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오일머니 맞서 막판까지 도전···분패했지만 미래 경제-안보협력 계기 마련

강동효 기자 2023. 11. 29.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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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선정을 위한 투표를 하는 프랑스 파리 외곽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장 앞에서 부산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부산엑스포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서울경제]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를 위해 구축한 네트워크가 앞으로 우리의 우방을 넓힐 귀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의 의의를 이렇게 표현했다. 부산이 강력한 유치 후보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벽에 막혀 고배를 마셨지만 엑스포 네트워크 조성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엑스포 유치에는 실패했어도 우리의 외교·경제 지평을 넓히며 기업들의 경제 영역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총리가 이끄는 부산엑스포 민관 유치위원회는 28일(현지 시간) 리야드가 유치 도시로 선정되자 박수를 보내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민관 유치위는 500여 일 동안 최선을 다하며 유치 활동을 했던 만큼 후회는 없다는 입장이다. 민관 유치위의 지난 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 열성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부터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 돼 부산 유치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윤 대통령이 방문한 국가만 96개국, 정상은 110명에 달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올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뒤 4박 6일 동안 40여개국 정상과 만나 부산엑스포 지지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은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 기간 중 현지에서 부산엑스포 지지를 설득하기 위해)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10개국 정상들을 만났고 때로는 13개국 정상들까지 만나 설득시키는 강행군을 펼쳤다”며 “시작 첫날은 간단한 점심 한 끼로 하루를 때우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 총리 역시 아프리카·북유럽 등을 분주히 다니며 “부산 이즈 레디(Busan is ready)”를 외쳤다. 한국 총리가 가나·토고·말라위·카메룬 등을 찾은 것은 우리나라와 수교 이후 처음이었다. 한 총리는 또 한국 총리로는 처음으로 크로아티아를 찾는 등 엑스포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하며 한국의 외교 지평을 넓혔다. 한 총리는 이와 관련해 “지구 400바퀴 넘게 돌면서 쌓은 ‘엑스포 네트워크’를 소중히 키워가고 싶다”며 “마일리지 쌓듯 대한민국의 미래 자산을 적립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유치 활동은 이번 패배에도 불구하고 미래 도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은 ‘오일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비해 후발 주자였기 때문에 판세를 뒤집기 어려웠다. 인지도 측면에서는 리야드뿐 아니라 또 다른 경쟁도시 이탈리아 로마보다 떨어졌다. 이에 맞서 우리 측에서는 민관이 합심해 부산 홍보에 나섰고 로마를 넘어서 리야드를 추격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런 가운데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2030 엑스포’ 개최지를 결정하는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 최종 불참했다.

비록 투표에서 패배했지만 이웃 나라 일본과 우호 회복을 확인했다는 점은 값진 성과다. 일본은 원유 수입 등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당초 리야드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부산 지지 방침으로 선회했고 해당 내용이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한국의 약진은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전달됐다. BIE 총회가 열린 프랑스 파리 ‘팔레 데 콩그레’ 로비에서 사우디의 신경전과 방해 공작은 치열했다. 히잡을 쓴 사우디 측 인사들은 한국 대표단을 가로막아 BIE 회원국 대표단과 접촉을 막는가 하면 한국 대표단과 인사하는 일부 회원국 대표를 데려가기도 했다. 부산 측 관계자는 사우디의 이 같은 훼방에도 개의치 않고 연신 ‘부산’을 외쳐댔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사우디가 한 명씩 데리고 나가는데 이런 불투명한 상황 때문에 끝까지 촉각을 곤두세운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부는 엑스포 유치 활동을 통해 쌓은 네트워크만으로도 커다란 자산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한 총리는 소셜미디어에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지정학적 위기가 터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주요국 외교에만 집중해서는 불안정한 시대를 견뎌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구축한 ‘엑스포 네트워크’가 그래서 소중하다”며 “이 네트워크가 때로는 우리 시장이 되고 때로는 우리 방패와 갑옷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엑스포 유치 활동은 북한의 무력시위 등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는 시국에 우리의 안보 지형도 넓힌 것으로 평가된다.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는 한반도 안보 지형에서 우리의 평화 정책을 지지하는 제3 국가를 늘리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엑스포 유치에는 실패했으나 이번 유치 경쟁 과정에서 국제사회에 약속한 주요 공약들은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불평등·디지털격차 등 인류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책적 지지와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강동효 기자 kdhy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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