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너와 나' 조현철 감독, 칼날 같은 연기력 뒤에 쌓아올린 놀라운 통찰력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조현철에게 자꾸 눈길이 갔던 건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바나나우유를 좋아하지만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우 홍주 역을 연기했을 때부터다.
한일고와 한예종 동기이기도 한 절친 배우 박정민은 '쓸만한 인간' 저서에서 "조현철은 천재다. 조현철은 아직도 넘을 수 없는 산 같다"며 극찬한바 있다. 이후 영화 '터널'(김성훈 감독)과 드라마 '호텔 델루나', '구경이',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등에서 열연을 펼쳤던 그는 2022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 시즌1에서 군 가혹행위의 피해자인 조석봉 일병 역을 통해 칼날 같이 날카로운 연기를 펼치며 대중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배우로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조현철은 단편 '측추측만'과 '뎀프시롤:참회록'을 이미 연출한 영화 감독이기도 하다. 조현철이 7년 가까운 시간동안 연출 작업을 진행한 영화 '너와 나'로 돌아왔다. '너와 나'는 수학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날 친구에게 향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꼭 전하고 싶어하는 여고생의 이야기를 그렸다.
조현철 감독은 '너와 나'가 세월호와 여고생의 사랑을 주요 소재로 다룬 이유에 대해 "죽음을 앞둔 사랑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는데 꼭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를 그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퀴어라는 소재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발상이었고 그냥 이 소재가 엄청나게 평범한 것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일상 어디에나 있고 존재하는 어떤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세월호 사건을 주요 테마로 다루면서 여고생 두 명을 주인공으로 한 이유는.
▶ 여자 고등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멜로 영화를 볼 때 왜 남녀 주인공이냐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고생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 여고생들이 등장하는 스토리를 떠올리고 세월호라는 은유가 나중에 들어간 것인가.
▶ 그건 아니다. 제가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일이 있었고 제 스스로 잊고 있던 어떤 사건에 대해 다시 돌아볼 계기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죽음을 앞둔 어떤 두 여학생의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영화 전반이 몽환적 느낌이 있다. 이런 톤앤매너는 어떻게 고안하게 됐나.
▶ 이 영화가 누군가의 꿈처럼 보이기를 원했던 것 같다. 제가 2017년 어떤 생존자 학생의 발언을 들었는데 그 친구가 '저의 친구가 꿈에서라도 찾아와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영화속 이야기가 누군가의 꿈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실같이 생생하면서도 꿈 같은 이미지로 표현이 되기를 바랐다.
- 여고생들의 대화 내용이라던가 다양한 것들이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여고생들에 대한 취재 과정에도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 제가 30대 남성 창작자이기에 여고생들을 표현하는 게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취재를 많이 했다. 그들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기 위해 제가 영어 입시학원 같은 곳에 가서 특강을 하거나 취재도 했다. 학생들의 브이로그도 많이 봤다.
- '너와 나' 제작 과정이 7년 걸렸다고 들었다. 7년 내내 바뀌지 않은 내용이나 중점적으로 생각한 부분이 있다면.
▶ 영화의 처음과 끝을 악몽에서 막 깨어나는 학생으로 시작해서 '사랑해'라고 이야기하면서 끝나는 내용으로 한 것은 집필 과정 중에 안바뀐 부분이다. 이런 것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했었다. 모티브를 세월호 참사에서 얻었기에 이 영화를 스펙터클하게 표현하는 것을 지양하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랐다. 집필하는 과정 중에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많은 것들이 잊혀져 가고 있더라. 영화 제작 초반 제가 '수학 여행 전날 어떤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말하면 대부분 제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떠올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떤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주요한 작업 과정 중 하나였다.
- 주제적 측면에서 여학생들간의 우정을 다룬 것이냐, 사랑을 다룬 것이냐로 관객들의 차가 있을 것 같다. 퀴어 장르를 의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표현하려 했나.
