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바디올로지] 올바른 가슴, 예쁜 가슴, 나쁜 가슴

이유진 입력 2023. 11. 28. 18:45 수정 2023. 11. 2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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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바디올로지]15 _유방, 젖가슴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지난달 독일 베를린 복합문화공간인 훔볼트포럼에 20세기 초 한국 여성의 전신사진이 걸렸다. 젊은 여성이 입은 저고리 아래로 젖가슴이 훤히 보였다. 관람객들의 관음증을 다분히 자극하는 이 옛 사진에는 “(조선 여성들이) 가슴을 보여주면서 아들의 탄생을 암시했다”는 설명이 붙었다. 하지만 곧 일본인의 연출사진이란 의혹이 나오면서 전시품은 철거됐다. 주독일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이 연 전시였다. 식민지의 낙후성을 강조하고 피억압자인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일제의 연출에 한국 정부가 1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한 꼴이 됐다.

주독일 대한민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이 독일 베를린 훔볼트포럼에서 연 ‘2023 한국 유물 특별전 아리 아리랑’ 전시. “(1904∼1907년 베이징 주재 독일제국 공사관에 근무한) 아돌프 피셔가 1905년 한국을 방문해 직접 촬영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달렸지만, 일본인이 연출 촬영한 뒤 판매한 ‘한국풍속풍경 사진첩’에 포함된 사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이 사진을 독일인이 찍었다고 해도 제국주의 남성의 시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런 조선 여성의 ‘젖가슴 사진’은 이 한장만이 아니었고 서구 전시도 처음은 아니었다. 120년 전 한반도의 여성들이 젖가슴을 드러내고 외국인 남성들에게 사진 찍힌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당시 여성들의 가슴 노출이 일반적인 관행도 아니었고 아들을 낳은 여성만의 문화적 관습도 아니었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1956년, 미국 시카고 자연사박물관에 젖가슴을 드러낸 한국 여성들의 사진이 ‘인종관’에 전시된 것을 본 한국인들은 ‘동방예의지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나 1980년대 중후반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젖가슴 풍속사진’은 ‘아들 사랑’이라는 한국인들의 민속문화 징표로 여겨져 정설처럼 역수입되었다. 미개한 인종을 구경거리 삼은 전시장에 한민족 여성들의 노출 사진이 놓였다며 분개했던 한국인들이 30년 뒤 ‘한국인 정체성’이란 식으로 식민의 이미지를 받아들인 것이다.(전보경, 2008) 그리고 30여년 뒤, 독일에서 다시금 이런 낭패가 벌어졌다. 대관절 여자의 가슴이 뭐길래.

예부터 남성 문인들은 젖가슴을 순결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썼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는 시구로 유명한 이상화의 시 ‘나의 침실로’(1923)는 교과서에 실리면서 청소년들의 뇌리에 에로틱한 상상력을 심어주었다. 전봉건의 시 ‘유방’(1969)과 나태주의 시 ‘수밀도’(1980)도 그 맥을 계승했다. 여성 신체를 먹을 것에 비유한 시적 표현은 여성을 사람 그 자체로 볼 수 없도록 시야를 가렸다.

유방은 사회적 제도였다. 서구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여성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유방까지 철저히 규율하며 제도화했다. 이전까지 아이를 낳으면 젖어미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장 자크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유수유가 사회변혁의 초석이 될 것이라 보았다. 그의 책에 영향을 받아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낙농장에서 양젖을 짰고 유방 모양의 잔까지 제작했다.

2016년 논란이 된 국가건강정보포털. 여성의 이상적인 가슴 형태를 설명하고 있다.

1920~30년대 한반도 도시 중산층에서도 ‘주부 교양’에 바탕한 근대적 육아법이 단연 화제였다. ‘신여성’은 성적으로 문란하고 사치스럽다고 지탄받았지만 ‘신어머니’는 극찬을 받았다. 기혼여성들은 집안의 어린이를 과학적 육아법에 따라 길렀다. 시간에 맞춰 젖을 먹이는 ‘시간젓’이 아이를 건강하게 기르리라 믿었고 언론은 이런 사례를 우량아대회 수상 육아기를 통해 홍보했다.(김혜경, 2006)

전쟁 중 여성의 유방은 선전도구였다. 메릴린 먼로, 제인 맨스필드 같은 ‘핀업 걸’은 열광의 대상이었다. 문화대혁명기 신중국에선 죽어가는 팔로군에게 젖을 먹여 살려냈다는 혁명 미담을 다룬 ‘올바른 젖가슴’론이 유행했다. 젖가슴은 전시엔 병사들을 위로하는 상징이자 힘을 주는 에너지원이었고 평시엔 국가의 동량을 기르는 모성이자 남성을 즐겁게 하는 농염하고 유혹적인 신체로 재현되었다.

국가가 공인한 ‘올바른 젖가슴’론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결합한 형태로 2000년대 이후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2016년 8월,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국가건강정보포털에서 여성의 가슴을 다룬 문서가 논란이 됐다. “가슴은 여성들의 신체 중에서 (…) 남편에게는 애정을 나누어주는 곳”이라 적시하고 아름다운 가슴의 조건을 “한쪽에 250㏄ 정도의 크기”, “쇄골의 중심과 유두 간의 거리는 18~20㎝”, “유륜의 직경은 4㎝를 넘지 않아야 하며”, “색깔은 연한 적색을 띠는 것이 보기 좋다” 등 공산품 규격처럼 정교하게 나열한 문서였다. 보건복지부, 대한의학회, 대한성형외과학회가 작성 및 감수한 이 문서는 대중의 비판을 받고서야 삭제됐다.

