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물리학은 생명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은 내가 진정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리처드 파인만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서 ‘새로 들어온 책’ 코너를 둘러보다 ‘기계 속의 악마’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생명은 어떻게 물질에 깃드는가’라는 부제를 보니 생명의 기원을 다룬 책인 것 같아 좀 읽어보니 기원을 포함해 생명의 본질을 논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의 이론물리학자 폴 데이비스로 1943년 더블린 강연에서 에르빈 슈뢰딩거가 던진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 질문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이거다!’라고 감탄할 만한 대답을 알지 못하는 필자로서는 뭔가 심오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빌려 며칠 동안 꼬박 읽어봤다. 새로운 시각을 주는 내용이 꽤 있었음에도 책을 덮고 나서 ‘그런 게 있었으면 벌써 알았겠지...’라는 실망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참고로 책 제목은 ‘계의 엔트로피는 결코 줄지 않는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반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사고 실험인 ‘맥스웰의 도깨비(demon)’를 패러디한 것이다. 생물이 고도의 복잡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기계 속에 악마(역시 demon의 번역어)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맥락이다.
● 기존 물리화학 법칙으로는 한계
물론 슈뢰딩거의 물음 이후 80년 동안 생명에 대한 이해가 크게 늘었다. 생명의 이해 여정에 큰 진전으로는 1953년 유전정보를 저장한 분자인 DNA이중나선 규명과 같은 해 원시대기 재현 실험에서 아미노산 존재 확인, 1960년대 유전부호 해석, 1980년대 RNA 세계 가설 등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생명 현상을 진정 이해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과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슈뢰딩거 강연 이전 생명에 대한 이해가 1이고 지금이 100으로 무려 100배가 늘었더라도 완전 이해인 1만 점의 관점에서는 모르는 게 9999에서 9900으로 약간 줄어든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내가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은 내가 진정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오늘날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했다고는 해도 간단한 단세포 생물조차 만들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인공생명체를 만든 게 2010년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당시에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문제가 있는 표현이라는 말이 많았다.
당시 과학자들이 한 일은 물질(무생물)에서 박테리아(생물)를 만든 게 아니라 수십만 염기 길이인 DNA(게놈)를 화학적으로 합성한 뒤 게놈을 꺼낸 박테리아에 넣어줘 작동함을 보여준 것일 뿐이다.
게놈은 없지만 여전히 구조가 온전히 보존된 세포가 없다면 게놈인 DNA분자를 완벽하게 만들었더라도 소용이 없다. 그런데 지금 기술로는 세포의 모든 구성 성분을 갖고 있더라도 박테리아 세포의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구조를 흉내조차 낼 수 없다.
저자는 노트북과 운영체계로 이를 비유한다. 인공생명체는 새로운 운영체계를 기존 운영체계를 지운 노트북에서 작동한 것일 뿐이다. 새 운영체계를 노트북의 부품들과 같이 둬봐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생명의 이해에 큰 진전이 없는 것에 대해 저자는 ‘생명=물질+정보’임에도 지금까지는 물질에 너무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생명의 정보는 게놈, 즉 DNA염기서열에 담겨 있으므로 해독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독자도 있겠지만 앞서 인공생명체에서 언급했듯이 게놈의 정보만으로는 부족하다.
세포가 어느 수준 이상 손상되면(즉 구조정보를 잃으면) 아무리 게놈이 온전해도 결코 원상복구가 될 수 없다. 나를 포함해 지금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십억 년 세월 동안 세포에 담긴 정보가 한순간도 소실되지 않은 채 진화해온 셈이다.
저자는 “아미노산 같은 단순한 밑감과 물질대사와 복제를 하는 세포 사이에는 아득한 복잡성의 간극이 자리하고 있다”며 스탠리 밀러의 실험 이후 풍미한 여러 가설은 “생명의 기원이 화학적 요행이었다”는 순진한(무지한) 관점으로 이는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것이다.
생명의 복잡성을 뒷받침하는 엄청난 정보량과 처리능력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양자생물학 등 여러 최신 이론을 소개하고 있지만 현재 성과는 초라하다는 게 결론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발견된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들은 생명을 보지 못한다(life blind(생명맹))”며 “만일 자연에 어떤 ‘생명원리’가 작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했다.
● 진화의 물리학 조립이론
“순수하게 생명의 화학적 지문만을 가지고 생명 여부를 식별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글래스고대의 리 크로닌은 주어진 큰 분자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단계의 수에 기초해서 화학적 복잡성을 측정하자고 제안했다.”
책에서 위의 구절을 읽다가 문득 ‘이 사람 얼마 전 좀 읽다가 포기한 논문의 저자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분자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단계의 수’가 논문에 나오는 조립지수(assembly index)의 정의였던 것 같다.
