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특허청은 ‘기업의 서포터’, 우리 기업 해외 지식재산 지킴이될 것”
반도체 퇴직인력 전문심사관 채용 “기술 유출 방지 효과 커”
“초범이라고 집유주는 기술유출 양형기준 고칠 것”
“심사인력 전문직 도입 검토…한우물 파는 전문가 키운다”
요즘 산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특허청이 달라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특허청은 특허, 상표권 같은 지식재산 관련 정책과 출원, 심사, 심판을 담당하는 정부 기관이다. 심사·심판을 담당하는 만큼 보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이인실 청장이 취임한 이후 크게 바뀌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 청장이 내놓은 특허청의 히트 상품은 고질적인 심사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분야 퇴직인력을 채용한 것이다. 지난 3월에 30명을 1차로 채용했고, 지금은 37명을 2차로 채용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 반도체 특허 심사 기간도 15.6개월에서 2.5개월로 줄었다. 이 청장은 “반도체 전문인력이 퇴직하고 갈 곳이 없는 탓에 중국 같은 해외로 나가면서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문제가 컸다”며 “반도체 전문심사관을 도입하면서 기술 유출을 막을 수 있게 돼 기업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특허청은 반도체 분야에서 효과를 본 퇴직 인력 심사관 채용과 우선 심사 제도 등을 이차전지, 바이오 등 다른 국가전략기술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차전지 분야에선 이미 38명의 전문심사관을 채용하기로 하고 기획재정부와 구체적인 예산 협의가 진행 중이다.
이 청장은 대한변리사회 부회장과 지식재산포럼 회장을 지낸 지식재산 전문가지만, 정부 행정 업무를 본격적으로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 전에는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이나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 등을 지낸 게 전부다. 어떻게 초짜 행정가가 특허청이라는 큰 정부 조직을 바꾼 걸까.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의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이 청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반도체 퇴직 인력을 심사관으로 채용하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작년 5월 말에 취임하고 업무보고를 받는데 심사관이 부족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공무원 조직은 정원이 정해져 있고 인사 적체도 심하기 때문에 인력을 새로 뽑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임기제로 채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임기제는 젊은 인력이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서 발상을 바꿔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총리를 찾아뵙고 직접 설명드리고 설득도 했다.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기업들은 반도체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걸 막을 수 있게 됐다고 가장 좋아한다.”
-다음 계획이 궁금하다.
“기업들의 수요가 많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를 올해 했고, 지금은 이차전지에 대해 진행 중이다. 바이오나 모빌리티, 수소, 양자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수요가 있는데 출원의 흐름과 경쟁 강도를 봐서 검토를 할 생각이다. 결국에는 공무원 조직을 늘리는 문제인 만큼 수요와 공급을 잘 예측해야 한다.”
-내년 사업계획도 궁금하다. 기업을 도와줄 또다른 프로젝트가 있나.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우리 기업들이 특허 괴물이나 상표를 노리는 사냥꾼들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지금도 해외지식재산센터(IP-DESK)라는 조직을 통해 기업들을 돕고 있지만 많이 부족하다. 내년에는 이 해외지식재산센터를 대대적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센터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거점화해서 우리 기업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표다.”
해외지식재산센터는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지식재산 분쟁이나 위조상품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현지에서 신속하게 초동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지금은 코트라의 해외무역관에 포함돼 있는데, 코트라의 주 업무가 지식재산 보호가 아니다 보니 한계가 적지 않다. 특허청은 해외지재권 보호 담당기관을 한국지식재산보호원으로 일원화하고, 분쟁대응 서비스 지원 국가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지나.
“지금은 17개 센터에서 11개국에만 분쟁대응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이걸 거점화해서 10개 센터가 40개국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꿀 계획이다. 센터당 지원 예산이 올해 1억9600만원인데 내년에는 5억1000만원으로 늘린다. 기존에는 하나의 센터가 1개 국가나 도시만 지원했다면 앞으로는 주변국가까지 포함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센터당 1명은 상근 지식재산 전문가를 채용해 상담의 전문성도 강화할 생각이다. 특히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큰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남미 지역에 센터를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특허청이 기업 서포터로 발 벗고 나선 느낌이다.
“기술을 잘 만들었더라도 보호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보호하고 권리화를 해야 부가 창출되고 기업과 산업이 돌아가는 것이다. 이게 경제안보이고, 국가안보라고 생각한다.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보호가 특히나 그렇다. 모두가 이런 인식을 공유하는 게 중요한데, 특히나 윤석열 정부에서는 특허청과 정부의 기조가 맞아떨어졌다. 기술유출 문제에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술 유출 범죄를 저지르고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모든 기술 유출범은 초범일 수밖에 없다. 기술 유출에서 재범은 없다. 한창 각광받는 기술이 유출 대상이 되는데 한 사람이 두 번 유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초범이라는 이유로, 화이트칼라라는 이유로 감형을 해주는 양형기준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산업에 주는 영향이 큰데도 법원에서는 잘 모르는 것이다. 다행히 검찰이 우리와 인식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내년는 양형위원회를 통해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이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
-특허청 조직의 심사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없나.
“전문직공무원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무원 조직은 잦은 순환보직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심사 업무는 전문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한우물만 파는 전문가를 위한 제도로 전문직공무원제도를 생각하고 있다. 심사 분야에 적용하면 전문직공무원이 되면 기존의 승진 체계에서 벗어나 전문관과 수석전문관으로 일하면서 심사 업무만 계속 담당할 수 있게 된다. 심사에만 집중하게 되면 당연히 업무의 효율이 높아지고, 좋은 심사 역량이 우리 산업을 받쳐주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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