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단짝’ 찰리 멍거 99세로 별세… “독립 위해 돈 벌고 싶었다”
워런 버핏의 단짝이자 버핏만큼 투자의 귀재였던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이 향년 99세로 2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멍거 부회장이 캘리포니아의 병원에서 영면했다고 이날 밝혔다. 100세 생일을 한 달여 앞둔 상태였다.
버핏은 성명을 내고 “버크셔 해서웨이는 찰리의 영감, 지혜, 참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멍거 부회장은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았지만 뛰어난 유머감각, 촌철살인, 투자 능력으로 미 월가의 ‘큰 어른’으로 통했다. 버크셔해서웨이의 투자기법으로 유명한 ‘가치 있는 기업을 합리적 가격에 산다’는 가치투자 철학은 멍거의 아이디어였다고 버핏은 줄곧 언급해 왔다. 올해 포브스가 추산한 멍거의 재산은 약 26억 달러(3조3670억 원)에 이른다.
● “돈을 정말 벌고 싶었다… 독립을 위해”
1924년 1월 1일 미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난 멍거는 변호사인 아버지와 독서광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버핏보다 7살이 많은 그는 어린 시절 버핏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료품점에서 일했지만 버핏과는 이름만 어렴풋이 알 뿐 서로 만나지 못했다.
숫자를 좋아했던 멍거는 미시간대 수학과에 입학했지만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돌연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아버지가 졸업한 하버드대 로스쿨에 지원했고, 우등 졸업을 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고 한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변호사로서 ‘멍거, 톨레스 앤 올슨’ 로펌을 개업했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가 찾아 왔다. 1953년 첫 번째 아내 낸시 허긴스와 이혼했고, 2년 뒤엔 9살 아들이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는 훗날 “(아픈) 자식을 매일 조금씩 잃고 있다는 생각에 울면서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거리를 걸었다”고 회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멍거는 60년이 훌쩍 지난 최근까지도 떠난 아들 생각에 목이 메인다고 했다.
아들을 떠나보낸 멍거는 심지어 빈털터리에 가까웠다. 변호사로서 청구서를 보내는 역할보다 흥미로운 의뢰인 중 한명이 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숫자에 능했기에 스스로 투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훗날 로저 로웬스타인의 저서 ‘버핏: 미국 자본주의의 탄생’에서 “워런과 마찬가지로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정이 대단했다”며 “페라리를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독립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단짝과 만나다
1959년 버핏과 멍거는 오마하 지역 모임에서 만났다. 캘리포니아에 살던 멍거가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러 오마하에 들렀다 ‘운명적’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둘은 서로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버핏의 투자 파트너 중 한명이 버핏을 두고 “멍거와 비슷하다”는 말도 했다. 버핏은 “멍거가 스스로의 농담에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 모습을 보고 나와 비슷한 사람임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당시 두 번 째 아내인 낸시 배리에게 멍거는 “워런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버핏의 아내는 “둘 다 상대방이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겼다”고 회상했다.
둘은 거의 매일 통화하며 투자를 논하는 사이가 됐다. 버핏의 설득에 멍거는 변호사에서 전업 투자자로 나섰다. 초창기 버핏은 망해가는 기업이라도 제값보다 싸면 사들이는 투자 방식을 고수했다고 한다. 반면 멍거는 미래에 꾸준히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훌륭한 기업을 합리적 가격에 사야한다고 주장했다.
1971년 멍거의 설득으로 워런은 자신이 기업을 인수하던 가격 요건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초콜릿 기업 ‘씨즈 캔디’를 인수했다. 이 투자는 향후 수십 년 동안 회사에 20억 달러(2조6000억 달러) 수익을 가져다 줬다. 버핏은 훗날 이 투자를 통해 헐값 매입 방식을 버리고 ‘가치투자’로 완전히 돌아섰다고 말했다.
멍거가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으로 합류하기 전 1962년부터 1975년까지 그의 포트폴리오는 연평균 19.8% 수익을 올렸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5.2% 수익률에 그쳤다. 버핏의 그늘에 가려졌지만 그 자체로 뛰어난 투자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멍거와 버핏의 파트너십은 더욱 빛을 발했다. 한평생 싸운 적이 없다는 두 사람은 함께 버크셔해웨이를 5000억 달러 가치가 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65년부터 2014년까지 버크셔 수익률은 연평균 21.6% 상승했다. 같은 기간 S&P 500 지수 연평균 상승률 9.9%의 두 배가 넘는 수익률이다.
● “투자자여, 근면과 평정심을 지켜라”
‘명언 제조기’로 불리는 멍거는 그의 어록만 모은 책이 출간될 정도로 유머가 뛰어났지만 회장으로서 버핏을 존중하기 위해 그와 한 자리에 설 때에는 말을 아꼈다고 한다. 어쩌다 말을 꺼내면 청중을 웃게 했다. WSJ에 따르면 2000년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한 청중이 닷컴 주식 투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묻자 “건포도와 똥을 섞어도 똥은 똥이다”라고 답했다.
2016년 경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을 묻는 질문에 멍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번째 아내(낸시 배리·2010년 사망)의 첫 번째 남편이죠. 저는 그분보다 조금 덜 끔찍한 남편이었을 뿐인데 60년 동안 이 훌륭한 여인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평소 두 가지 단어를 좋아했다고 한다. 근면(assiduity)과 평정심(equanimity)이다. 근면은 곧 기다림과도 연관이 있는데, 그가 주장하는 투자 성공의 열쇠인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마침내 기회가 왔을 때 공격적으로 매수하라’는 조언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또 평정심에 대해서 멍거는 “모든 투자자는 수십 년에 한 번씩 50% 손실이 발생할지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 왔다.
멍거는 백내장 수술 실패로 시력을 잃다시피하고 마지막에 잘 걷지 못했지만 늘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멍거와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는 ‘자본가들의 우드스탁’으로 불린다. 투자와 삶의 지혜를 듣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청중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처럼 멍거에게는 ‘패서디나의 현인’이란 별명이 붙었다. 멍거와 버핏은 올해 주주총회에서도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에 대한 질문을 예감한 듯 테이블에 ‘매물’, ‘만기 보유’와 같은 팻말을 올려 놓아 청중을 웃게 했다.
멍거의 이날 주총에서의 마지막 경고는 상업부동산 부실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미국 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부실 대출을 가득 안고 있다”며 “미국 지역 은행이 보유한 방대한 상업용 부동산 대출 포트폴리오에서 터져 나올 부실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또 WSJ에 기고문을 올려 가상화폐는 사기에 가깝다며 이를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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