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빙이라더니 90표차 완패 “착잡·허무”…2035 재도전 추진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이유섭 기자(leeyusup@mk.co.kr), 정승환 전문기자(fanny@mk.co.kr), 문광민 기자(door@mk.co.kr) 2023. 11. 29. 01: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부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박형준 부산시장, 한덕수 국무총리,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을 비롯한 대표단이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투표 결과 부산이 탈락하자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막판 대역전극도, 각본 없는 반전 드라마도 없었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진행된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결정 투표 결과 사우디 리야드가 최종 선정되자 5차 프레젠테이션(PT) 마지막 주자로 나선 한덕수 국무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형준 부산시장, 나승연 부산엑스포 홍보대사는 아쉬움을 감추질 못했다.

총회 직전까지만 해도 박빙 승부를 펼치고 있다고 분석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90표라는 큰 표 차이가 나자 곳곳에서 허무한 표정도 감지됐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아쉬운 결말을 드리게 돼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무엇보다 엑스포 유치를 국가사업으로 정해놓고도 사우디보다 1년이나 늦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야 본격적인 유치전에 나선 점이 가장 뼈아픈 대목”이라고 밝혔다. 박 시장은 “외교가에서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을 뒤늦게 우리가 나서서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며 “초반 열세를 극복하는데 그만큼 어려움이 컸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특히 오일 머니를 앞세운 경쟁국의 유치 활동에 대응이 쉽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 부산은 전 세계로부터 뛰어난 역량과 경쟁력, 풍부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 부산시민과 충분히 논의해 2035년 엑스포 유치 도전을 합리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재도전을 시사했다.

실제로 회원국을 향한 사우디의 물량 공세는 상상을 초월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 등의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 측은 파리 외곽의 한 비행선 격납고에서 열린 호화로운 연회를 열었다. 이 연회에는 세계적인 아프리카 축구 스타 디디에 드로그바까지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프리카에서 온 참석자들은 드로그바와 사진을 찍기 위해 달려갔다고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또 프랑스의 유명한 조명 영상쇼를 수중에서 보여줬으며, 값비싼 블루 랍스터와 오세트라 캐비어 등을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사우디는 ‘변화의 시대: 미래를 내다보는 내일을 위해 함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엑스포 유치전에 78억달러(약 10조1673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팀 코리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박형준 부산시장(왼쪽부터), 한덕수 국무총리,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 투표결과 부산이 탈락한 뒤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덕수 총리는 공식 만찬 일정 중에도 전화가 오면 수십분간 통화하며 부산 지지를 요청했고, 만찬이 끝난 뒤에도 늦은 밤까지 한 표를 호소하는 통화를 이어갔다. 총리실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막판 이틀 동안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서로가 확보한 지지표를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교섭 경쟁이 전개됐다.

개최지 선정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는 한국과 사우디 간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총회가 열린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 로비에 들어서는 각국 대표들에게 누가 먼저 인사하느냐에 엑스포 유치가 달렸다고 생각하는 듯 경쟁은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히잡을 쓴 사우디 측 젊은 여성들과 남성이 한국 대표단 앞을 가로막아 BIE 회원국 대표단과의 접촉을 방해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졌다. 한국 대표단과 얘기하는 BIE 회원국 대표들의 팔뚝을 툭툭 건드려 돌아보게 한 뒤 총회장 밖으로 데려가는 모습도 심심찮게 목격됐다.

한국은 1차 투표에서 이탈리아에 앞선 뒤 결선 투표에서 사우디에 역전승을 거둔다는 전략과 목표를 세우고 유치전을 벌여왔다. 결선서 유럽 표와 사우디 이탈 표를 흡수하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그간 엑스포 개최지 투표에서는 1차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국가가 결선에서도 승리했지만 새로운 사례로 역전하기 위해 막판까지 치열한 유권자 마음 잡기에 나선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경쟁 상대인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개최지를 결정하는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는 이탈리아 매체들의 보도가 나오면서 “역전극이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비록 유치전에서 패하긴 했으나, 그 과정에서 구축한 글로벌 외교 네트워크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게 정부와 재계의 평가다. 대표적인 자산이 이번 엑스포 유치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최초 사례들이다. 예를들어 가나, 말라위, 토고, 카메룬, 크로아티아 등 여러 나라를 정상급으로서 수교 후 처음 방문했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외교가 지난 수십년간 크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던 국가들이 많았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 국가와 협력의 물꼬를 트고 우리 외교의 지평을 확대함으로써, 앞으로 우리 정부가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 큰 자산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