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 대만위기 이후의 세계시장
세계 질서가 혼란스럽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미국의 중동정책은 크게 타격을 입었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동에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넘실거리던 대만해협 위기론은 주춤거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호흡을 조절하고 있다.
지난 11월15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양자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4시간 동안 회담하고 산책·오찬을 함께했다. 공동성명은 없었지만, 군사 분야의 소통채널을 복원하기로 했다.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은 예방하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는 시진핑 주석을 ‘독재자’라고 언급하는 돌출 행동을 했다. 미국 스스로 관념·이념의 세계(‘인도·태평양’)와 현실의 세계(‘아시아·태평양’) 사이에서 혼란에 빠져 있음을 노출했다.
미·중 양국 모두 리더십의 목표가 현실을 초월하는 이념적 측면이 강하다. ‘더 위대한 미국’ ‘중국몽’ 등 운운이 그러한 예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서로의 이념이 충돌했을 때의 파국적 결과도 분명하다. 미·중 간 군사적 전면충돌은 세계자본주의는 붕괴 위기를 의미한다.
미국은 1970년대에 중국과 관계를 열면서 ‘하나의 중국’을 인정했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1년 전 시진핑 주석과의 발리 회담에서는 중국과 충돌할 의도가 없다고 발언했다. 충돌로 가는 결정적 뇌관은 역시 ‘대만독립’ 문제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에 충성하는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선출되었고, 추가적인 군사 예산 편성과 집행이 쉽지 않다. 트럼프는 반중국 입장이지만, 대만문제에의 군사적 개입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바이든·트럼프 모두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은 쉽지 않다. 현상 유지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대만위기의 고비는 내년 1월 치러지는 대만 총통 선거다. 현재는 민진당, 국민당, 민중당 후보의 3파전 양상이다. 민진당이 다소 앞서가고 있지만, 지지율이 30%대라고 한다. 이 정도로는 ‘대만독립’으로 현상을 급변경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 금융자본, 그리고 이들과 소통하는 재무부·상무부는 세계경제의 안정을 기대하는 쪽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도 저성장과 재정 문제에 직면해 있다. ‘대만독립’의 행동이 돌출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모험주의 행동에 나설 이유를 구체화하기 어렵다.
미국, 중국, 대만의 주요 행위자들이 대만위기를 더 고조시키는 쪽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향후 세력권 경쟁의 각축장은 첨단 산업과 동남아 시장이 될 것이다. 미국은 우선 반도체 산업의 첨단기술이 중국에 유입되는 것을 적극 봉쇄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검약적 혁신’으로 대응할 것이다. 기술적 스펙 및 기능을 낮춘 제품·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다(은종학 교수). 중국은 수출통제를 우회하여 진입장벽이 낮은 구형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차전지 및 전기차 산업에선 중국이 크게 앞서고 있다. 이차전지 분야에선 중국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2022년 글로벌 10개 이차전지 업체 중 중국 기업이 6개이며, 1위 기업인 CATL이 39%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한국도 10위 안에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3대 기업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들 비중을 모두 합쳐도 CATL 한 기업의 60% 정도다. 중국은 특히 원료 채굴과 가공 공정을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리튬가공의 60%, 코발트가공의 80%를 점한다.
중국은 2010년대에 들어서서 이차전지 산업과 함께 전기차 산업 발전에 주력했다. 그 결과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 전기차 중 약 60%가 중국에서 판매되었다. 중국 업체 BYD의 2022년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17.3%였고, 테슬라는 12.1%였다. 중국은 해외시장으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제 시장의 격전지는 동남아가 되고 있다. 중국 업체 BYD, 창안자동차, 네타는 태국에 전기차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중이다. 원래 동남아에 기반이 강했던 일본 도요타는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미쓰비시는 태국에서 전기차 생산을 확대하려 한다. 한국의 현대차·기아는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서 현지 생산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도, 중국도, 대만도 대만위기를 충돌로 끌고 가는 것은 부담스럽다. 한국도 인·태 또는 아·태 지역으로 나아가려면, 대만위기의 덫에 붙들려 있어서는 안 된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대만문제를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한 발언에 대한 퇴로를 찾을 필요가 있다. 일선의 기업들이 지고 있는 외교문제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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