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FA 영입 최강전력 구축… 부활한 LG ‘신바람 야구’[인사이드&인사이트]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입력 2023. 11. 28. 23:39 수정 2023. 11. 2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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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만에 통합 우승 LG
구광모 LG 구단주와 선수들이 13일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뉴스1
《“이제 LG 트윈스 팬들은 더 이상 ‘1994’가 아니라 ‘2023’이라는 숫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구광모 프로야구 LG 구단주는 29년 만의 통합 우승을 기념하는 축하 행사에서 이렇게 말하며 일본 오키나와 전통 소주 ‘아와모리’가 든 술잔을 들었다. 이 술은 구본무 LG 초대 구단주가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다음번 우승 때 축배를 들자’며 마련한 술이었다. 2018년 세상을 떠난 구본무 구단주는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하늘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며 자신의 술잔을 들고 있었을 것이다.

많은 LG 팬들의 ‘야구 시계’는 1994년에 머물러 있었다. 그해 LG는 1990년 창단 첫 우승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LG 신바람 야구의 시대였고, LG의 줄무늬 유니폼은 가장 많은 선수들이 입고 싶어 하는 옷이었다.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LG가 1994년 이후 세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까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리라는 것을.》


● 10년의 암흑기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1990년대 최고 인기 팀이었던 LG는 2000년대 초반까지 강팀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1990년부터 2002년까지 5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상위권 싸움을 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마지막으로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LG는 단 한 번도 ‘가을 잔치’ 무대를 밟지 못했다. 비밀번호 같은 ‘6668587667’이 10년간 팀 순위였다. 최하위도 2번이나 했다.

구단의 지원이 모자랐던 건 아니다. 필요한 선수가 있으면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꾸준히 선수들을 영입했다.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도 여전했다.

하지만 10년간의 ‘암흑기’ 내내 LG는 조급증에 빠져 있었다. 당장 성적을 내야 했기에 유망주를 꾸준히 기용하지 못했다. 성장할 기회를 찾지 못한 유망주들은 줄줄이 도태됐다. 당시 LG는 ‘유망주의 무덤’으로 불렸다. 이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한 뒤 잠재력을 폭발시키면서 ‘탈G 효과’라는 말도 생겼다.

성적이 나지 않을수록 조급함은 더해졌고, 이는 성장을 방해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 기간에 이순철 감독을 시작으로 양승호, 김재박, 박종훈, 김기태 감독으로 사령탑이 계속 바뀌었다. LG 감독 자리 앞에는 ‘독이 든 성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 10년의 준비기

암흑기를 뚫고 포스트시즌 진출을 다시 이뤄낸 건 김기태 감독 시절이던 2013년이었다. 그해 LG는 정규시즌 2위로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차명석 현 LG 단장은 투수코치로 팀 평균자책점 1위(3.72)라는 성과를 냈다.

그즈음 LG는 선수 육성에도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2014년 7월 경기 이천시에 문을 연 LG챔피언스파크가 선수들을 위한 요람이었다. 두 면의 야구장과 실내 수비 훈련이 가능한 실내 돔 연습장까지 갖춘 이 시설은 최고의 설비를 갖췄다는 평을 들었다. 메인 야구장에는 안방인 서울 잠실구장과 똑같은 천연잔디를 깔았고, 펜스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재질을 썼다. LG 유망주들은 이곳에서 오롯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2010년대 중반이 되면서 LG는 ‘유망주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었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한 문보경(내야수), 홍창기, 문성주(이상 외야수) 등이 이곳에서 실력을 키웠다. 투수 가운데서는 고우석, 이정용, 정우영 등 LG가 스카우트해 키운 유망주가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LG의 두꺼운 선수층은 나머지 9개 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화수분 야구’로 불렸던 두산 관계자들도 몇 해 전부터 “우리보다 LG에 좋은 선수들이 더 많이 자라고 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2019년 차명석 단장 부임 후 LG는 육성과 성적을 동시에 노리는 팀이 됐다. LG는 그해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우승을 노크했다. 지난해엔 팀 창단 최다승(87승)을 거두며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키움에 1승 3패로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 구슬 서 말을 꿴 ‘염갈량’

올해부터 LG 지휘봉을 잡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염경엽 감독은 “이런 팀 감독을 맡은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했다. 그는 “선수단 구성이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동안 좋은 선수를 많이 키웠고, 필요한 포지션에는 기량이 검증된 FA를 데려왔다”고 했다.

남은 건 선수들이 ‘이기는 맛’을 느끼는 거였다. 지난해까지의 LG는 좋은 전력에도 불구하고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곤 했다. 염 감독은 시즌 전부터 선수단을 향해 공격적인 야구를 주문했다. “망설임과 두려움은 나의 적이다”라고 쓴 문구를 라커룸 위 통로에도 붙였다.

선수들은 시즌을 치를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지고 있어도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올해 LG가 정규시즌에서 거둔 87승 가운데 42승이 역전승이었다. LG는 연승은 길게 끌고 가고, 연패는 짧게 끝내는 팀이 됐다. LG는 6월 27일 선두로 올라선 뒤 끝까지 1위 자리를 지키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뀐 순간

8일 열린 KT와의 한국시리즈(7전 4승제) 2차전은 올해 LG 야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1차전을 먼저 내준 LG는 이날 2차전에서 선발투수 최원태의 난조로 1회부터 4점을 먼저 내줬다.

1회부터 불펜을 가동한 LG는 이후 7명의 구원 투수를 차례로 마운드에 올렸다. 이정용-정우영-김진성-백승현-유영찬-함덕주-고우석이 이어 던진 LG 불펜은 8과 3분의 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투수진이 버티는 사이 추격을 이어가던 LG는 8회에 터진 박동원의 투런 홈런으로 경기를 5-4로 뒤집었다.

이날 경기를 통해 LG는 두꺼운 선수층과 두려움 없는 야구를 다시 한 번 과시했다. 다른 팀에 2, 3명밖에 없는 투수 필승조가 LG에는 7명이나 있었고, 타자들은 언제든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포수 박동원은 “투수 7명의 스타일이 다 다르고, 던지는 변화구도 다 다르다. 타자 입장에선 계속 새로운 투수를 만나다 보니 공략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염 감독은 “만약 2차전을 내줬다면 우승이 멀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2차전 역전승을 통해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다”고 했다. LG는 이후 3∼5차전을 모두 잡아내며 우승을 확정 지었다.

● ‘LG 왕조’ 시대 열리나

올해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한 LG는 내년 이후에도 강팀으로 군림할 가능성이 크다. 전체적으로 선수층 연령대가 높지 않은 데다 우승 경험까지 쌓았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뽑힌 오지환은 “앞으로 올해 함께했던 선수들과 LG 왕조 시대를 열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염 감독 역시 “최근 LG가 밟아온 시스템적인 부분을 업그레이드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간다면 올해 우승이 왕조를 향한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변수도 적지 않다. 올해 뒷문을 책임졌던 마무리 투수 고우석이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 시스템을 거쳐 MLB 진출을 노리고 있다. 재계약이 확정된 외국인 투수 켈리도 올 시즌엔 예전 같은 구위는 아니었다. 야수진에서도 새로운 얼굴들이 나와 활력을 더해야 한다. 1994년 LG의 우승 포수였던 김동수 서울고 감독은 “타선에 30대 베테랑 선수들이 적지 않다. 자라나는 선수들이 언제든 이들을 대체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꾸준히 정상을 노리는 강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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