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기적 없었다 … 韓, 오일머니 맞서 '후회없는 투혼'
리야드 119·부산 29·로마 17표
한국 막판 역전극 노렸지만
초반 열세 끝내 극복하지 못해
투표 직전까지 경쟁 치열
히잡 쓴 사우디측 인사들
韓대표단 가로막고 신경전도
막판 대역전극도 각본 없는 반전 드라마도 없었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진행된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결정 투표 결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최종 선정되자 5차 프레젠테이션(PT) 마지막 주자로 나선 한덕수 국무총리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형준 부산시장, 나승연 부산엑스포 홍보대사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총리는 투표 결과 발표 후 "결과가 국민 여러분의 열화와 같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송구스럽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형준 시장은 "아쉬운 결말을 드리게 돼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무엇보다 엑스포 유치를 국가사업으로 정해놓고도 사우디보다 1년이나 늦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야 본격적인 유치전에 나선 점이 가장 뼈아픈 대목"이라고 밝혔다. 박 시장은 "외교가에서 국가와 국가 간 약속을 뒤늦게 우리가 나서서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면서 "초반 열세를 극복하는 데 그만큼 어려움이 컸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특히 오일머니를 앞세운 경쟁국의 유치 활동에 대응이 쉽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회원국을 향한 사우디의 물량 공세는 상상을 초월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 보도 등에 따르면 사우디 측은 파리 외곽의 한 비행선 격납고에서 호화로운 연회를 열었다. 이 연회에는 세계적인 아프리카 축구 스타 디디에 드로그바까지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프리카에서 온 참석자들은 드로그바와 사진을 찍기 위해 달려갔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또 프랑스의 유명한 조명 영상쇼를 수중에서 보여줬으며 값비싼 블루 랍스터와 오세트라 캐비어 등을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사우디는 '변화의 시대: 미래를 내다보는 내일을 위해 함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엑스포 유치전에 78억달러(약 10조1673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원팀 코리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 총리는 공식 만찬 일정 중에도 전화가 오면 수십 분간 통화하며 부산 지지를 요청했고 만찬이 끝난 뒤에도 늦은 밤까지 한 표를 호소하는 통화를 이어갔다. 총리실 등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막판 이틀 동안 한국과 사우디 사이에 서로 확보한 지지표를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교섭 경쟁이 전개됐다.
개최지 선정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는 한국과 사우디 간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총회가 열린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 로비에 들어서는 각국 대표에게 누가 먼저 인사하느냐에 엑스포 유치가 달렸다고 생각하는 듯 경쟁은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히잡을 쓴 사우디 측 젊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한국 대표단 앞을 가로막아 BIE 회원국 대표단과 접촉하는 것을 방해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졌다. 한국 대표단과 얘기하는 BIE 회원국 대표들의 팔뚝을 툭툭 건드려 돌아보게 한 뒤 총회장 밖으로 데려가는 모습도 심심찮게 목격됐다.
한국은 1차 투표에서 이탈리아에 앞선 뒤 결선 투표에서 사우디에 역전승을 거둔다는 전략과 목표를 세우고 유치전을 펼쳐왔다. 결선에서 유럽 표와 사우디 이탈 표를 흡수하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경쟁 상대인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개최지를 결정하는 BIE 총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는 이탈리아 매체들의 보도가 나오면서 "역전극이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비록 유치전에서 패하긴 했으나 그 과정에서 구축한 글로벌 외교 네트워크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게 정부와 재계의 평가다. 대표적인 자산이 이번 엑스포 유치 활동을 하면서 생겨난 다양한 최초 사례들이다. 예컨대 가나, 말라위, 크로아티아 등 여러 나라를 정상급으로서 수교 후 처음 방문했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외교가 지난 수십 년간 크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던 국가들이 많았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유섭 기자 / 정승환 기자 /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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