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與후보 당선시 전쟁? 헛소문 vs 전쟁 안나려면 野가 집권해야"

김철문 2023. 11.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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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대리전' 대만 대선 스타트…친미·독립 여당 라이칭더-친중 국민당 허우유이 '접전'
양안 긴장에 '전쟁'이 키워드, 경제도 이슈…"美도 中도 싫다"에 민중당 커원저 후보도 선전
젋은층 '정치 무관심' 느껴져…"싱싱한 사과 없는데, 그중 나은 사과 선택해야 해 안타까워"
[그래픽] 대만 총통 선거 '3파전'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0eun@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타이베이=연합뉴스) 김철문 통신원 =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가 총통에 당선돼도 양안(중국과 대만) 간 전쟁은 안 일어날 겁니다"(류모씨. 50대. 민진당 지지자)

"전쟁이요…그래도 양안 관계를 생각해 보면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가 당선돼야지 전쟁이 안 일어나지 않겠어요?"(장모씨. 60대. 국민당 지지자)

내년 1월 13일 치러지는 차기 대만 총통 선거(대선)는 야권 후보 단일화 무산으로 독립 ·친미 성향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후보, 친중(친중국) 성향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 그리고 중립으로 평가받는 민중당 커원저 후보 '3파전'이 됐다.

이번 선거가 라이 후보와 허우 후보 간 사실상 '미중 대리전'으로 평가받는 가운데, 현 차이잉원 정권에 노골적 반감을 드러내며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압박을 가해 온 중국이 선거가 다가올수록 압박 수위를 더 높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양안 간 전쟁'이 선거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허우 후보가 선거전 시작 첫날인 지난 25일 당 행사에서 "민진당에 투표하면 양안(중국과 대만) 간 평화가 없다. 모든 청년이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라이 후보가 이후 자당 행사에서 "가짜뉴스다. 중국의 인지전(cognitive warfare)"이라고 반박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기자는 지난 26일 북부 타이베이 228 평화기념공원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50대 회사원 류모씨는 자신이 강성 민진당 지지자라고 소개했다.

기자가 "라이 후보가 당선되면 양안간 전쟁이 발생할 것이라는 얘기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류씨는 "어릴 적부터 '세계 종말론'을 수없이 들어왔다"며 "라이 후보가 당선되면 양안 간 전쟁이 발생한다는 소문도 그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류씨는 "민진당은 대만을 위해 일을 하지만 국민당은 중국과 통일을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며 라이 후보 지지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전쟁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대만의 자유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60대 편의점 사업주 쉬씨도 기자에게 "라이 후보가 당선돼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쉬씨는 "양안 간 전쟁이 발생하면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대만만이 아닌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 선전 등 주요 남동부 해안 도시에 미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만 침공이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지지부진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중국인 반발이 거세질 수 있으므로 중국이 쉽게 전쟁을 선택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국민당 지지자들 기류는 달랐다.

간식을 사러 들린 음식점에서 국민당 지지자라는 60대 장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장씨는 기자가 "양안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떤 후보가 낫겠느냐"고 묻자 "내가 뭘 알겠느냐"면서도 "하지만 중국과 대만 관계를 살펴보면 아무래도 여당보다는 야당이…"라고 했다.

장씨는 그러면서 "물이 고이면 썩는다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라이 후보까지 8년을 집권하면 민진당이 16년을 집권하게 된다"며 "이번에 정권 교체가 안되면 민진당 부패로 인해 대만이 서서히 침체기로 빠져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만 총통 임기는 4년이고 중임이 가능한데, 지금까지 총통 중 연임에 실패한 사례가 없어서 일단 당선이 되면 '현직 프리미엄'으로 중임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역시 국민당 지지자라고 밝힌 50대 의사 후모씨는 총통과 전쟁간 상관 관계에 대한 기자 질문에 "(총통 선거 결과에 따라) 전쟁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므로 국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게 대만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민진당 때문에 대만 경제가 침체라고도 했다. 경제 때문에라도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거다.

후씨는 "중국과 관계 악화로 인해 민생이 엉망이라면서 대만 내 중심가인 중샤오둥루(忠孝東路) 인근에 가면 문을 닫은 가게가 수두룩하다"며 "대만 경제를 위해 허우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이 후보와 허우 후보가 치열한 '1위 싸움'을 벌인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일부 여론조사에서 2위를 차지하며 저력을 과시하고 있는 민중당 커원저 후보의 경우, 중립 노선이라 '친미-친중', '전쟁 논란'에서 한걸음 비켜서 있는 게 '장점'이 되고 있다.

그는 다른 두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 인기가 있다는 평이 많다.

지난 27일 대만의 핫플레이스 가운데 한 곳인 타이베이 융캉제 인근. 그 곳에서 만난 20대 후반 판모 씨는 독립 성향 민진당도 싫고, 친중 성향 국민당도 싫어 제3세력인 민중당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판씨는 "커 후보가 타이베이 시장 시절 매우 진솔했다"며 시장 선거 당시 해외 근무 중이어서 커 후보에게 투표를 못 해 미안했다면서 "이번에는 꼭 그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야권 단일화' 판을 깼다는 비판은 선거 내내 굴레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기자가 만난 고교 교사 천모(40대)씨는 기존 정치권을 바꿀 새로운 대안으로 민중당을 지지했었다고 밝혔다.

커 후보가 미중 관계에서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도 생각해 주위 사람들에게 대만의 미래를 위해 커 후보를 지지하라고도 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이번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보여준 '판을 깨는' 모습에 실망해 지지를 철회했다고 했다.

대만 언론에서는 50일도 남지 않은 총통 선거가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지만, 기자가 만나 본 젊은이 중에서는 선거에 관심이 없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228 평화기념공원 근처에서 만난 20대 대학생들은 이번 대선에 대해 4년 전인 2020년 선거 당시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대규모 반중 시위 사태와 같은 특별한 이슈도 없을뿐더러 눈에 띄는 후보도 없다고 말했다.

그중 한 명은 기자에게 "'싱싱한 사과(후보)'가 없는데, 그중에 나은 사과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공대생은 "내년 1월 대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상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도 했다.

기자가 26∼27일 이틀간 타이베이시와 신베이시 등에서 만나 본 수도권 시민들은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거의 예외 없이 익명을 요구했다.

반중(反中)과 친중 정당이 정권을 주고받아 온 대만에서 대체로 정치 이야기는 민감한 영역이다. 더군다나 양안(중국과 대만) 긴장이 고조된 요즘에는 더 그렇다는 점을 절감할 수 있었다.

jinbi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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