찾아보니 10월 12일자 ‘네이처’에 실린 논문으로 크로닌이 교신저자다. 흥미롭게도 데이비스가 소장으로 있는 애리조나주립대 비욘드연구소(직역하면 과학근본개념초월센터)의 부소장인 새라 워커가 공동 교신저자다.
논문은 물리학과 생물학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조립(assembly, 줄여서 A)’이라는 새로운 물리 개념을 제안하고 있다. 조립은 주어진 대상들의 무리, 앙상블(ensemble)이 생겨나는데 요구되는 인과성의 정도를 나타낸다. 대상의 선택과 진화를 정량화한 것이다. 선택과 진화란 생물에서 보이는 현상으로 기존 물리학에서는 다루지 못하는 영역이다.
논문은 대상이 분자인 경우를 다루고 있다. 기존 물리화학의 관점에서 보면 분자가 복잡해질수록 가능한 종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실제 존재하는 개수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를 보면 가능한 구조의 극히 일부만이 존재하는 대신 개수가 많은 경우가 꽤 된다.
예를 들어 커피 한 방울을 앙상블로 보면 카페인을 비롯해 구조가 복잡한 분자 수백 가지가 각각 상당한 개수 들어있다. 단순한 물리화학계에서 이런 조성의 앙상블이 존재할 가능성은 사실상 '0'이다. 결국 커피 한 방울의 분자 조성은 오랜 세월 선택을 통해 진화한 결과이고 여기에는 생물이 개입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연구자들은 앙상블을 이루는 분자들의 인과성을 정량화한 수식을 만들어 조립이라고 정의했다. 지수함수의 합 형태인 수식에서는 구성 분자의 조립지수와 복제수가 주된 변수다. 조립지수가 크고 복제수가 많은 분자의 비율이 높을수록 해당 앙상블은 조립(A) 값이 크다.
어떤 분자의 조립지수는 구성요소에서 출발해 해당 분자가 만들어지는 최단 경로의 단계 수를 뜻한다. 연구자들은 기존 화학합성법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자의 조립지수를 산출하는 알고리듬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에탄올의 조립지수는 1이고 디에틸프탈레이트의 조립지수는 8로 구조가 더 복잡해 보이는 분자가 대체로 조립지수도 더 크다.
앙상블을 이루는 분자 구성에 따라 조립(A) 값이 얼마나 달라질까 궁금해 한 번 계산해봤다. 예를 들어 앙상블1은 에탄올 9개와 디에틸프탈레이트 1개로 이뤄져 있고 앙상블2에는 에탄올 5개와 디에틸프탈레이트 5개, 앙상블3에는 에탄올 1개와 디에틸프탈레이트 9개가 있다. 수식에 넣어보니 앙상블1의 A는 3.2이고 앙상블2의 A는 9.8, 앙상블3의 A는 18.4다. 전체 분자 개수가 같을 경우 조립지수가 큰 분자 비율이 커질수록 조립(A) 값도 커짐을 알 수 있다.
조립이론은 외계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최근 측정 장비의 해상도가 높아지면서 적외선, 질량분석 등 스펙트럼 데이터에 담긴 정보도 늘고 있다. 이를 분석하면 분자 조성과 상대적인 함량을 추정할 수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구한 조립(A) 값이 크면 외계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가능성을 검토한 별도의 논문을 온라인에 공개했고 학술지에 투고해 게재심사를 받고 있다.
‘뻔한 얘기 같은데 굳이 조립이라는 새 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엔트로피(entropy, 줄여서 S)를 떠올리면 어떤 상태를 수식을 통해 정량화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는 1865년 발표한 논문에서 에너지와는 다른 엔트로피의 개념과 이를 나타내는 수식을 제안했다. 클라우지우스는 “우주의 에너지는 일정하다. 반면 우주의 엔트로피는 최대를 향하는 경향이 있다”고 썼다. 오늘날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조립(A)은 엔트로피와 반대되는 특성이다. 즉 엔트로피가 무질서도 정보의 상실 정도를 정량화한 값이라면 조립은 역사의 맥락(진화)이 있는 대상들의 선택된 구성이 나오는데 필요한 기억(정보)의 양을 포착한 값이기 때문이다.
‘기계 속의 악마’에서 저자는 “생명 물질을 완전하게 설명해내려면 분명 무언가 전적으로 더욱 심오한 것이 필요하다”며 “물리법칙 자체의 본성을 새로 고쳐 써야 하는 것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이런 맥락에서 조립이 나름 심오한 개념으로 인정돼 널리 쓰일지 지켜볼 일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10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가 있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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