▶ 퀴어를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 '뭔가 이 부분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건 없었다. 일단 두 사람의 접촉이 있어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기에 한 번쯤은 극 중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 성정이 좀 스킨십이 진하다거나 깊게 닿는다거나 하는 것보다 살짝 서로 조심스럽게 다루면서도 금방 깨질 것처럼 소중히 다루기를 바랐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 퀴어와 세월호를 연결하게 된 포인트는 무엇인가. 언뜻 쉽지 않은 조합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 퀴어라는 소재를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을 어떤 소재로 의식한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조금 덜컹거리는 면이 있다.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발상이었고 그냥 이 소재가 엄청나게 평범한 것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일상 어디에나 있고 존재하는 어떤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죽음을 앞둔 사랑이야기였고 꼭 그 사랑이 남녀간의 이야기였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사랑의 감정 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감정도 크게 와닿는 편이다. 이 두 가지가 영화 안에 함께 공존하는 이유는.
▶ 어떤 이야기를 다룰 때 뭔가가 단편적으로 보인다거나 납작해 보이는 것을 경계하려 했다. 입체적이었던 것들이 단순화되는 것을 피하려 했다. 슬픈 이야기를 전할 때도 표면에서는 생동감 넘치는 유머 혹은 활기가 있기를 바랐다. 그런 지점에서 죽음 앞에서 느껴질 수 있는 사랑의 감정 같은 것들을 다채롭게 표현하고 싶었다. 사실 인생을 생각해볼 때 언젠가 우리는 모두 다 죽고 사라지지 않나. 그런데 그 와중에 사랑의 기쁨도 있고 누군가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 본질적 감정과 흐름을 한 장면에 담아내고 싶었다.
- 다양한 장소에 거울에 계속 등장하고 등장 인물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유가 뭔가.
▶ 인간이 세계를 지각할 때 상이 맺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뇌가 만드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어떤 인물의 모습이 거울에 맺히면서 즉각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세미가 거울에 맺혔다가 사라지는데 영화 외부적으로 볼 때는 정자에 등장하는 그 거울은 실제 단원고 옆 어떤 공원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거울 안에 언젠가 한 번쯤 단원고 학생들의 모습이 맺혔다가 사라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들을 했다.
- 지난해 제 58회 백상예술대상에서 'D.P'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당시 죽음에 대한 조금 다른 정의를 했었다. 최근 죽음에 대해 크게 느껴본 적이 있다고 했는데 어떤 내용인가.
▶ 워낙 개인적인 일이어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사고를 겪고 나서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다만 이번 영화에서 가장 조심스러웠던 부분은 단순히 이 영화를 유가족분들이 보시게 됐을 때의 윤리적 책임감 같은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을 했었다. 정말 조심스럽게 저도 제작진도 계속 어떤 경계를 하면서 작업을 했었다. 이 방식이 맞나, 이런 식의 표현이 맞는지 계속 고민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 세미 역 박혜수에게 학폭 의혹이 있었음에도 과감히 캐스팅을 했고 그 캐스팅을 유지했다. 박혜수 측은 학폭과 무관하다는 입장이고 손해배상청구 소송까지 낼 정도로 강경 대응 중이지만 영화에는 손해를 끼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 텐데.
▶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얼마든지 설명을 드릴 수 있겠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누가 이 사람을 알고 있는가' 궁금하다. '누가 제대로 알고 있는가' 말이다. (영화 '삼진교육 영어토익반' 등을 통해)이미 오랜 시간을 보낸 친구였고 제가 보고 경험했던 박혜수가 있는데 '과연 나는 무엇을 믿어야 될까' 싶더라. 그가 했던 말과 행동들, 또한 미디어나 인터넷에서는 얼마든지 소문이 과장되고 왜곡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 사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냥 박혜수가 보여준 어떤 모습들을 신뢰를 하려고 했다.