1997년 ‘노랑나비’ 이승희의 방한을 기다리는 사람들. 한겨레 자료사진

‘예쁜 가슴’ 담론이 불붙은 건 1990년대 후반. 1995년 비디오 ‘젖소부인 시리즈’가 화제가 된 뒤 1997년 미국 남성잡지 ‘플레이보이’ 모델 이승희가 방한했을 때다. 남성들은 열광했고 여성들 사이에서도 유방성형 붐이 일었다. 이상적인 젖가슴을 결정하는 것은 이성애자 남성의 시선이었다. 이를 과학적인 근거로 포장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털 없는 원숭이’를 쓴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여성의 젖가슴은 수유 기능보다 성적 기능이 우선한다고 보았다. ‘유방은 가슴에 달린 엉덩이’라는 가설이다. 그렇다면 꼭 유방이 가슴에 달릴 필요도, 두개만 생길 이유도 없지 않았겠는가? 많은 도전을 받은 이 가설은 지금은 낙후한 것이 되었다.

여성이 자발적으로 드러내는 ‘나쁜 가슴’은 사회적 금기이자 저항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1970년대 미국 여성들은 브라를 벗어 던지며 여성해방을 촉구했다. 1976년 한국의 동일방직 파업농성장에서 전투경찰 수백명이 농성장을 포위하자 여성노동자들은 옷을 벗었다. 남자 경찰이 손을 대지 않을 거라 생각해 다급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옷을 벗은 것이다. 2000년대 노출시위를 벌인 여성들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다수였다. 이들의 노출시위는 ‘최후의 저항’이었고 사회적 금기에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강경한 투쟁이라고 분석되었다.(김주희·임인숙, 2008)

2018년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은 상의를 벗은 게시물을 삭제한 페이스북에 항의하며 페이스북코리아 앞에서 노출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공연음란죄로 체포하려 하자 이들은 저항하며 “여성의 가슴은 음란한 것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여성의 자발적인 탈의 사진을 잡아내던 인공지능은 성폭력적 댓글이나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사진, 동영상은 걸러내지 못했다고 이들은 분노했다.

가수 설리는 2016년께부터 자신의 ‘노브라’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뒤 ‘관종’이라고 비난받았지만 발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시리즈 ‘페르소나: 설리’에서 그는 “(노브라 이후)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고 수치스러움에서 조금 벗어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노브라 논란으로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던 설리는 2019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2008년 우크라이나에서 창설돼 섹스관광과 성매매 반대투쟁을 시작한 페미니스트 단체 ‘페멘’은 반라시위로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정치적 목소리를 내던 이들은 국가 정보기관에 납치되고 체포되면서도 활동을 이어나갔다. 페멘 창시자 중 한명인 옥사나 샤츠코는 2013년 페멘을 탈퇴한 뒤 프랑스로 망명했지만 2018년 31살 나이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가 박영숙은 유방암에 걸린 자신의 가슴을 찍은 자화상에 “유방이 없어도 여성은 아름답다”고 적었다. 1980년 사진작가 헬라 해미드가 유방암으로 유방 절제수술을 받은 작가 디나 메츠거를 찍은 사진제목은 ‘전사’였다.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는 유방암에 관한 시에서 “나는 손가락을 대고 싶다/ 당신의 유방이 있던 자리에”라고 썼다.

1980년 사진작가 헬라 해미드가 유방암으로 유방 절제수술을 받은 작가 디나 메츠거를 찍은 사진, 전사. 1980.

오래전 내 어머니는 겉옷 위로 젖꼭지가 보이는 남자들을 가리켜 “노브라네예~”라고 조롱하곤 했다. “왜 남자들은 속옷을 갖춰 입지 않느냐”고 말했는데, 여성의 가슴에만 규제와 훈육을 주입하는 사회에 대한 항의처럼 보였다.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한쪽 유방이 있던 자리에 손을 대보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한쪽 가슴을 잃은 전사 같기도 했다.

몇년 뒤 내 아버지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맬 때는 어느 남성 성직자가 병문안 와 여성 누드화보집 한권을 슬며시 놓고 갔다. 전장에서 스러져 가는 남성군인에게 건넨 위문품인 듯했다. 여성 간호사들과 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굽이진 생을 끝마치는 임종기 환자 병실에 덩그러니 놓인 누드집은 ‘남자여, 힘을 내라!’라고 쓸쓸히 외쳐 부르고 있었다. 어머니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참고자료: 조선 여성의 ‘젖가슴 사진’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전보경, 2008) 유방의 역사(메릴린 옐롬 지음, 윤길순 옮김) 성스러운 유방사(다케다 마사야 엮음, 김경원 옮김) 식민지하 근대가족의 형성과 젠더(김혜경, 2006) 가슴이야기(플로렌스 윌리엄스 지음, 강석기 옮김) 한국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노출투쟁(김주희·임인숙, 2008)



이유진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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