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개월째···‘생계 직결’ 임금체불 대책 내놔도 꿈쩍 않는 국회
작년 12·올 5월 나온 대책이지만, 국회 깜깜
체불 피해 매년 1조 넘어···취약 계층에 집중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국회에 임금체불 대책법안들의 입법을 촉구했다. 이 대책들은 작년 말과 올해 6월 고용노동부 또는 정부여당이 국민 생계와 직결된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안들이다. 임금체불은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부터 때리고 있음에도 국회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것은 근로자와 그 가족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두 개의 대표적인 임금체불 대책법안에 대한 국회 논의를 촉구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올 5월 당정이 종합 대책을 발표하고 6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이다. 상습체불 사업주 범위를 정하고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 등 불이익을 더 강화하는 게 골자다. 현행법은 임금체불 문제 해결의 첫 단추인 상습체불 사업주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조차 없는 상황이다. 법안은 상습체불 사업주에 대해 최근 1년 내 근로자 1인당 3개월분 이상 임금을 체불하거나 5회 이상 체불 총액이 3000만 원 이상이면 상습체불 사업주로 규정했다. 이 사업주는 정부 지원금 혜택이 제한되고 공공 입찰 시 감점 등 불이익을 받으며 신용 제재도 받을 수 있다.
자칫 기업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법안으로 보이지만, 현장 목소리는 다르다. 5월 이 대책 발표 당시 경기도에서 석재 기업을 운영하는 중소기업 A 대표는 “아무리 중소기업이 힘들다고 해도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악질적으로 직원 월급을 안 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 B 대표도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조달 시장에 악성적인 임금 체불 업체의 참여를 막는 것은 당연하다”며 “상습체불 업체가 공공조달 사업을 한다는 게 알려지면 다른 중소기업도 피해를 입는다”고 평가했다. 올 3월 말 이정식 고용부 장관과 경제5단체 부회장들의 면담에서도 임금 체불을 근절하려는 정부 대책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윤 대통령이 또 언급한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은 작년 12월 고용부가 발의했다. 체불임금에 대해 사업주가 대지급금보다 융자로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게 골자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는 체불 임금을 종전 보다 빨리 받을 수 있다. 대지급금 제도는 정부가 임금 체불 피해를 겪은 근로자를 위해 대신 변제하고 변제금을 돌려받는 방식이다.
당정이 5월 임금 대책을 내놓을 때만 하더라도 국회가 입법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이미 여야는 임금 체불 방지를 위한 대책이 담긴 수많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상당수 개정안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 당정안보다 제재 수위가 높은 대책까지 담겼다. 오히려 당정은 임금 체불에 대한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는 여론에 부담을 느낄 상황이었다. 그동안 처벌 사례를 보면 체불액 대비 벌금액이 30%를 넘지 않는 경우가 전체 사건의 78%에 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임금 체불을 구조적으로 해결할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정부는 현장 단속과 임금 체불금 청산에 급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한정된 인력으로 전체 사업장 감독을 하기 어려워 사후약방문식 대책은 한계에 직면했다.
우려는 임금 체불 피해는 점점 늘고 피해 근로자는 취약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올해 1~7월 임금 체불액은 975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7% 증가했다. 지난달 체불액 예상치까지 합치면 같은 기간 30% 가량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추이를 보면 2019년 1조7217억 원에서 2020년 1조5830억 원, 2021년 1조3505억 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작년에는 1조3472억 원으로 감소세가 멈췄다.
직장갑질 119 조사에 따르면 최근 임금체불 피해자 중 약 70%는 근로자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났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당장 생계를 걱정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게다가 올해는 작년부터 이어진 고물가 탓에 임금이 올라도 임금이 삭감된 것 같은 역전 현상도 두드러졌다. 직장갑질 119 소속 박성우 노무사는 “우리나라 임금 체불액은 10여년 간 1조원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며 “현장의 미신고·미인정 금액을 고려하면 규모는 공식 통계 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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