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중국 첫 공급망 박람회, 미-중 ‘디커플링’은 없었다

최현준 2023. 11. 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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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 전쟁]

28일 중국 베이징 국제전시센터에서 열린 ‘중국 국제공급망 촉진박람회’에 미국 기업 퀄컴과 에이치피(HP), 인텔 등의 부스가 꾸려져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세계와 연결해 미래를 열자’

28일 중국 베이징 북동쪽 순이구 중국국제전시센터의 무지갯빛 구조물에 거창한 구호가 나붙었다. 중국 상무부 산하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가 주최하는 제1회 중국 국제공급망 촉진박람회가 이날 이곳에서 닷새간의 일정을 시작한 것이다. 인민일보·중국중앙텔레비전(CCTV)·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 언론들은 행사에 앞서 여러 기사를 쏟아내며 중국에서 ‘공급망’을 주제로 처음 열리는 이번 박람회를 띄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중국 권력 서열 2위 리창 국무원 총리가 개막식에 나와 “우리는 모든 국가와 긴밀한 생산 협력과 산업 공급망 분야의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 노력할 의향이 있다”고 연설했다.

이번 박람회는 3년에 걸친 코로나19 장기 봉쇄와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공급망 재편’ 작업 등으로 외국인들의 대중국 투자가 사상 최소 수준으로 떨어진 가운데 열렸다. 중국 관영 언론의 보도대로 이 박람회를 통해 중국 시장의 매력을 다시 전세계에 알려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겠다는 게 중국의 의도인 셈이다.

하지만 한겨레가 이날 오후 찾은 박람회장은 중국 신문·방송의 대대적인 선전과 달리 규모가 작고 참가자도 적었다. 베이징 시내가 아닌 외곽에 자리한 전시센터 4개 관에 55개국 500여개 기업이 모여 있다고 했지만, 1~2시간 정도면 전체 행사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규모만 놓고 보자면, 하루이틀 둘러봐도 시간이 모자라는 미국 세계가전전시회(CES) 등 유명 박람회에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중국답지 않게 출입 시스템도 허술해, 사전 예약 티켓을 보여주지 않고도 행사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 기업들도 이 박람회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중소기업을 모아 한국 국가관을 소규모로 열었고, 농협이 협동조합 부스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단독 부스를 차린 곳은 중소기업 한 곳이라고 밝혔다.

사정은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박람회장에선 일본·프랑스·영국 등 다른 주요 선진국 기업의 모습도 찾기 힘들었다. 유럽 기업 가운데 눈에 띈 것은 공구 등으로 유명한 독일 기업 보쉬 정도였다. 그 빈틈을 메운 것은 중국에 대한 의존이 높은 중앙아시아 등의 기업이었다. 베이징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중국에 박람회가 매우 많고, 이번 박람회보다 더 큰 박람회(상하이수입박람회)가 이달 초에 있었다”며 “이번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28일 중국 베이징 국제전시센터에서 열린 ‘중국 국제공급망 촉진박람회’의 주 출입구에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주요 선진국 가운데 예외는 뜻밖에도 미국이었다.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 정보기술(IT) 기업인 인텔·퀄컴·에이치피(HP), 석유회사 엑손모빌, 카드회사 비자 등이 대규모 단독 부스를 차려놓고 있었다. 큰 부스를 차린 스타벅스·버거킹 전시장엔 긴 줄을 늘어뜨린 중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중국이 미국산 대두(콩)를 대량 구입했는데, 미국 대두협회(USSEC)도 작지 않은 규모의 단독 전시장을 마련했다. 미국 기업의 부스엔 많은 중국인 바이어와 관람객이 찾아와 전시품을 둘러보고 사진·영상을 찍는 등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성장을 억누르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윤을 따라 움직이는 기업들의 논리는 다소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미·중 두 대국이 서태평양의 패권이 걸린 대만 문제나 일부 첨단기술 영역에선 냉정하고 치열한 전략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 밖의 분야에선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실리적인 경쟁 관계’를 구축하려 노력하고 있는 셈이었다. 바이든 대통령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입버릇처럼 내놓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디리스킹(위험완화)과 다변화일 뿐 디커플링(공급망 단절)이 아니다”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박람회를 주최한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도 행사 전부터 미국 기업이 20여개 이상 참가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선전했다. 장샤오강 무역촉진위원회 부회장은 21일 개막에 앞서 연 설명회에서 “미국 기업 참가율이 전체 외국 기업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기대 이상”이라며 “미국 기업들이 이번 박람회 참가로 풍성한 성과를 거두길 바란다”고 말했다.

베이징/글·사진 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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