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긴 밤 지새우고"…'아침이슬' 김민기 학전의 '마지막 봄'
연극계 "폐관 소식에 놀라…남은 극단에도 관심·지원을"
(서울=뉴스1) 임윤지 기자 = "엄마가 아빠랑 여기서 데이트했대요. 없어지기 전에 엄마 사진이라도 남기려고요."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학전블루 소극장 앞에서 만난 김모씨(27·여)는 어머니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옆에 있던 김씨 어머니도 30년 전이랑 극장이 똑같다며 웃어 보였다.
모녀를 움직인 건 학전이 폐관한다는 소식이었다. 코로나19 전후로 계속된 재정난, 학전을 이끌어왔던 '아침이슬' 김민기 대표의 투병이 겹치면서 더 이상 운영이 어려워 폐관을 결정했다. 폐관일은 내년 3월15일이다.
'학전(學田)'은 말 그대로 '배우는 밭'이라는 뜻이다. 뮤지컬 작곡·연출가 김 대표가 지난 1991년부터 33년여간 가꿔온 무대다. 이곳을 상징하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김 대표가 독일 작품을 번안해 초연한 이래 4200회 이상 상연, 누적 관객 70만명을 달성하며 뮤지컬계의 새 역사를 썼다.
학전에서 배우고 익혀서 스타로 발돋움한 이들이 적지 않다. 고 김광석, 설경구, 조승우, 황정민 등 학전 출신이다. 학전의 폐관 소식에 가수·문화계 인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년 2월28일부터 3월14일까지 가수 박학기, 동물원, 이은미, 윤도현 등이 출연료 없이 학전에서 릴레이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학전의 화려한 피날레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소중한 추억 함께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학전 사랑해요."
이날 기자가 찾아간 학전 사무실 벽 한편을 채우고 있는 문구다. 작성자가 누구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관객이나 출연 배우가 남긴 글귀로 추정된다.
김 대표를 포함해 학전에 있는 직원은 모두 10명. 연극을 하지 않는 날엔 직원 3명만 출근한다고 한다.
폐관 소식이 알려지면서 학전을 추억하는 이들이 다시금 많이 방문한다고도 했다. 대학생 때 왔다가 시간이 흘러 대학생 자녀와 함께 온 부모, 어릴 적 향수를 추억하려 지방에서 달려온 중장년층까지 다양하다.
학전 관계자는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준 덕에 평일에도 120~130명 정도 관객이 꾸준히 찾고 있다"며 "토요일엔 160석이 다 차기도 했다. 원래 관객 연령대가 높은 편인데 요즘엔 가족끼리 오거나 2030세대들도 공연을 보러 온다"고 웃어 보였다.
학전 폐관 소식은 대학로 인근 동료 예술인들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학로 소극장에 새로운 작품들은 매년 계속 나오지만 그다음 해까지 살아남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렇기에 3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학전과 그 작품이 사라지는 건 단순히 소극장 하나가 사라지는 것 그 이상의 의미라고 입을 모았다.
뮤지컬 연기학원을 운영하는 A씨는 "우리 학원에 다니는 수강생도 얼마 전부터 학전 무대에 서게 돼 기뻐했는데 폐관 소식을 전해 듣고 놀랐다"며 "상품성 있는 작품만 하다가 사회 고발성·완성도 있는 작품에 갈증을 느껴 학전에 서보고 싶어 하는 연극 배우들도 여전히 많다"고 아쉬워했다.
예술인들의 생업과 남은 극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학전에 이어 2002년부터 21년간 공연해 온 한얼소극장도 올해를 끝으로 문을 닫는다. 지난 2020년 140여개 였던 소극장은 올해 130여개 미만까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지난 2일 발표한 '2023년 3분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연극 티켓 판매액은 약 150억원으로 전체의 공연계 매출의 4.6%에 불과했다. 반면 연극 공연횟수는 1만3000여회로 가장 많았다. 그만큼 수익성이 낮다는 얘기다.
공연기획사에서 연극을 주로 홍보·유통해 왔다는 전모씨도 "현재 운영 중인 극단들도 임대료·대관료 상승, 제작비 부담으로 작품을 자체 무산시킨 경우도 많다"며 "극단이 사라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60년 넘게 대학로에서 음악을 해왔다는 박모씨(78·남)도 학전의 폐관 소식에 동료 예술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공연은 관객한텐 취미이고 문화생활이지만 우리한텐 생업"이라며 "평생 연극·음악만 바라보고 살아온 예술인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immun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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