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만명 숨진 코로나19는 기후위기 대응 모의고사였다
이전 칼럼까지는 인간과 생태계는 어떻게 연결이 되었는지, 바이러스와 모든 생명체는 왜 연결이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특히 이전 칼럼에서는 현재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이 이 넓은 우주에서 얼마나 특별한 순간이고 특별한 공간인지에 대해 다뤘습니다. 이번 칼럼부터는 그 동안 살펴본 과학적 내용을 기반으로, 왜 지금 우리에게 인문학이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습니다.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 준다.”(이창호)
바둑이 끝나도 기사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바로 복기(復棋)를 시작한다. 서양의 체스도 마찬가지로 복기(post mortem)를 한다. 이를 통해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 말없이 두었던 수의 의미를 소통하고, 결과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훌륭한 기사일수록 복기를 중요시 한다. 이번 게임이 마지막이 아니고, 다음에는 더 현명한 수를 두기 위해서다. 아무리 이겨서 기쁘거나 져서 화가 나더라도 바로 복기를 시작한다. 기억과 함께 복기의 가치도 증발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151일 동안 현대 문명의 발전은 정지되었다. 그리고 누적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부작용의 여파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팬데믹 복기를 미루면 안된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다시는 소를 잃지 않는다.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고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는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지난 2023년 5월 5일 부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에 대한 국제 공중 보건 위기의 종료를 선언하였다. 하지만 이는 바이러스에 대한 인류의 승리 선언이 아니라, 팬데믹(pandemic)에서 엔데믹(endemic) 대응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타협의 고백에 가깝다. 이 선언 시점까지 공식적 피해만 누적 확진 7억명에 사망 700만명이 기록 중이었고, 그 수치는 지금도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 이외에도 인플레이션, 실업자 증가, 경제 성장률 감소, 무역 정체, 교육 파행, 여행 산업 타격 등 경제와 사회의 다방면에 간접적 피해가 누적되었고, 그 부작용의 여파 역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코로나19와 비교할 수 없는 기후위기
하지만 우리가 목격한 코로나19 팬데믹의 파괴력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기후 위기의 파괴력에 비하면 아이들 장난 수준에 불과하다. 팬데믹은 문명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고, 기후 위기는 문명을 둘러싼 지구 생태계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아무리 치명적인 팬데믹이 발생해도 문명에서 떨어져 홀로 지내면 바이러스는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위기가 현실로 닥치면 지구상에 도망갈 안전한 장소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생태계를 떠나서 한 순간도 생존할 수 없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팬데믹은 고작 삼년 정도로 끝났지만, 기후변화가 일으키는 위기는 일단 현실화되면 그 기한은 최소 만년 단위가 된다.
지구라는 거대한 환경의 온도가 조금만 변해도 인류는 몸살을 앓는다. 기상이변, 해수면 상승 같은 물리 환경 변화에서 인류가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생태계 변화까지 광범위한 연쇄 효과를 일으킨다. 기상학자들은 1980년대 초반부터 지구 온도가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하기 시작하였다. 이 불길한 징조가 불편한 진실로 판명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정말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지 먼저 검증하였다. 기록이 남아 있는 과거의 온도는 물론이고, 인류가 등장하기 훨씬 더 오래 전의 온도도 새로운 과학적 방법을 이용해 확인하였다. 그리고 어떤 과거의 기온과 비교 해보더라도 기온 상승은 명확했다. 그것도 급격한 추세라는 것이 드러났다.
