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산업화로 부 이룬 한국, ‘손실과 피해’ 기금 힘 보태야”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로 대기 중 온실가스 배출을 많이 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중국, 영국, 유럽에 비하면 큰 규모는 아니지만, 그 기여도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한국이 ‘손실과 피해 기금’에 기여해야 한다고 ‘독려’하는 이유죠.”
아비나시 퍼소드 영국 그레셤 칼리지 명예교수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개최를 2주가량 앞둔 지난 17일 한겨레와 한 줌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빠른 경제 성장을 하며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난해 전세계 9위 수준까지 치솟은 것 등을 언급한 것이다. 퍼소드 교수는 “특히 한국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산업화의 결과로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국가가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손실과 피해 기금 기여를 통해) 국제 연대에 동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당사국총회는 선진국 등의 개발의 결과물로 나타난 기후변화가 개발도상국 등에 유발한 ‘손실과 피해’ 대응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어떻게 마련하고 어떻게 운용할지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자리다. 그는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이와 관련해 각국에 제시할 ‘권고안’을 논의한 전세계 협상가 24명 중 한 사람이다. 이들은 다섯차례 회의를 거쳐 이달 초 세계은행(WB)이 손실과 피해 기금의 수탁자이자 유치자로서 4년간 기금 운용을 하도록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권고안을 마련하고, 선진국을 비롯해 ‘능력 있는’ 개도국의 더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세계적 투자은행 제이피(JP)모건에서 고위 임원을 지내고, 전 런던 정경대 총장직을 맡는 등 산업 및 경제학계에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 존폐 위기에 있는 카리브해 동쪽 끝 작은 섬나라 바베이도스의 기후특사이기도 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기후 당사국총회 핵심 쟁점으로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을 꼽는다.
“브리지타운 이니셔티브(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불평등 심화 등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글로벌 금융 구조를 개편하자는 구상) 설계자 중 한 사람으로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모금해야 하는 금액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주요 20개국(G20) 국가다. 손실과 피해 기금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한국이 산업화로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손실과 피해 기금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국제 연대의 한 축이 될 것이다. 한국의 기술 역량을 활용하면 한국은 ‘그린 전환’에서 세계 선두 주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다른 국가들이 선도하고 있을지라도 한국이 선두에 서면 다른 개발도상국이 따라갈 수 있는 모범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달 초 손실과 피해 기금 구성과 운영에 관한 틀을 담은 ‘권고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쟁점은 무엇이었나?
“권고안을 만들 협상팀은 모두 24명이었다. 미국과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등 선진국이 절반을 차지하고 바베이도스와 브라질, 이집트, 파키스탄 등 개도국(한국도 포함)을 대표하는 협상가가 절반이었다.
세가지 주요 쟁점이 있었다. 첫번째는 지원 대상에 대한 것이다. 우선 기후변화에 취약한 모든 개발도상국이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특정 지원 대상에 기금이 지나치게 집중되지 않고, 잘 분산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두번째는 기금 수탁자를 선정하는 문제였다. (협상팀은 권고안에서 세계은행을 기금의 수탁자로 정했는데) 이때 ‘수탁’은 세계은행 기금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세계은행이 관리자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은행이 관리자로서의 일련의 조건들을 충족하면, 손실과 피해 기금의 수탁자가 되도록 합의했다.
가장 큰 논쟁이 된 세번째 쟁점은 결국 ‘누가 돈을 낼 것인가’다. 나는 개도국 대변인으로서 선진국들이 오늘날 대기 중 온실가스의 80%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우리는 선진국이 기금을 지원할 것을 ‘촉구’했다. 개도국 중에도 할 수 있다면 기금에 기여하도록 ‘독려’할 것을 합의했다. 예컨대 좀 더 능력 있는 개도국들, 한국이나 중국,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이 기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이 바로 손실과 피해 기금이다.”
―28차 당사국총회에서 손실과 피해 기금은 완전한 합의에 이를까?
“대단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룬 이 합의는 깨지지 쉬운 타협책이지만, 지금 누군가 다시 타협책을 만들기 위한 재협상을 하자고 용기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금은 운영될 것이고, 새로운 이사회가 임명될 것이다.”
―손실과 피해 기금 규모는 어느 정도가 돼야 하나?
“1천억달러(약 130조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손실 및 피해 규모는 연간 약 1500억달러(약 195조원)에 달하며, 2030년에는 3500억달러(약 455조원)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극심한 기상이변 등으로 인한 피해를 경험한 어떤 개도국이든 재건 및 재활 계획을 제시하면, 그 계획에 따라 보조금 기반의 (지원) 자금을 받게 될 것이다. 선진국들이 기금을 조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제 배출세와 같은 새롭고 혁신적인 재원 또한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제 배출세는 운송세나 해운세를 의미하는 건가?
“글쎄, 아직 잘 설계된 세금은 없는 것 같다. 가난한 나라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 해운, 항공, 화석 연료 세금을 설계하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기후는 매우 긴박하고 중요한 문제다.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브리지타운 이니셔티브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바베이도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 문제는 한국인과 바베이도스인이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기후변화에 취약해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흥미롭다. 짧은 삶을 이런 일에 바칠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손실과 피해’ 기금 지난해 COP27서 첫 공식 의제로 …수혜 대상 등 국가별 이견 가능성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는 홍수와 가뭄, 폭염 등 극한 기상 현상의 빈도와 강도가 늘어나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등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부정적 측면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작은 섬나라들로 구성된 군소도서국가연합(AOSIS) 등이 1992년 유엔 환경개발회의에서 처음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며 발생한 손실과 피해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30년 동안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등에서 이 문제는 늘 전세계적 화두가 되어왔다.
특히 지난해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선 사상 처음으로 손실과 피해가 공식 의제로 설정됐다. 파키스탄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기후이변으로 겪고 있는 피해가, 선진국들의 개발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이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 전세계가 동의한 것이다. 당시 총회에서 참가국들은 ‘손실과 피해 기금’을 조성하자는 데까지는 합의했지만, 기금 마련 방식과 운용 방안 등 구체적 내용까지 정리하진 못했다.
올해 열리는 28차 총회는 바로 이 기금의 운영 주체와 수혜 대상, 재원 공여 주체 등 구체적 내용을 결정하는 자리다. 이미 준비위원회는 다섯차례 회의 끝에 ‘권고안’까지 마련한 상황이다. 하지만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국가들이 이 권고안을 최종 수용할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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