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황니가』 찬쉐 “가상 공간과 삶이지만 동시에 현실… 동서양 문화가 서로에 본질이 되길”[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공간은 재봉틀을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어두울 때는 잘 보이지 않지만, 직사광선이 비추면 먼지가 주위에 가득했다. 표정이 없는 옷감으로 다양한 표정의 셔츠나 바지 또는 온기 있는 생필품을 만들었다. 서른 즈음의 그는, 재봉사였다.
급료는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재봉사인 남편과 함께 부지런히 일했다. 게다가 어린 아이들을 길러야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움직였다.
1983년, 재봉사 찬쉐의 시간은 늘 산산조각이었다. 일과 일 사이, 일과 보육 사이, 보육과 가사 사이. 그 사이의 조각난 시간에 그는 펜을 들었다. 조각난 시간은 많아야 30분. 조각난 시간을 문장으로 꿰는 것이 그에겐 소설쓰기였다.
“가장 큰 어려움은 시간이었습니다. 제게 아주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더없이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제게는 15분이나 20분, 30분 정도의 조각난 시간들밖에 없었지요. 가장 인상 깊고 이상한 일은, 뜻밖에도 제가 이런 부스러기 시간을 가지고 전체성과 일관성이 강한 작품을 써낼 수 있었다는 겁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 ‘황니가’를 배경으로 중국 사회의 모순과 인간 존재의 비애를 몽환적으로 형상화한 중국 작가 찬쉐의 첫 장편소설 『황니가(黃泥街)』(열린책들)가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단편소설 「더러운 물 위의 비눗방울」이 먼저 발표됐지만, 그가 처음에 쓰기 시작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의 진정한 첫 작품으로 평가된다.
소설 배경인 황니가는 검은 비와 먼지가 쏟아지고 오물과 동물 사체가 방치된 낯선 곳이자, 쥐가 고양이를 물어 죽이고 비쩍 마른 귀신이 나타나는 전복된 공간이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종말론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그 도시 변두리에는 황니가라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그런 거리가 없었다고 말한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가 황니가 아닌가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게 죽은 물고기의 눈빛을 보였다.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7쪽)
이야기는 화자인 ‘나’가 황니가를 찾아나서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황니가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만난 소년을 따라 어디론가 향한다. 황니가 사람들은 ‘왕쯔광(王子光)’이란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과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이 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에 왕쯔광이라고 불리는 물건이 왔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왜 그를 「물건」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누구도 왕쯔광이 사람인지 아닌지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줄기 빛 혹은 한 덩이 불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27쪽)
급기야 구청장이 황니가의 고민거리인 왕쯔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만, 구청장 역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도리어 구청장이야말로 왕쯔광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게 되는데.
작품은 황니가라는 모호한 배경과 함께 서사 구조와 등장인물들 역시 해체돼 있어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문화대혁명의 상흔이 깊게 패어 있는 중국 현실에 대한 고발적 은유로, 때론 필멸하는 인간 존재의 알레고리로, 또는 개인과 사회간 불화와 불통을 다룬 작품으로 읽히기도 한다. 읽는 이의 입장과 시선에 따라서 다양하게.
―공간적 배경인 황니가는 실재하는 장소입니까, 아니면 가상의 장소입니까.
“물론 황니가는 가상의 공간과 가상의 삶이지만, 동시에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 공간 혹은 지명을 작품 속에 끌어들인 목적은 생활을 예술로 변화시키는 것이었지요. 이제 저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마침내 자신이 매일 예술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창조하는 세계가 저를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황니가에 늘 해가 뜨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 늘 꿈과 연결되는데요.
“햇빛은 황니가 사람들의 대단한 희망입니다. 희망이 있어야 백일몽도 가능한 것이지요. 제 꿈이 프로이드의 꿈이 아니라, 예술가가 강력한 직관형 이성에 의지해 창조해낸 백일몽의 세계이자 이 대지 위에 존재하는 기이한 자연풍경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황니가 사람들이 기다리는 왕쯔광은 무엇을 상징하는지요.
“왕쯔광은 햇빛과 같은 유형의 사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영혼 깊은 곳에서 자발적으로 생성돼 나오는 그런 사물이 있을 것입니다. 황니가 사람들은 이런 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죠. 그것이 사라지지 않는 한 희망은 존재하는 것이지요. 나중에 드러난 사실들이 저의 처녀작인 이 소설 속에 그대로 암시되고 있습니다.”
―화자인 ‘나’를 비롯해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애정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저는 소설 속 인물들도 사랑하고 저 자신도 끔찍하게 사랑합니다. 모든 것이 저 자신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의 모든 인물들이 저를 유년시기로 돌아가게 해주고 인류의 세계에 대한 충분한 호기심을 갖게 해줍니다.”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요.
“『황니가』라는 소설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은 오래된 중국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가 서로 결합된,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본질이 되는 그런 문학관과 철학관이었습니다. 이처럼 강렬하고 자극적인 직관의 방식을 통해 두 가지 문화의 장점들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지요.”
