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훈칼럼] 은행의 펀드 판매 이젠 관두라

송성훈 기자(ssotto@mk.co.kr) 입력 2023. 11. 29. 17:00 수정 2023. 11. 29.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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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노교수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몇 가지 물어봤다.

은행에 퇴직금이나 은퇴 준비금을 예금하러 갔다가 이런 식으로 ELS 펀드로 옮겨놨던 사람들이 이번에 낭패를 보게 됐다.

은행에서 판매한 펀드는 손실이 날 때마다 번번이 불완전판매로 귀결되고 결국 손실을 보상해주는 과정을 반복 중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은행의 펀드 판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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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도 당한 홍콩ELS
복잡한 상품 이해도 없이
할당 떨어지면 팔기 급급
'툭'하면 사고에 보상 빈번

오랜만에 만난 노교수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몇 가지 물어봤다. 원금 회복 가능성은 있는지, 손실 줄일 방법은 없는지. 그러면서도 큰돈을 투자한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논란이 큰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상품 얘기다.

한국 경제학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원로 경제학자마저 물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은행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혼돈 가능성이다.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의 머릿속에는 이자와 원금 보전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공고하다. 은행 직원도 과도한 수익률을 내세우기보다는 정기예금보다 1~3%포인트가량 살짝 높은 수익을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는 상품을 권유한다. 창구에서 정기예금이나 적금 상품 이자율과 비교하면서 설명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인다. '○○펀드'가 어쩌고, '○○ELS'가 어쩌니 하면서 소개를 받지만 자세한 내용은 솔직히 모른다. 선진국 금융상품이니 설마 사기를 치겠느냐는 생각이 앞선다. 얼마 안 남은 펀드라는 얘길 들으면 마음도 급해진다. 직원이 손실 위험을 얘기하지만 귀에 잘 들어오진 않는다.

일단 마음이 정해지면 은행 직원의 손가락과 고객의 눈은 동시에 바빠진다. '여기에 서명해주세요' '여기 성함을 써주세요'를 반복하며 직원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빠르게 따라가며 서명을 하다 보면 10여 분은 훌쩍 지나간다.

은행에 퇴직금이나 은퇴 준비금을 예금하러 갔다가 이런 식으로 ELS 펀드로 옮겨놨던 사람들이 이번에 낭패를 보게 됐다. 안전한 은행에서 금융상품을 샀으니 배우자에게 굳이 얘기할 생각조차 못했던 사람도 많다. 절반도 받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속은 타들어 간다.

은행 직원은 어떨까. 본사에서 주력 판매에 나서야 할 금융상품이 떨어진다.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긴 하지만, ELS나 DLF 같은 파생상품은 설령 이해한다 해도 고객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기가 힘들다. 특히 금융상품 이해도가 떨어지는 고객은 아무리 잘 설명해도 서로 이해한 내용이 다를 때가 많다. 게다가 본사가 맺은 구체적인 상품 계약 조건을 다 아는 것도 아니여서 기초자산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벌어질 변수를 일일이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점 직원에겐 금융상품 판매 성과가 핵심적인 개인 성과지표다. 안 팔면 동료에게 밀린다. 다만 펀드 관련 민원이 워낙 많다 보니 조심스럽다. 녹취를 하고, 상품 계약서 곳곳에 서명도 받는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문구가 늘어나다 보니 계약서는 갈수록 길어지는 추세다. 상당수 문구는 고객보다는 은행과 직원의 책임 회피를 위한 내용들이다. 자주 찾아오는 고객에게 손실이 날 수 있는 상품을 팔아야만 하는 은행 직원도 괴롭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은행이 수익이라도 제대로 냈을까. 냉정하게 숫자를 두들겨보자. 은행에서 판매한 펀드는 손실이 날 때마다 번번이 불완전판매로 귀결되고 결국 손실을 보상해주는 과정을 반복 중이다. 알 만한 사람이 본인 책임으로 펀드에 투자한 것이기 때문에 손실을 보상해줄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많았지만 무너진 지 오래다. 외환파생상품 키코에서 발생한 중소기업의 손실을 은행들이 보상해줬다. 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를 비롯한 펀드도 결국 고객에게 손실을 보상했다. 상품 판매담당자와 해당 은행은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았다. 비고유 업무에서 발생한 위험이 은행으로 불붙어 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은행과 금융당국에 묻는다. 대체 누구를 위한 은행의 펀드 판매인가.

[송성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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