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근속, 이제 SSG를 떠나는 '김강민 부장님'을 위하여 [스포츠텔링]
스무 살 나이에 입사한 첫 직장에서 23년이라는 시간을 근속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인고의 시간도, 영광의 시간도 모두 함께했습니다.
모두에게 박수받는 마지막 동행을 꿈꿨지만, 냉정한 조직은 아름다운 마무리 대신 다른 곳으로 그를 보내는 선택을 했습니다.
SSG 랜더스와 김강민의 이야기입니다.
'베테랑'이라는 수식어가 다소 부족해 보일 정도로 KBO 역사상 가장 오래 한 팀에서 뛴 '짐승' 김강민은 SSG 랜더스의 전신인, SK 와이번스의 장수 팬들조차도 기억이 흐릿한 '파란색 SK' 유니폼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선수였습니다.
23년간 몸바친 팀에서 20대에도, 30대에도, 40대에도 모두 우승의 기쁨을 누리며 명실상부 팀의 간판,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었죠.
그렇게 선수생활 끝자락을 향해 가던 올해, 김강민이 SSG에서 내쫓기듯 다른 팀으로 적을 옮기는 일이 생긴 겁니다.
KBO의 '2차 드래프트'는 각 팀별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선수들이 팀을 옮겨 새로운 무대에서 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10개 팀 모두가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 35명의 명단을 제출한 뒤, 그 명단에 없는 선수들을 나머지 팀들이 돌아가며 한 명씩 뽑아 가는 제도인 겁니다.
그러니 주축 선수들에게 '35인 명단'에서 빠진다는 것은 사실상 '전력 외 선수'임을 통보받는 일입니다. 우리 팀의 새로운 시즌 구상에는 없으니, 다른 팀에서 얼마든 골라가도 좋다는 의미에서입니다.
김강민이 적을 옮기게 된 것도 이 '2차 드래프트'를 통해서입니다. SSG는 김강민을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만 41세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그가 여전히 경쟁력 있는 선수라고 평가한 한화 이글스는 그를 선택했습니다.
막상 일이 벌어지자 SSG 랜더스의 프론트는 언론 인터뷰들을 통해 '(김강민을) 지명할 줄 몰랐다,' '난감하고 당황스럽다'며 김강민의 이적에 난색을 표하는 듯 했지만, 정작 2차 드래프트 과정에서 다른 팀들에 은퇴 조율 사실을 전혀 고지하지 않은 것과 한화 측 지명 이후 그제서야 선수를 만나 은퇴를 권유했던 것이 알려지며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삼성 라이온즈가 당시 선수생활 막바지이던 이승엽을, 두산 베어스가 올해 만 38세 베테랑 김재호를 보류 선수 명단에 묶은 것, 심지어 2012년 한화 이글스가 '은퇴 직전'의 레전드 투수 박찬호를 무려 '20인 명단' 안에 묶었던 전적과 크게 비교됐죠.
일각에서는 현역 연장 의지가 강했던 김강민을 구단에서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 아니냐는 추측은 물론, 2021년 SK 와이번스에서 모기업이 바뀌며 새롭게 네이밍된 SSG 랜더스가 전신 SK의 색깔을 지우기 위해 어떻게 보면 SK의 색채가 강하게 남아있는 베테랑 김강민을 다른 팀으로 내어준 것 아니냐는 의견들도 쏟아졌습니다.
실제 SSG는 지난해 우승 대업을 이룬 전신 SK의 마지막 감독 김원형을 계약 해지함은 물론, SK에서 오랜 시간 선수생활을 바탕으로 코치를 역임하고 있던 채병용·조웅천 투수코치와 정상호 배터리코치 등 많은 'SK맨'들과도 결별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저변에 깔려 있는 의미가 무엇이든, 김강민과 SSG는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습니다.
며칠 간 고민을 거듭한 끝에 김강민이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 한화 이글스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기로 한 까닭입니다.
물론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본인이겠지만, 그를 떠나보낸 SSG의 동료들 역시 베테랑 김광현과 한유섬을 필두로 크게 동요하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SSG는 '2차 드래프트 사태'의 책임을 묻겠다며 김성용 단장을 보직해임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와이번스의 색채만큼이나 크게 옅어져 버린 '인천 야구'의 향수.
긴 세월 팀과 호흡하며 팬들을 웃고 울렸던 베테랑들을 등번호 너머 가슴에 품었던 팬들의 '민심'은 이번 SSG의 행보에 꽤나 큰 상처를 입은 듯 보입니다.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변수가 많은 스포츠에요. 그 변수를 맞이했을 때 경험이 없는 선수나, 젊은 선수들은 당황하기 마련인데, 베테랑 선수들은 좀 의연하다고 해야겠죠. 실수도 많이 해봤고, 실패도 많이 해봤으니까. 많은 경기들이 남아있고, 설사 오늘 경기가 잘못되더라도, 다음 경기가 또 중요하다는 걸 아는 선수들도 많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베테랑의) 힘인 것 같아요."
- 지난 4월 28일, 키움-SSG전 수훈선수 김강민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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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전용호 (yhjeon95@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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