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가짜가 판치는 세상… 올해의 단어 ‘authe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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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이 가고 새로운 팬데믹이 시작됐다.
허위 정보의 대유행에 '가스라이팅' 당할까 걱정하다 이젠 진위 구분이 어려워 '진짜'가 뭔지 찾아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출판사인 메리엄웹스터가 팬데믹(2020년) 백신(2021년) 가스라이팅(2022년)에 이어 올해의 단어로 '진짜' '참된' '진정한'이란 뜻의 '어센틱(authentic)'을 선정했다.
인공지능(AI)이 만드는 딥페이크 시대 '진짜의 위기'를 반영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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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단어는 조회수와 검색량으로 선정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막말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체포당하는 가짜 이미지가 확산될 때마다 ‘authentic’ 검색량이 증가했다. 미 국방부가 화염에 휩싸인 가짜 사진이 ‘속보: 펜타곤 근처에서 폭발’이라는 제목으로 유포됐을 때는 검색량뿐만 아니라 미 국채와 금값이 치솟고 뉴욕 증시가 하락했다. 가짜가 진짜 시장을 움직인 것이다.
▷요즘 전쟁은 가짜정보와의 전쟁이기도 하다. 특히 취재가 통제된 중동전에서 ‘온라인 병사’들의 암약이 활발하다. “이스라엘 총리 병원에 긴급 이송” “하마스가 이스라엘 아기들 참수”라는 속보가 전해졌지만 거짓이었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든 축구 스타 호날두, 다섯 아이를 업고 안은 팔레스타인 아버지도 AI 합성물이었다. 이스라엘 기관에 따르면 전쟁 관련 소셜미디어 계정 5개 중 1개가 가짜다.
▷“거짓말이 지구 반 바퀴를 도는 동안 진실은 신발을 신고 있다”는 말이 있다(영국 소설가 조너선 스위프트). 실제로 자극적인 정보를 선호하는 소셜미디어의 보상 체계 탓에 가짜의 확산 속도가 훨씬 빠르다. 매사추세츠공대 연구진에 따르면 허위 정보가 트위터 사용자들에게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이 진짜보다 6배 빨랐다. 트위터를 인수해 회사명을 ‘X’로 바꾼 일론 머스크는 “소셜미디어에선 authentic해야 한다”며 사용자 인증 유료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가짜정보 퇴치는 못 하고 ‘authentic’ 조회수만 올려놓았다.
▷거짓말도 인플레 법칙을 따른다. 통용될수록 가치가 떨어지고 진짜가 주목받는다. ‘잔인하도록 진실된’ 영국 왕실 얘기를 담은 해리 왕자의 자서전 ‘스페어’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가창력과 함께 “살찐 내 모습이 더 좋다”는 진솔함 덕분에 억만장자가 됐다. 65세 여배우가 처지고 주름진 몸으로 나오는 넷플릭스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가 흥행한 한 해였다. 연출된 이미지 가득한 인스타그램에 질린 청년들이 보정 불가 프랑스 앱 ‘비리얼(Be real)’로 몰리고 있다. 내 눈도 내 귀도 믿을 수 없는 가짜 시대의 역설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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