 결선 투표에서 역전한다는 전략을 구상하기도 했다.
정부가 판세를 정확히 읽지 못하며 외교력과 정보력 부재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외교부와 국가정보원에 ‘정보기능’이 존재했다면 적어도 이탈리아가 20표 수준임을 확인하고 무슨 수를 써도 70표를 확보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현실에는 눈을 감고 ‘벌거벗은 임금님’ 귀에 달콤한 정보만 올라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에게 현실적이지 않은 낙관적인 보고만 올라갔을 것이란 지적이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우리나라 외교 역사에서 이렇게 큰 표 차이가 나는 경우는 없었다. 결과를 매우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정확한 예측에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에서 “민관에서 접촉하면서 저희들이 느꼈던 입장에 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며 “유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대통령인 저의 부족의 소치”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담화 발표는 사전 예고 없이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예정된 국방혁신위원회 제3차 회의 일정을 취소하며 엑스포 유치 실패의 충격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과 달리 여권과 유치위에선 실패를 놓고 ‘남 탓’ 발언이 이어졌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박 시장 등은 문재인 정부가 유치전에 늦게 뛰어들어 불리했다고 주장했다. 유치위 자문을 맡은 김이태 부산대 교수는 프랑스 현지 브리핑에서 사우디의 왕권 강화 차원에서 이뤄진 ‘오일 머니’ 물량 공세로 저개발 국가들의 “금전적 투표”가 이뤄졌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예측 실패와 외교력 부족 등에 대한 자성보다는 전 정권 탓, 상대국 탓으로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다.
정부가 엑스포 유치에 사활을 걸었던 만큼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예상 밖의 큰 표차 패배는 국민들의 정부 신뢰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국정운영 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부산·경남(PK) 지역 민심을 수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유치 활동을 진두지휘한 한 총리 등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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