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명맥⑩] 사라지는 명물, 그럼에도 전통을 지키는 '순창장'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던 시절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대형 할인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 손님을 빼앗겨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경쟁에 밀린 전통시장이 생존하는 길은 무엇일까.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과거부터 지역 주민들의 삶과 추억을 간직한 전통시장은 지금도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지역의 역사를 되짚어볼 때도 전통시장은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비중과 역할도 자못 크다.
뉴시스 전북본부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침체한 지역 경제를 살리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소소한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연중기획으로 월1회씩 10회에 걸쳐 우리 동네 전통시장을 찾아 소개한다.
[순창=뉴시스]최정규 기자 = 시장이 크게 형성되면 어디서 무엇을 파는지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랜 기간 시장 내 각 구역별로 판매 물품구역을 정해 운영 중인 5일장이 있다. 바로 순창장이다.
◇조선시대부터 유지되어온 순창 5일장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순창에 대해 ‘충의와 신의가 있는 고을로 예전부터 이름이 있으니, 송사마당에 사람은 없고 푸른 이끼만 끼었도다. 천리의 물과 산에는 뛰어난 경치가 많고, 한 집의 풍월은 태평성세를 이루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 때 얻은 이름인 순창도 이러한 번영을 염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예전부터 살기에 좋은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순창은 시장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1770)’를 보면 순창 지역에 읍내장(1, 6일)을 비롯해 연산장(4, 9일), 삼치장(3, 8일), 녹사장(5, 10일), 피로리장(2, 7일) 등 5곳에서 장이 서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순창 읍내장을 계승한 순창시장은 순창읍 남계리에 위치하고 있다. 순창장이 장옥을 갖춘 것은 1923년의 일이었으며, 1965년에 설립 허가를 받았다.
순창장은 조선시대부터 1,6일날 장을 서는 전통이 현재도 남아있는 셈이다.
◇너무 앞서 갔나… 우시장의 폐쇄
시대 변화를 내다보는 눈, 미래 시스템의 선제적 도입.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실천한다면 발전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너무 빠른 시스템 도입으로 몰락한 시장이 있다. 바로 순창 우시장이다.
순창장이 전국 유수의 시장으로 꼽혔던 이유는 우시장 때문이다. 우시장이 언제 개설되었는지는 알려져있지 않다.
1920년대에는 순창우시장에서 취급한 소는 5000~1만 두를 헤아릴 정도로 장의 규모가 컸다고 한다. 순창우시장은 한때 서울로 올라가는 소의 3분의 1이 순창우시장에서 거래된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전북에서 대도시인 전주와 익산에 맞먹는 규모였다. 순창 우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순창을 비롯해 인근의 전남 담양과 곡성, 옥과의 상인들이었다.
1960~1970년대에는 그 규모가 점점 확대되었다. 하지만 순창시장 내에는 확장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1973년 순창읍 가남리에 장터를 마련해 이전했다.
우시장은 예부터 중개인을 통한 경매 방식을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그래서 중간에 있는 중개인들이 가끔 농간을 부리기도 했다. 순창우시장은 이것을 막고 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85년에 전자경매시스템을 도입했다. 전국의 우시장들이 대체로 2000년대에 들어 이 시스템을 도입한 것에 대비해보면 매우 빠른 전자경매시스템 도입이다.
하지만 전자경매시스템이 오히려 순창 우시장의 몰락을 가져왔다. 많은 상인들이 남원이나 담양의 우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병호(62)순창시장 상인회장은 “좋은 취지에서 도입한 전자경매시스템이 되려 우시장의 몰락을 가져왔다”면서 “제 값을 치르기 위한 전자시스템은 되려 시장의 인심 등을 상처내는 결과로 만들어졌다”고 푸념했다.
◇산업화의 발달로 사라진 ‘자수난전’
순창시장에서 뻥튀기 가게를 끼고 보이는 거리는 과거 ‘처녀골목’으로 불렸다. 이 곳에서 순창 처녀들은 병풍과 노리개 등을 자수로 만들어 판매했다.
이러한 순창시장의 문화는 조선시대 규방문화의 상징이었다. 자수난전이 생겨난 것은 자수로 만든 물건이 상품화되기 시작한 17~18세기 이후다.
처음에는 처녀들이 혼례를 위해 준비하던 자수가 경제적인 보답으로 돌아오자 순창의 처녀들 사이에서 자수를 놓은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낮에는 집안일을 하고 밤이면 삼삼오오 모여 자수를 놓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수는 순창시장을 통해 팔려나갔다.
자수난전에서는 자수로 만든 물품만 판매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자수를 놓기 위해 필요한 본과 자수틀, 색실 등을 파는 상인들도 몰려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1970년대 기계가 도입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순창의 자수난전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자수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4~5곳 있었고, 자수를 놓은 처녀들도 1000여명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75년 즈음 근근이 버텨오던 자수난전마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나 상인회장은 “과거 순창의 여성들은 얼굴을 직접보지않고도 데려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인들의 지역이었다”면서 “이들이 만든 자수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는데 기계의 발달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수난전은 없어졌다”고 말했다.
◇구역별 판매 물품 찾기 쉽다.
순창장은 각 구역별로 판매물품이 정해져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곡전과 고추전, 건어물전, 밤과 대추전, 어물전, 채소전으로 구획이 지어져 있기때문이다.
특히 타지역에서 보기 힘든 밤과 대추를 전문적으로 파는 장과 고추전이 따로 있다. 이는 아마도 순창이 고추장으로 유명한 것과 연관돼 고추전이 따로 발달한 것으로 보여진다.
고추전 인근에는 고춧가루를 내는 기계 등도 마련돼있어 한 곳에서 모든걸 해결할 수 있는 편리함도 갖추고 있다.
순창장을 돌아다니다보면 곳곳에 시장국밥이 있는 것이 아닌 한켠에 국밥집 골목이 따로 형성되어 있다.
총 5곳의 순대국밥집이 있는데 이들 모두 순창의 한 동네 출신이라는 점이다. 한국전쟁(6·25) 이후 이들은 도축장에서 생성된 부산물 가져다가 팔기시작해 100년 넘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순대국밥을 운영하는 이들은 모두 가업으로 생각하며 운영을 하고 있다.
순창장의 명물은 시대를 너무 앞서가거나 산업의 발달로 이젠 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상인들은 순창장을 지키면서 그들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순창장의 골목 골목은 모두가 역사이고 현재이다. 역사를 들으면서 상인의 인심을 느끼기위해 순창장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공감언론 뉴시스 cjk9714@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8번 이혼' 유퉁 "13세 딸 살해·성폭행 협박에 혀 굳어"
- '선거법 위반' 혐의 이재명, 1심서 의원직 박탈형
- '동방신기 출신' 시아준수, 女 BJ에 협박당해…8억 뜯겼다
- 가구 무료 나눔 받으러 온 커플…박살 내고 사라졌다
- 허윤정 "전 남편, 수백억 날려 이혼…도박때문에 억대 빚 생겼다"
- 반지하서 숨진 채 발견된 할머니…혈흔이 가리킨 범인은
- 탁재훈 저격한 고영욱, "내 마음" 신정환에 애정 듬뿍
- '순한 사람이었는데 어쩌다'…양광준 육사 후배 경악
- 태권도 졌다고 8살 딸 뺨 때린 아버지…심판이 제지(영상)
- 채림, 전 남편 허위글에 분노 "이제 못 참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