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지원 바우처 ‘별따기’ … ‘ADHD·난독증’ 연우, 신청 탈락돼 치료 중단[가난한 ‘금쪽이’ 는 어디로 가야하나요?]
영유아발달·아동 정서발달 등
바우처 지원, 최대 2회만 가능
지역별로 대상 기준도 제각각
광주 광산구, 소득무관 月21만
경주선 중위소득 160% 이하
바우처 쓸 수 있는 곳 없어서
왕복 3시간 거리 지역 가기도
발달재활, 대기 인원만 1만여명
서비스단가도 회당 3만원 그쳐
광주 광산구에 거주하는 엄마 A 씨의 네 자녀 중 셋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다. 심지어 둘째 아들인 연우(12·가명)는 ADHD뿐만 아니라 경계성 난독증 진단도 받았다. 국가로부터 의료·주거급여를 받을 만큼 생계가 어려운 A 씨 가족은 자치구에서 지원해주는 ‘아동·청소년 심리지원서비스 바우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뻤다. 바우처를 받으면 낮은 본인부담금으로도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 4번의 신청 중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탈락했다. A 씨는 “비용 때문에 3~6개월씩 치료를 중단하는 일이 잦았다”며 “아이가 상담교사와 ‘라포(친밀한 관계)’가 형성돼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할 때쯤 치료가 중단됐다”고 말했다. A 씨는 “돈 문제로 치료를 중단할 때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동아줄’과 같은 바우처 지원이 확대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상대로 각종 바우처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연우네 사례처럼 높은 경쟁률과 짧은 지원 기간 탓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신질환 치료 특성상 꾸준히 치료해야 완치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바우처는 지원 기간이 1~2년에 그친다. 배승민 길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ADHD, 불안장애 등 아동·청소년이 빈번히 겪는 정신질환의 경우, 1~2년의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면서도 “치료 시기를 놓쳤거나 ‘조용한 증상’일 때, 앓고 있는 정신질환이 여러 개일 때 등 다양한 이유에서 실제 치료 기간은 길어진다”고 말했다. 두 자녀가 ADHD 진단을 받은 김정현(46) 씨는 12년 동안 1억1000만 원의 치료비를 쏟아부은 뒤에야 자녀들을 ADHD에서 ‘졸업’시킬 수 있었다.
◇최대 2년 지원이 전부인 바우처 = 29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정신건강과 관련해 정부·지자체가 지급하는 바우처는 크게 네 종류다. 이 중 ‘영유아발달지원서비스’ ‘아동·청소년 정서발달지원서비스’ ‘아동·청소년 심리지원서비스’ 등 3개 바우처는 기초 지자체마다 지원 내용, 대상이 천차만별이다. 복지부가 대략적인 틀만 만들고, 각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제도를 운용하도록 설계하면서다. 통상 이들 바우처는 지원 대상에 1~2회(보통 회당 지원 기간은 1년)밖에 선발될 수 없다. 보통 영유아발달지원서비스는 1회, 다른 두 서비스는 2회만 선발될 수 있다.
같은 바우처라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지원 여부와 내용이 달라지는 ‘형평성’ 문제도 있다. 예컨대 광주 광산구에 산다면 소득이 얼마이든지 상관없이 한 달에 21만6000원씩 심리상담·놀이·언어·인지 프로그램 등은 물론이고 부모훈련 서비스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경북 경주시에 산다면 기준 중위소득 160% 이하라는 소득 기준을 맞춰야 한다. 지원금액도 18만 원으로 줄어든다.
서비스 제공 기관이 한정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ADHD를 앓고 있는 딸을 둔 김승아(48) 씨는 “집 근처에 우리아이심리바우처(아동·청소년 심리지원서비스)를 쓸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버스로 왕복 3시간 거리를 오가고 있다”며 “병원에서 대기하고 치료받는 시간까지 합치면 하루 전체가 날아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는 병원이 아주 적다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대기인원만 1만 명 = 전국 공통으로 지급되는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의 경우, 신청 경쟁률은 높고 지원금액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바우처는 중위소득 180% 이하 가정의 만 18세 이하 장애 아동이 언어·청능·행동·놀이심리·감각발달재활 등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발달재활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만 6세 미만 비장애 영유아에게도 지급된다. 발달 지연이 더 큰 장애로 이어지지 않도록 예방적 치료를 돕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겐 최대 지원 금액인 월 25만 원이 지원되며, 소득 수준에 따라 지원금액이 달라진다.
문제는 이 발달재활서비스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 아이들이 1만 명을 넘는다는 점이다. 복지부가 예산 확대를 통해 대상을 △2020년 7만8782명 △2021년 8만4411명 △2022년 9만1044명으로 매년 늘리고 있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기 인원은 △2020년 5867명 △2021년 8413명 △2022년 1만275명으로 늘고 있다.
서비스 단가는 회당 3만 원에 그친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서비스 제공기관의 시세를 찾아보니, 대부분 3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인 5만~6만 원 선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복지부가 단가를 올린 건 올해 단 한 차례다. 지난해까지는 2만7000원이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예산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단가가 높아지면 수혜자 수가 줄어든다는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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