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음’ 계속되는 신탁 방식 재건축…정부 “초기사업비 조달 직접하라”
정부가 정비사업 시행을 맡은 부동산 신탁사들이 초기사업비 등을 직접 조달하게 하는 등 부동산 신탁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는 표준계약서와 시행규칙을 제정하기로 했다. 최근 신탁방식 재건축 단지들에서 시공사 해지·사업 중단 등 잡음이 계속되자,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2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토부는 신탁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표준계약서·시행규정을 29일 지자체와 이해관계자에 배포할 예정이다.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7일까지 시공사와 신탁사, 토지소유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다.
이번 표준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초기사업비나 공사비에 필요한 자금을 신탁사가 직접 조달하도록 한 것이다. 시공사가 납입하는 입찰 보증금을 대여금으로 전환해 쓰거나 주민이 신탁한 부동산을 담보로 초기 사업비로 조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신탁사들의 정비사업 진출을 허용한 것은 토지소유주들로 구성된 조합에 비해 자금조달 여력이 있다는 장점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조합과 동일하게 시공사 입찰보증금을 대여해 사용하다보니 신탁사가 ‘손안대고 코풀기’하는 것 아니냐는 시공사와 조합의 불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단순 요율로 제시되던 신탁보수 산정방식도 구체화된다. 상한액을 적용하거나 정액으로 확정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표준안에 포함시켜 주민들이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보수를 채택할 수 있게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수수료는 신탁 방식 재건축이 허용된 2016년 최대 4%에 달했다가, 수주 경쟁이 치열해진 최근에는 1~2%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탁방식 재건축은 시행사가 조합을 대신해 시행을 맡고 분양대금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 방식이다.현재 신탁방식 재건축을 채택한 사업장은 총 55곳이다. 토지소유자들이 조합을 꾸려 시행할 때와 비교해 자금 조달이 원활하고, 정비구역 지정·정비계획·사업계획을 동시에 수립할 수 있어 소요 기간을 2~3년가량 줄일 수 있다고 알려져있다.
그럼에도 신탁방식 재건축에 대한 회의론이 커진 것은 신탁사의 업무 범위와 수수료 산정방식 등 계약 조건이 표준화되지 않은데다, 공사비 급증으로 조합원의 비용부담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높은 신탁 수수료에 더해 조합 집행부 역할을 하는 정비사업위원회, 정비업체 용역비 등으로 비용을 2중, 3중으로 쓰게 된다는 불만이 커졌다.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2018년 한국자산신탁을 시행사로 선정해 신탁방식을 결정했다. 지난 1월 GS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지만, 지난 25일 소유주 전체회의를 열고 시공사 GS건설 선정을 취소했다. GS건설이 제시한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적용할 경우, 조합원 분담금이 5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조합원들이 반발한 것이다. GS건설은 기투입된 사업비에 대해 소송을 검토 중이다.
‘여의도 1호 재건축 단지’인 한양아파트도 신탁방식 재건축을 추진했으나 지난달 시공사 선정 절차가 전면 중단됐다. 사업 시행자인 KB부동산신탁이 정비계획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공자를 선정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서울시의 시정 권고가 나왔기 때문이다.
신탁방식 재건축에 대해 건설업계는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A 건설사 관계자는 “신탁사가 시행을 맡든 대행을 맡든 결국 토지소유자들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시공사로썬 조합 방식 재건축보다 신탁사라는 의사소통 창구만 하나 더 늘어난 느낌”이라고 했다. 반면 B 건설사 관계자는 “정비사업 전문성이 있는 신탁사가 시행을 맡는 사업장은 조합이 추진하는 사업장에 비해 의사소통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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