바야흐로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대선회하던 시절, 재봉사 찬쉐의 나이는 서른 살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어떤 알 수 없는 ‘복수심’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발디딘 중국 사회와 자신의 삶에 새겨진 곳에서 비롯한.
그러니까 1957년, 지역신문사 대표였던 부모가 반공단체를 이끌었다는 이유로 노동 교화소로 끌려가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겨우 네 살이던 그는 부모와 떨어져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야 했다. 외할머니는 귀신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었고 ‘히스테릭하면서도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우파라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멸시를 받던 그는, 13세 때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초등학교를 끝으로 학교를 그만뒀다. 공장을 전전하며 온갖 일을 했다. 성인이 된 뒤에 결혼해 남편과 함께 재봉사 일을 했다.
서른 즈음, 오랫동안 혼자 공부해온 재봉사 찬쉐가 시작한 것은 글쓰기였다. 서너 살 때부터 늘 자신을 주인공으로 사람과 동물, 주변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만들던 그였다. 단순한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 신나는 이야기, 심지어는 끔찍한 이야기까지.
어린 시절 중국은 여전히 가난했고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는 사람도 거의 없던, 이상주의가 충만한 시대였다. 그 역시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것밖에 없었다. 독서였다. 읽고 또 읽었으며, 결코 멈추지 않았다. 어린 시절엔 루쉰과 고대소설 『홍루몽』을 좋아했고, 고골이나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러시아 작가도 사랑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서양 고전 속으로. 단테,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카프카, 괴테, 보르헤스, 칼비노⋯.
함께 재봉사 일을 하던 남편이 경제적으로 도와주면서 그는 창작 활동에 좀더 집중할 수 있었다. 1983년 어느 날, 그는 장편소설 『황니가』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소설가 찬쉐는 정식으로 『황니가』의 첫 구절을 쓰는 순간에 탄생했습니다. 자신의 모순된 자아를 드러내는 것이 동기이자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저는 대중의 일원인 동시에 또한 대중과 다른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이러한 모순성을 집요하게 표현해낼 때 저는 자신이 작가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1953년 중국 후난성 창사(長沙)에서 류머티즘 통증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병약한 아이로 태어난 찬쉐는 1985년 단편소설 「더러운 물 위의 비눗방울」을, 1987년 첫 장편소설 『황니가』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본명은 덩샤오화(鄧小華). 찬쉐(殘雪)는 ‘겨울 끝에 남아 있는 더러운 눈’ 혹은 ‘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순수한 눈’이라는 뜻을 가진 필명.
―작품 세계의 특징이나 경향을 조금 설명해 주십시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저는 중국과 서양이 융합된 모순된 문학관과 철학관을 추구합니다. 저는 자신에 대한 인식을 추구하는 독자들이 저 찬쉐를 통해 생명의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죠. 이를 통해 이 격동적이고 불안한 세계에서 반석처럼 안정적으로 존재하면서 다양한 차원의 창조에 종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요.”
―소설 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법이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소설을 쓰는 시간이 매일 한 시간을 넘지 않도록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이미지의 신선한 느낌을 파괴하지 않게 되니까요. 또 한 가지는 규칙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긴 하지만, 제가 쓴 소설 원고를 거의 수정하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또는 작품 계획이 궁금합니다.
“최근에 저는 2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대형 철학 저작물인 『물질의 굴기(物質的崛起)』를 완성했습니다. 이 저작물은 준비과정과 글쓰기 과정을 다 합치면 약 10년의 시간이 걸렸지요. 그 책을 쓰면서도 저는 계속 소설을 써 왔습니다.”
―글쓰기 루틴이나 하루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저는 일반적으로 오전과 오후를 포함해 낮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철학 관련 글쓰기에 몰두하고, 밤에는 소설을 씁니다. 매일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호흡 기공을 하고, 짧은 시간을 들여 조깅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제 몸은 글쓰기를 충분히 견디고 있습니다.”
개인의 탐욕과 사회의 어리석음, 그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사이에 놓여 있는 거대한 불통과 희망 없음이 우리를 비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때, 찬쉐는 펜을 들 것이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따박따박 쓸 것이다. 필멸과 소멸의 존재이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 사람과 세상이 돈과 권력을 향해서 악다구니로 또는 반역자로 속절없이 추락할 때, 찬쉐는 갈 것이다. 황니가로. 허구의 탈을 쓴 고통스러운 역사와 현실의 은유인지, 아니면 진짜로 완전히 아름다운 허구인지는 더 이상 중요치 않는 그곳으로.
“나는 일찍이 황니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찾았다. 몇 세기에 걸쳐 찾은 것 같았다. 꿈의 부스러기가 내 발 옆에 떨어졌다. 죽은 지 이미 오래인 꿈이었다. 석양과 박쥐, 풍뎅이, 애기괭이밥. 오래된 지붕은 아득하고 다른 모습이었다. 석양이 비쳤다. 이 세상은 무척 상냥하면서도 부드러웠다.”(314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찬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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