지구 환경은 항상 변해 왔다. 문제는 그 속도다. 지구 환경 변화로 인해 생태계는 생물의 멸종을 반복해서 겪어온 기록이 있다. 그 중 다섯번의 대량 멸종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급격한 기온 변화가 유발하였다. 두 번은 하강, 세 번은 상승이 원인이었다. 이 중 가장 파괴적인 기록은 2억5천만년 전 페름기(Permian Period) 지질시대에 발생한 3차 대량 멸종으로 당시 지구 전체 생물의 80%가 소멸되었다. 생물의 활동은 온도에 민감하다. 그리고 온도 변화에 대응하는 진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온도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면 진화를 통해 대응한다. 하지만 온도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면 진화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멸종이 발생한다. 3차 대량 멸종이 시작될 때 만년 정도에 걸쳐 지구 평균 온도가 5도 정도 올라갔다. 대부분 생물은 이런 초기 온도 상승으로 멸종하였다. 과학자들이 확인한 바로는 현재 기온이 1.1도 상승하는 데 백년이 걸렸다. 파괴적인 3차 대량 멸종의 상황보다 20배가 넘는 속도로 온도가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자초한 인류의 산업 문명
급격한 기온 상승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고, 그 다음으로 확인한 것은 해결 가능성이다. 만약 지구 차원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의 결과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기온 상승의 원인이 우리라면 최소한 해결의 가능성은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생태계의 한 생물종에 불과한 인류가 지구라는 거대한 환경의 온도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과학자 사이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가설이었다. 각국의 과학자들은 1988년부터 정기적인 모임을 구성해 지구의 온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인들을 차례로 검증해나갔고, 2023년 6차 모임에서 검증 완료된 것이 대기의 온실 가스다. 온실 가스란 지구가 우주로 열을 방출하는 것을 막는 기체 분자다. 대기 중의 온실 가스는 이불 솜 같은 존재다. 솜이 두꺼울수록 더워지고 얇아질수록 추워진다.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은 과거 3차 대량 멸종을 유발한 기온 상승의 원인 역시 온실 가스라는 것이다. 당시 지구의 육지는 판게아라는 하나의 거대한 대륙으로 합쳐졌는데, 이 지각 이동의 과정에서 화산 활동이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이를 통해 빙하에 저장되어 있던 대량의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의 온실 가스가 대기로 방출되기 시작한다. 방출된 온실가스는 기온을 상승시키고 이는 다시 더 많은 빙하를 녹여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당시 지구 대기에 온실가스를 내뿜게 만든 것이 화산이라면, 현재 온실가스를 내뿜는 것은 인류의 문명이다. 현대 인류 문명 발전의 결정적 계기는 화석 연료의 사용이다. 산업 혁명 이전 인류가 이용하는 에너지는 사람이나 가축이 제공하는 노동력이 동원 가능한 전부였다. 하지만 석탄과 석유에 포함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화석 연료의 부산물인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농축되기 시작하였다. 배출량이 생태계가 자연적으로 조절 가능한 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지금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수준은 3차 대량 멸종시의 200배에 달한다. 증가 속도를 보면 산업 혁명 시점으로 이산화탄소 농도는 50% 증가했는데, 이는 지난 200만년 동안 최고 수준이다. 간단히 말해 현대 문명이 지구를 가열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차원 넘어 인류 공동 대응 필요
오랜 검증을 거쳐 기후 위기의 주범이 인류라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다. 전문가 집단은 지구 생태계에 영구적 변화가 일어나는 온도 상승 상한선을 1.5도로 제시하였다. 이 가이드라인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브레이크는 화석 연료가 뿜어내는 온실 가스를 억제하는 것이다. 제시된 목표를 위해선 2030년까지 지구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이 절반, 2050년까지 0이 되어야 한다. 이제 문제의 원인도 파악했고 해결 방법도 알아내었다.
그런데 해결을 위한 행동을 누가 할 것인가? 아무리 많은 개인이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을 해도, 해결을 위한 행동은 국가만이 가능하다. 현재 문명에서 강제력을 가진 행동을 할 수 있는 집단의 최대 범위가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에 2015년 각국이 파리에 모여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유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 실행 방안에 합의한다. 전문가 제시 수치보다 높은 것은 각국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고려한 타협이었다. 하지만 협정을 잘 지켜도 21세기 말에 기온은 2.7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래도 그나마 여러 국가가 모여 합의라도 했다는 것은, 인류 공동 문제를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는 최소한의 공감대는 있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할 수 있다.
기후 위기와 마찬가지로 팬데믹 역시 인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단위로 대응해야 하는 동일한 한계를 갖고 있다. 문명에서 개인을 규정하고 차별하는 국적, 인종, 종교, 신념, 재산 등의 가치는 바이러스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바이러스에게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평등한 숙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한 방역의 범위가 국가가 아닌 인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팬데믹의 방역 역시 국가별로 수행되었다. 따라서 이번 팬데믹은 단순한 바이러스 유행의 차원을 넘어, 현대 문명의 인류 공동 위기 대응 능력을 점검하는 모의고사였다. 현재 인류가 인식하는 '우리'의 범위는 세계화를 감당할 수준에 이르렀는가?
공동의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가 목격한 것은 각자도생 수준의 국가 이기주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화까지 정신없이 달려온 인류 문명이 품고 있던 근원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팬데믹이라는 인류 공동 문제에 대한 모의고사에서 인류는 낙제점을 받았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국가들의 상호 신뢰에 발생한 균열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은 국가 사이에도 적용된다. 다른 사람의 뼈가 부러진 것보다 내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다. 다른 국가의 사정을 살펴보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팬데믹의 부작용으로 전 세계가 모두 시달리고 있다. 이제 기후 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은 배부른 소리로 여겨지는 상황이 되었다.
