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이순신'이 보여주는 신파의 진수…연극 '신파의 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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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차려입은 홍도가 자신을 떠나가는 남편을 놓칠 수 없다는 듯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한다.
지난 28일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 쿼드에서 개막한 '신파의 세기'는 한국의 신파극이 외국에 수출된다는 설정의 코미디 연극이다.
신파는 1910∼1940년대 유행했던 새로운 형식의 연극 장르이자, 과한 감정 표현으로 억지 감동을 유발하는 종류의 작품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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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비극∼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냐∼ 홍도야!"
한복을 차려입은 홍도가 자신을 떠나가는 남편을 놓칠 수 없다는 듯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한다. 곁에 서서 상황을 설명하는 변사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끝을 잔뜩 늘이며 감정을 끌어올린다.
1930년대 한국에서 유행했던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공연되는 이곳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가상의 나라 '치르치르스탄'이다. 'K-컬쳐'가 이미 자리를 잡아 사람들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한국어를 배우고 자율주행 수소자동차와 함께 종로 07번 마을버스가 다니는 곳이다.
지난 28일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 쿼드에서 개막한 '신파의 세기'는 한국의 신파극이 외국에 수출된다는 설정의 코미디 연극이다. 한국의 국립현대극장에서 일하는 미스터 케이가 사업비로 총 30억 달러가 책정된 문화 진흥 사업을 따내기 위해 치르치르스탄으로 출장을 떠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제목인 '신파'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파는 1910∼1940년대 유행했던 새로운 형식의 연극 장르이자, 과한 감정 표현으로 억지 감동을 유발하는 종류의 작품을 일컫는다.
작품은 신파의 두 가지 뜻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변사가 등장하는 정통 신파극을 준비한 미스터 케이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억지 감동을 위한 신파라는 사실에 좌절한다. 신파로 국민들에게 단결된 정서를 만들어줄 생각에 부풀어 있는 치르치르스탄의 공주와 대조를 이룬다.
배우들은 정통 신파극부터 '국제시장', '명량' 등 신파적 요소가 있다고 평가받는 영화를 극중극으로 패러디한다. 튀르키예 출생으로 한국에서 성장한 배우 베튤은 이국적 외모로 이순신을 연기하고 구수한 사투리를 선보이며 눈길을 끈다.
작품의 대본과 연출을 맡은 정진새는 이날 인터뷰에서 "대중매체에서 40∼50대 남성 배우들이 연기하던 이순신 장군을 다른 인종, 다른 국적의 배우가 연기하니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며 "여성 이순신, 퀴어 이순신 등 다양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나오면 획일화된 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극 초반부 문화사업을 따내려는 미스터 케이의 분투가 빠른 호흡으로 지나가면 허탈함과 씁쓸함이 밀려온다. "정통 신파극이 한국 대중들의 한을 표현하는 창구였다"라고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신파의 껍데기만 남고 개연성 없는 억지 감동을 양산하는 현재 상황을 자조한다.
신파극을 연기하며 눈물을 쏟기 바쁜 배우들도 감정만을 앞세운 작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기 시작한다. 공연을 올리는 미스터 케이는 국립현대극장에서 좋은 작품을 10개 올리면 빚만 남을 뿐이라며 답답한 속마음을 토로한다.
작품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생존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버린 공연계의 현실에 우려를 표한다. "역량 있는 사람들의 중노동"으로 유지되는 공연계가 진정으로 한국적인 것을 발전시키는 일이 가능할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정 연출은 "모든 문화가 영속할 수는 없겠으나 지금 만들어진 한국의 문화는 우리의 전통으로 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며 "특히 코로나 시기를 겪다 보니 내실을 다지지 못하면 어떤 장르라도 전망이 없겠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을 통해 공연예술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공연예술 종사자의 피땀 눈물을 알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극중극을 삽입하는 등 장면 전환이 많고 전개 속도가 빨라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장면도 더러 있다. 미스터 케이의 딸과 대화를 나누는 일부 장면은 대화의 내용과 별개로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공연은 다음 달 17일까지 계속된다.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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