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죽는 사람 많을 것"…무료급식 '밥퍼' 위기, 고물가 직격타

김온유 기자, 최지은 기자 2023. 11. 29.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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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인근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사진=김온유 기자


"우리는 여기가 없어지면 갈 곳이 없어요. 주민센터도 밥은 안 주거든요."

28일 서울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인근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에서 만난 박준구씨(90)는 아침 식사를 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아침 메뉴로는 눌은밥과 삶은 달걀, 야채 샐러드, 빵 등이 제공됐다. 그는 "(밥퍼를 몰랐을 때는)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식으로 시간을 때웠다"며 "밥퍼가 사라지면 안 된다. 노인들의 마음과 배를 불려주는 휴게소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식당은 오전 6시부터 아침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눌은밥을 만드느라 식당은 고소한 냄새로 가득찼다. 배식 시간이 돼 노인들이 하나둘 식당에 들어오자 봉사자들은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밥퍼는 아침과 점심 하루 두 끼를 책임진다. 일요일을 제외한 주 6일간 운영한다. 아침 식사는 오전 7시부터 8시까지, 점심식사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제공된다.

홀몸노인과 노숙자들의 쉼터가 돼주는 밥퍼는 1988년 청량리역 광장에서 라면을 끓여주던 것에서 시작했다. 현재 매일 5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밥퍼 봉사자들은 배식에 참여하고 어르신 앞에서 공연도 연다. 이날도 한국입양홍보회에서 20명이 봉사에 나섰다. 봉사자 이다은양(14)은 "봉사하는 게 처음인데 어르신들이 많이 오셔서 챙겨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오늘 어르신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다음에 또 하고 싶다.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공연을 본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28일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에서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이날 점심 메뉴는 돼지고기 김치찌개, 청경채 볶음, 계란찜, 김치 등이었다./사진=김온유 기자


김모씨(78)는 "밥퍼가 좋은 점은 일요일 빼고 매일 밥을 준다는 것"이라며 "식사 메뉴도 매일 바뀌는데 심지어 기부 물품도 나눠줘 명절 때는 2000명 넘게 올 때도 있다. 그럼 줄이 굴다리 너머까지 길게 늘어서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매일같이 밥퍼를 방문하는 이들도 있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첫차를 타고 아침마다 밥퍼를 찾아온다는 류정길씨(90)는 "매일 오전 5시12분 지하철 첫차를 타고 남양주에서 온다"며 "여기 다닌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혼자 살아서 아침과 점심 모두 먹고 간다"고 말했다.

밥퍼는 코로나19(COVID-19)가 유행하던 지난 2년 동안에도 운영을 멈출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바깥에서 생활하는 것에 제약을 받으면서 어르신들이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김미경 밥퍼 부본부장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아졌을 때 3주 정도 문을 닫았는데 어르신들이 밖에서 병들어 죽는 게 아니라 굶어 죽겠다고 전해왔다"며 "이를 듣고 도시락이라도 싸야겠다는 생각에 도시락에 담아 식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에서 28일 제공한 점심식사 사진. 메뉴는 돼지고기 김치찌개, 청경채 볶음, 계란찜, 김치 등이다/사진=-김온유 기자


코로나19 고비는 잘 넘겼지만 최근 밥퍼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후원은 감소했기 때문. 김 부본부장은 "하루에 양파 20㎏과 대파 10단은 기본으로 사용하고 쌀도 엄청나게 쓴다"며 "물가가 올라서 대파 한 단은 2만5000원에서 4만5000원으로 올랐고 식용유도 18ℓ에 2만8000원 하던 게 6만8000원으로 인상됐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정한 1인 식사비 4500원에 맞춰 식단을 짜는 게 쉽지 않다. 김 부본부장은 "밥퍼에서 먹는 한 끼로 하루는 버티는 어르신들이 정말 많다"며 "질이 낮은 식사로 영양을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밥퍼는 지난해에 비해 직원을 5명에서 2명으로 줄였다. 난방비 등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사람이 많이 모이면 난방을 끄는 등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밥퍼는 일명 '개미군단' 덕에 버티고 있다. 개미군단은 밥퍼를 방문하는 봉사자 등 개인 기부자들이 하는 소액 정기 후원을 말한다. 한 달 고정 식비는 6000만~7000만원에 달한다.

설상가상으로 지자체 후원이 끊기면서 밥퍼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최근 동대문구청에서 밥퍼가 증축한 가건물이 불법 증축이라고 소송을 걸면서다. 김 부본부장은 "식수 인원이 1000명에 달할 때는 인원에 맞게 보조금이 많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다 끊겼다"며 "예전에 후원했었던 기업들에게 전화를 돌리면서 후원을 요청하는데 여의찮다"고 말했다.

소송으로 인해 밥퍼 운영이 중단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김씨는 "여기는 매일 밥을 주고 더 먹고 싶으면 또 떠다 먹을 수 있는데 밥퍼가 사라진다면 매일 1000명의 끼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밥퍼가 없어지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거다. 당장 나도 굶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28일 오전 5시 찾은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의 모습. 밥퍼는 일요일을 제외한 주 6일 오전 7~8시와 오전 11시~오후 1시에 식당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사진=김온유 기자


김온유 기자 onyoo@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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