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의 단짝’ 찰리 멍거 별세… “투자는 단순, 어려운 이유는 우리 자신 때문”
미국 투자기업 버크셔 해서웨이의 공동경영자이자 워런 버핏의 ‘단짝’으로 불리는 찰리 멍거가 향년 99세로 28일(현지 시각) 별세했다. 그는 워런 버핏과 함께 버크셔해서웨이를 세계 최고 투자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로, 대표적인 가치투자자로 꼽힌다.

1924년 1월 미국 네브래스카주(州) 오마하에서 태어난 멍거는 워런 버핏과 동향이다. 어린 시절 멍거는 워런 버핏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식료품점에서 일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까진 버핏과 서로 알지 못했다고 한다.
멍거는 변호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1948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당시 미시간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멍거는 학교를 중퇴한 뒤 공군 장교로 복무하기도 했다.
부동산 변호사로 일을 하던 멍거는 35살 때 오마하 의사 부부의 소개로 버핏을 알게 됐다. 2021년 미국의 한 경제방송에서 밝힌 이들의 첫 만남 이야기는 흥미롭다. 당시 워런 버핏은 의사 부부에게 10만달러 자금 운용을 부탁받았는데, 부부가 버핏에게 자금을 맡기며 한 말은 “당신을 보니 찰리 멍거가 떠오른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 1959년 오마하에 방문한 멍거를 의사 부부가 버핏에게 소개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둘은 투자 가치를 논하며 서로의 관점에 빠져들었다. 시가총액 7000억달러(약 900조원)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시작도 이날부터였다.
멍거는 1965년 변호사를 그만두고 전문 투자자가 된 뒤 1976년 버크셔 해서웨이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이후 1979년 버크셔의 부회장이 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사업 파트너로서 버핏과 멍거는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멍거는 버핏의 ‘오른팔’로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며 버크셔 해서웨이를 미국 증시 시총 상위 10위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버핏은 멍거를 가치투자자로 부르며 좋은 기업을 공정한 가격에 사도록 큰 도움을 줬다고 말해 왔다. 버핏은 “멍거는 공정한 가격에 훌륭한 기업을 사도록 늘 조언했다”며 “아주 평범한 기업을 저렴한 가격에 매수하거나 훌륭한 기업을 찾는 기회를 얻게 해줬다”고 말했다.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멍거의 재산은 올해 기준 26억달러(약 3조3670억원)이다. 멍거는 버핏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성공한 투자자로 이름을 알렸다. 앞서 찰리 멍거는 버핏을 만나기 전 독자적인 펀드를 운용했는데 1962년부터 1975년까지 다우지수가 연 5%씩 오를 때 멍거의 펀드는 연 19.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멍거의 투자 원칙은 장기 가치 투자와 사업 안정성, 인내다. 멍거는 ‘정신적 격자’ 개념을 강조한 인물로 유명하다. 멍거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차곡차곡 쌓으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수많은 문제를 효과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정신적 격자 모형을 잘 구축하면 투자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 모형은 주가수익비율(PER), 대주주의 능력, 이익 추이, 비즈니스 모델 등 다양하다. 멍거는 ‘공정한 가격’을 주고 좋은 기업을 사들이는 것을 중요시했다.
멍거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1953년 불과 29세의 나이에 이혼한 그는 혼자 자녀들을 부양해 왔는데 1954년 멍거의 아들 테디가 백혈병 진단을 받아 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52세엔 백내장 수술에 실패해 한쪽 눈의 시력도 잃었다. 다소 멍해 보이는 그의 표정도 의안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아내 낸시도 2010년 세상을 먼저 떠났다.
하지만 멍거는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함께’ 성장하는 것을 추구했다. 그는 ‘우리’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우리는 참을성을 갖고 이해하는 것을 위주로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는 것을 사는 데 집중해야 한다” 등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투자는 단순한 일이지만,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 자신 때문”이라며 투자하기 전 스스로 무엇을 이해하고 있고, 본인이 좋아하는 투자 방법이 무엇인지 선택한 뒤 지속해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멍거는 세계적인 자산가임에도 검소하게 산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들에겐 “롤렉스(Rolex) 매장에 가지 마라”며 ‘사치 지옥’에 빠지지 말 것을 조언하기도 했다. 자신의 차를 직접 운전했고 나이가 들어 걷지 못하자 휠체어를 사용했다. 그는 배우자 낸시 멍거와의 결혼 생활에서 6명의 자녀와 2명의 의붓자식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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