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삶을 위로하는 라틴어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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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가장 멀리 있고 땅에서 제일 가까운 별(Stella ultiam a caelo, citima terris·스텔라 울티마 아 카일로, 치티마 테라스).”
하늘에서 가장 멀리 있고 땅에서 제일 가까운 별, 무슨 뜻일까요? 최근 출간된 한동일 작가의 책 ‘라틴어 인생 문장’(이야기장수)에서 읽은 구절입니다. 혹시 ‘사람’ 혹은 ‘나’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한동일 작가는 “이 땅에서의 삶이 힘겨울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리고 있다”며 “여기서 말하는 별은 바로 당신과 나, 인간을 은유한 것이 아닐까요?”
독서시장에 라틴어 붐을 일으켰던 한동일 작가가 새 책을 펴냈습니다. 아시는 분이 많겠지만 한 작가는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교황청 대법원(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된 분입니다.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에서 930번째 변호사일 정도로 어려운 코스를 통과한 분이지요. 2001년 유학길에 올라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교회법학 석·박사 과정을 최우등으로 마치고 로타 로마나 변호가가 된 분입니다. 귀국 후 그가 서강대에서 한 라틴어 수업은 인근 대학 학생들까지 청강을 할 정도의 명강으로 소문 났습니다. 그 수업 내용을 엮어 펴낸 ‘라틴어 수업’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요. 그랬던 한 작가는 2021년 사제직을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그가 사제직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삶을 돌아보며 펴낸 책이 ‘라틴어 인생 문장’입니다.
‘작가의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제 인생은 사제가 되기 위해 준비했던 10년, 마침내 사제가 되어 신실한 사제로 살아가고자 했던 20여 년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제 세계의 대부분이 그 울타리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소속이 없다는 것은 인생에 공백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백이라 여겨도 세상의 관점에서는 공백이었습니다. 어딘가 불완전한 사람, 단단히 뿌리내리지 못한 채 이동하며 방황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10대, 20대 때 못 해봤던 경험을 50대에 겪어나갔습니다. 이 글들은 그런 가운데 쓰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당차게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어 이렇게 몸부림쳐 방황했다’고 조용히 고개 숙이는 한 인간의 고민과 고백의 문장들”이라며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저를 일으킨 제 인생의 라틴어 문장들을 여기에 모아둔다”고 했습니다.
라틴어는 서양의 한문 같은 언어이지요. 지금은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언어이지만 서양 언어의 모태로 여겨집니다. 프랑스 파리 구시가지에는 ‘카르티에 라탱(Quartier Latin)’이라는 구역이 있습니다. ‘라틴어를 사용하는 구역’ 즉 학생과 지식인들이 활동하는 학문의 중심, 지성의 중심이라는 뜻이지요. 어릴 적 서양 위인전을 읽다보면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라틴어 때문에 무척 고생한 이야기가 등장하곤 했습니다. 저 역시 대학시절 라틴어 수업을 한 학기 들었지만 그 복잡한 구조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라틴어 자체가 아닌 라틴어 격언, 경구를 들려줍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마음에 새길 구절들이 많았습니다.
전작에서도 그렇지만 이 책에서도 한 작가는 자신의 삶과 라틴어 격언을 연결시켜 설명하곤 합니다. 그래서 그 옛날의 라틴어 구절이 현재의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가령 ‘약한 사람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만 강하다(Infirmi tantum valent iis qui sunt proximis·인피르미 탄툼 발렌트 이이스 퀴 순트 프록시미스)’란 문장은 어떤가요. 저자는 이 문장에 어린시절 겪었던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모습을 떠올립니다. 밖에서는 호인으로 불렸지만 가정에서는 피하고 싶었던 아버지. 작가가 언젠가부터 아예 술을 입에 대지 않게 된 것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보는 ‘폭군’은 가장(家長)만이 아닙니다. 청소년도 그렇습니다. 그와 면담했던 청소년들도 약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상대로 강했습니다. 어머니죠. 자신의 상황이 어렵고 복잡할수록 어머니를 괴롭혔다고 합니다. ‘방에서 안 나오기’ ‘잠만 자기’ ‘가족과 일절 대화 안 하기’ 등의 방식으로요. 그런 청소년들이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상냥하고 좋은 사람인 경우를 많이 봤다는 것이지요.
‘아파도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Aegroto dum anima est, spes esse dicitur·애그로토 둠 아니마 에스트, 스페스 에쎄 디치투르)’라는 경구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Dum vita est, spes est)’라는 문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하지요. 한 작가는 이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가 생략돼 있다고 합니다. 바로 ‘아파도’라는 것이지요. 키케로의 원문에는 ‘아파도’가 있는데 후대에 줄인 문장이 더 유명해졌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삶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대충 살며 쉬운 선택을 하고 싶은 욕망에 빠진다”며 “그런 순간들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일러둡니다. 그래도 너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 있고, 살아가려 한다고. 아무리 아파도 살아 있는 동안 희망은 있다고”라고 말합니다.
‘타인의 삶은 우리에게 스승이 된다(Vita aliena est nobis magistra·비타 알리에나 에스트 노비스 마지스트라)’는 문장은 어찌 보면 너무나 뻔한 이야기이지요. 그렇지만 이 문장에서 작가는 고(故) 이어령 선생을 떠올립니다. 중학생 시절 이 선생의 책을 읽고 “뇌의 자극을 넘어 심장의 떨림을 느꼈고, 그 경험은 ‘소년 한동일’에게 공부에 대한 새로운 열망을 심어주었다”고요. 그러면서 “모든 책이 선생이 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의 선생이 되어줄 인생책은 세상 어딘가에 꼭 있다”고 강조합니다.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Vexatio storia fiat)’라는 문장도 있습니다. 저자는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 하려면 시간과 견딤이 필요합니다. 아픔이 고여 썩고 무르면 사람을 망치지만, 아픔이 숙성되어 스토리가 되면 한 사람의 생을 증언하는 역사가 됩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작가는 책 제일 앞에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Ad astra per aspera)’라는 문장을 배치했습니다. 작가는 여기서 ‘per’를 ‘넘어’뿐 아니라 ‘통과해야만’으로 해석을 덧붙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별에 이르는 길에도 언제나 고난이 뒤따릅니다. 닥쳐오는 고난들을 직면하고 견뎌내는 이들은 결국 자신의 별에 가닿을 것입니다. 역경에 짓눌려 별에 이르는 길을 잊지 않기만 한다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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