- 세미 역 박혜수와 하은 역 김시은 모두 너무 사실적으로 연기를 잘 해냈다. 캐스팅 당시 혹은 촬영을 함께 하며 발견한 두 배우의 장점은.
▶ 일단 김시은은 오디션을 많이 거쳐서 발견했다. 하은이 가진 역할이 주는 어떤 유머러스함을 살려낼 수 있는 배우를 찾으려 애쓰다가 김시은을 만나게 됐다. 이 사람이 경험은 많지 않지만 현장에서 보여주는 어떤 동물적인 감각들, 애드립 혹은 호흡, 그리고 시선들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고 재미가 있었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혜수 같은 경우는 일단 현장에서의 애티튜드가 대단한 배우이고 직업적으로 대할 때나 인간적인 면에서 사람을 대할 때나 정말 성실하고 헌신적이고 또 리더십도 있고 강단이 있는 사람이다. 특히 이 사람은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 캐릭터의 어떤 감정이 느껴지지 않으면 표현이 안 되는 배우다. 영화 곳곳에서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줬다. 그런 면면이 정말 대단한 배우다.
- 실제 여자 고등학생들을 캐스팅하는 방식은 생각해 보지 않았나.
▶ 실제 고등학생들을 캐스팅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리얼리티를 그냥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에 조금 흥미를 잃기도 했고 현실과 최대한 생생하게 재조합하면서도 더 많은 관객에게 영화가 닿을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 같다.
- 절친 배우 박정민은 저서 '쓸만한 인간'에서 "조현철은 천재다. 조현철은 아직도 넘을 수 없는 산 같다"고 극찬한바 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배우이자 감독 조현철은 어떤 예술가인가.
▶ 펼쳐보고 싶은 연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두려운 부분이 많다. 제가 보여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좀 있는 것 같다. 현장에서 항상 긴장을 하는 편이다. (연출자로서)저한테 찾아온 이야기들을 해야 할 때, 특히 '너와 나'라는 작품으로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섰을 때는 어떤 두려움이나 불안 같은 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 연기 활동이 연출에 도움을 미치는 부분이 있다고 보나.
▶ 의식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배우마다 특성이 다르고 어떤 환경의 현장을 편하게 느끼는지 제각각 다르기에 저만의 경험으로 '이런 현장이 좋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최대한 배우들의 특성과 현장의 분위기에 맞춰 연출을 하려고 했다. 우리 현장은 큰 문제 없이 잘 진행됐지만 코로나 시기였기에 길거리 장면 등을 찍을 때 스태프들이 많이 고생을 했다. 코로나가 한창이어서 학교나 병원을 빌리는 것도 애를 먹었다.
- 연기와 연출 활동을 병행 할 때 어떤 구분을 두나. 특별히 계획하고 있는 것은.
▶ 제가 계획이 별로 없고 그냥 막상 제 앞에 닥친 일들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연출을 하고 나서)'이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지' 하는 게 아니다. 이번 영화를 찍을 때도 뭔가를 계획한다거나 했을 때, 막상 상황이 됐을 때 제 예상대로 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마음을 열어두고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고 사고한다.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으니 당황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편이다.
- 세미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곡으로 빅마마의 '체념'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 시나리오를 쓰면서 (세월호 관련)학생들의 구체적인 에피소드 같은 것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체념' 같은 경우는 정예진 학생의 18번 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영화에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체념'이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이 노래가 가진 감정은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감정 아닌가. 이 노래를 죽음을 앞둔 어떤 사람이 불렀을 때 느껴지는 아이러니함이랄까 슬픔 같은 감정들이 저에게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배우가 이 장면을 두 컷 정도에 나눠 불렀던 것 같다. 배우들이 반복적 연기를 많이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렇게 했다. 촬영장에 있던 많은 스태프들이 다 울었다. 촬영 감독님도 촬영중 울게 돼서 카메라가 살짝 흔들렸다. 저 또한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있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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