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된 아기, 세 살 쌍둥이… 세계를 울린 어린 인질들
캄캄한 어둠이 깔린 27일(현지 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복면에 소총으로 무장한 하마스 조직원들 사이로 세 살 쌍둥이 자매 엠마·율리 쿠니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7일 가자 인근 니르오즈 키부츠(협동 농장)의 집에서 납치된 아이들이다. 당시 함께 끌려간 어머니 샤론(34)이 이날 풀려났고 아이들 이모와 다섯 살 사촌도 지난 24일 석방됐지만 아버지 데이비드(33)는 여전히 가자에 억류됐다고 추정된다. 소셜미디어 활동과 방송 출연을 통해 이들의 석방을 촉구해온 친척 알라나 자이트칙은 뉴욕타임스(NYT)에 “(엠마·율리는) 가장 행복한 쌍둥이였지만 (납치를 겪어)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남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간 하마스에 인질로 붙잡혔던 이스라엘인 50명과 외국인 19명 등 총 69명이 석방됐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은 오는 29일까지 이틀간 더 휴전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이스라엘 인질 20명이 더 풀려날 예정이다. 이스라엘 인질 1명당 3명꼴로 팔레스타인 미성년·청년 수감자도 풀려나는 중이다.
당초 이런 일시 휴전과 인질 석방 과정에서 평화 분위기가 찾아오면서 하마스에 대한 비판 여론도 다소 누그러질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현재 결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부모를 잃고 납치까지 당한 아이들이 풀려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전 세계는 착잡함과 함께 분노도 느끼고 있다. ‘약자 보호’라는 전쟁의 불문율을 무시하고 평온한 가정에 들이닥쳐 잔인한 민간인 살해 공격을 자행한 하마스에 대한 비판 여론이 다시 커지는 모습이다.
이날까지 풀려난 아이 상당수는 부모의 죽음이란 현실에 내던져졌다. 납치 50일 만인 지난 26일 풀려난 이스라엘·미국 국적 여아 아비게일 이단(4)은 지난달 7일 키부츠의 집 안에서 부모를 총격에 잃었다. 당시 아버지가 아비게일을 몸으로 감싼 채 총에 맞았고, 아비게일은 피를 뒤집어쓰고 이웃집으로 달려가 숨었지만 하마스에 끌려갔다. 오빠(10)와 언니(6)는 부모가 살해되는 모습을 보고 옷장에 14시간 동안 숨어 납치를 피했다. 아이들 할아버지 카멜은 “현재 아이들은 충격으로 의사들과 함께 있다”고 했다.
인질로 붙잡혔다가 풀려난 아이들의 아버지들은 죽었거나 여전히 가자에 억류돼 있다. 이번 석방이 우선 아이들과 여성을 위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27일 석방된 에이탄 야할로미(12)의 아버지 오하드는 하마스 습격 당시 팔과 다리에 총을 맞고 가자로 끌려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당시 가족과 떨어져 납치되면서 “사랑한다”고 외쳤다고 친척들이 급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날 어머니와 함께 풀려난 미카(18)·유발(11) 엥겔의 아버지와, 사하르(16)·에레즈(12) 칼데론의 아버지도 각각 가자에 붙잡혀 있다고 알려졌다.
현재 아이들이 속속 풀려나고 있지만 인질 240여 명 중 최연소로 알려진 생후 10개월의 크피르 비바스는 석방되지 않았다. 하마스가 납치 당시 촬영해 유포한 영상에서 어머니 쉬리(32)가 빨간 머리의 크피르와 형 아리엘(4)을 담요에 꼭 감싸안은 모습은 모성애와 하마스의 잔혹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스라엘군 아랍어 대변인 아비하이 아드라이는 “이 가족은 지난달 7일 하마스에 납치됐으나 이후 가자지구 내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으로 옮겨져 현재 (가자 남부 도시) 칸유니스에 억류됐다”고 밝혔다. 습격 당시 하마스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이슬라믹지하드(PIJ) 등 가자지구의 다른 무장 단체도 인질들을 붙잡아 갔다. 이 단체들은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습과 지상군 진입 공격을 회피할 수단으로 아이들을 포함한 인질들을 ‘인간 방패’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하마스가 몰살한 가족들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습격 당시 가자에서 2.4㎞ 떨어진 키부츠에서 총에 맞아 죽은 케뎀씨 가족 5명에는 여섯 살 쌍둥이와 네 살 아이가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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