식량 위기가 초래할 끔찍한 미래
과연 기후 위기가 우리가 살아생전에는 경험할 일 없는 먼 미래의 이야기일까? 지금까지 인류는 문명과 과학의 힘으로 생태계의 선택압력을 극복하고 더 많은 자원을 독식해왔다. 지구 생태계가 언제까지 이런 자원 독식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점차 그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한계 상황에서 기후 변화가 닥치면 우리에게 가장 먼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식량 위기가 될 것이다. 문명을 지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본 자원은 식량이다. 문명의 역사는 비옥한 땅을 둘러싼 투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특히 곡물은 그 자체로 식량 자원이면서, 축산업의 사료로 이용되는 자원이다. 기름이나 광물이 부족하면 경제가 어려워지지만, 식량이 부족하면 생존이 어려워진다. 돈과 달리 밥은 저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을 때 든든히 먹어둔다고, 내리 굶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밥은 매일 꼬박꼬박 먹어야 하고, 매년 농사를 지어 곡식을 계속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농업은 대체 불가능한 문명의 기반 산업이다. 그리고 삼십년 뒤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75%의 식량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명을 지탱하는데 필요한 여러 자원 중 생태계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식량이다. 너무 흔해 소중함을 모르는 필수 자원은 물과 공기다. 마찬가지로 식량도 공급이 풍족해지면 소중함도 희석된다. 하지만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농사를 위해서는 땅과 물과 태양이 필요하다. 현대 문명을 먹여 살리는 쌀, 밀, 옥수수는 지구의 곡창 지대에서 집중 재배되어 전 세계로 공급된다. 이런 곡창 지대는 농작물을 키우기 위한 땅의 유기물, 강수량, 일조량 등의 환경이 최적인 지역이다.
그런데 곡창 지대의 기후가 조금만 변해도 생산량은 크게 떨어지게 된다. 기온 변화를 포함해, 홍수나 가뭄 같은 기상 이변은 식물의 성장에 직접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공산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환경이 변화하면 위치를 옮기면 된다. 하지만 농지는 쉽게 옮길 수가 없다. 작물의 종류에서 농업 기반까지 모두 현재 위치와 환경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식량 위기가 닥쳤다고 도시를 논밭으로 하루아침에 바꿀 수가 없다. 변화된 기후 환경에 적합한 곡창지대를 다시 찾아서 준비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곡창지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기간에는, 책에서나 보던 춘궁기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한 계절이 아니라 수십 년의 기간 동안 굶주림에 시달려야 한다. 만약 곡창지대의 생산량이 감소하면 세계에 식량을 공급하던 국가는 수출부터 중단하게 될 것이다. 자국민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식량을 공급하던 국가들도 수출을 중단하고 식량을 무역 전쟁의 무기로 삼을 것이다. 팔십억 세계 인구에게 배고픔이 닥쳤을 때 혼란의 연쇄 작용은 팬데믹의 경험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식량 자급도가 낮은 국가는 치명적 타격을 받을 것이다.
위기 돌파의 해법은 과학 아닌 인문학에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지구 생태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진실은 불변이다. 그리고 팬데믹과 기후위기는 급격한 문명 발전과 인구 폭증에 대한 생태계의 부작용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어느새 스스로를 파멸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문명이 겪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핵전쟁을 들었지만, 이는 기후 위기의 파괴력에 비하면 소소한 일시적 이벤트에 불과하다. 이런 거대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류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제력을 가진 최대 집단 단위는 아직 국가인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팬데믹의 부작용으로 그나마 존재하던 국가들의 신뢰와 협력도 바닥인 상황이다. 팬데믹을 막지 못한 것처럼 기후 위기도 막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발생할 위기를 막지도 못할 상황이라면, 지나간 코로나19 팬데믹의 복기가 왜 필요할까? 위기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위기를 헤쳐 나가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팬데믹은 바이러스와 사람의 상호작용이 만들어 낸 결과다. 두 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따로 분석하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인간의 사정을 가능한 배제한 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간의 사정을 고려한 분석이 결합되면 위기 대응을 위한 복기가 된다.
팬데믹 복기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바이러스, 생태계, 기후, 지구에 발생하는 위기의 예측은 사람의 사정이 배제된 과학의 영역이다. 야생 동물에서 사람으로 신종 바이러스가 건너오는 것을 완벽히 막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온 상승을 막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당장 중지할 수도 없다. 하지만 위기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사람 사이의 소통, 공감, 협력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남긴 숙제의 과목은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이다.
주철현/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의학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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