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인생] 정성만큼 쑥쑥 크는 식물, 무너진 자존감 채워줬죠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녹록잖은 환경
집에만 있는 시간 계속되며 식물 재배
강남 한복판 주택서 옥상텃밭 가꾸고
고양 북한산 자락서 순환 농법도 연구
“도시민들에게 쉼터 될 수 있었으면…”
경기 고양 북한산 자락, 이곳엔 지나가던 사람이 보면 버려진 땅이라고 생각할 만한 텃밭이 있다. 바닥 곳곳엔 해진 야자매트와 목재칩이 깔렸고 그 위로 오래전 떨어진 낙엽이 쌓여 있었다. 죽은 나무와 시든 꽃까지도 제자리를 계속 지킨다. 잡초같이 무성한 풀만이 낙엽과 뒤섞여 초록을 뽐낸다. 이곳은 도시농부가 된 배우 양달샘씨(49)가 ‘순환 농법’을 연구하는 밭이다.

“이 기다란 풀은 호밀이에요. 겨울에 눈이 와도 잘 자라는 튼튼한 식물이죠.”
양씨가 10a(300평) 규모로 텃밭을 꾸리는 목적은 먹을 것을 키워내는 게 아니라 땅을 살리는 실험을 하기 위해서다. 흙 위에 여러겹으로 쌓인 야자매트, 목재칩, 낙엽, 죽은 식물은 땅을 촉촉하게 유지해 다양한 미생물과 지렁이가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 지렁이는 땅속에 구멍을 내며 공기와 물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고 분변은 거름이 된다. 지렁이가 늘어나면 이들을 먹고 사는 두더지도 많아진다. 두더지는 땅을 파며 작물 뿌리를 헤쳐 농부들의 골칫거리로 여겨지지만 양씨의 생각은 다르다. 깊은 곳까지 벌레 등 먹을 것이 풍부한 땅에 사는 두더지는 식물 뿌리보다 더 아래에서 살아 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큰 굴을 파서 땅속의 공기와 물이 잘 통하게 한다. 그의 텃밭엔 닭 10여마리를 사육하는 닭장도 있다. 닭들은 밭에서 자란 작물을 먹고, 닭똥은 밭의 거름이 돼 다시 작물을 자라게 한다. 그의 밭에서 나온 모든 것들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순환을 이룬다.

연기를 하던 양씨는 어떻게 ‘호밀밭의 파수꾼’이 된 것일까.
“처음 데뷔했을 땐 운이 참 좋았어요. 여러 뮤직비디오에 쉽게 출연했거든요.”
군 제대 후 어떤 일을 할까 생각하던 양씨는 지인의 소개로 1999년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유명 뮤직비디오 감독 밑에서 당대 최고 가수인 룰라·디바·최진영 등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꿈에 그리던 배우 일을 하게 됐지만 업무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스태프 일까지 도와야 했다. 결국 그는 뮤직비디오 제작사를 나와 영화계로 자리를 옮겼으나 상황은 매한가지였다. 영화 촬영 중 한 중진배우의 눈에 띄어 그의 소속사에 들어갔지만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몇년간 방치돼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세븐 데이즈’ 등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배우 생활을 이어오던 2007년 무렵, 그는 또다시 어려움을 맞게 된다. 이상하리만치 모든 오디션에 다 떨어져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였어요. 제가 잘나갔을 때 옆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하나둘 곁을 떠나가더라고요.”

집에만 있는 시간이 계속될 때, 그의 유일한 친구가 돼준 건 식물이었다. 어려서부터 무언갈 키우는 것을 좋아했고, 서울대학교 수의학과를 나와 가축분뇨를 퇴비로 만드는 것을 연구했던 아버지 영향도 있었다. 정성을 들이는 만큼 쑥쑥 커가는 식물은 그의 자존감도 함께 채워줬다. 처음에는 집 베란다에서 화분을 키우다가 식물을 더 많이 키우려고 옥상을 쓸 수 있는 집을 찾아 나섰다. 2009년 서울 강남구에서 이같은 조건에 맞는 빌라를 발견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화분 몇개로 시작했던 옥상 텃밭은 다양한 식물로 132㎡(40평)를 꽉 채우게 됐다. 옥상 테두리에 틀밭을 두고 그 위에서 수박·포도·참외·머루·토마토·당근 등 여러가지 작물을 재배한다. 무게 때문에 흙을 많이 쓰지 않는 대신 잘라낸 나뭇가지를 다시 틀밭에 집어넣는다. 그는 흙보다는 죽은 식물이 작물을 잘 자라게 하는 양분이 된다고 말한다.
양씨의 옥상 텃밭은 밖으로 삐져나온 나무들 덕에 강남 한복판 주택가에서도 눈에 띈다. 루프탑 카페인 줄 알고 들어오는 사람도 여럿 있고 동네 주민들도 자주 찾는다.
“그렇게 오는 사람들이 밉지 않고 제가 애써 만든 옥상 텃밭이 관심을 받아서 오히려 기쁘더라고요. 친절하게 설명도 해줍니다.”
양씨는 옥상을 텃밭으로 꾸린 비법과 순환 농법을 ‘이세계농부’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 카페를 통해 알리고 있다. 조회수가 가장 많이 나온 영상은 4만회가 넘을 정도로 그의 농법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배우를 하기 전 농사를 먼저 알았더라면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농사를 지을 땐 빛과 물이 중요하지만 과하면 오히려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연기를 할 때도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순리에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단다. 그는 지금도 연기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언젠가는 서울 한복판에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 텃밭을 만들고 싶어요. 삭막한 도시 사람들이 제 텃밭에서 쉼을 얻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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