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28 불참하는 바이든의 복잡한 속내…어지러운 국제정세·대선 앞둔 국내 상황 얽혀
표면적으론 전쟁 중재에 ‘과중한 업무’ 이유
대선 앞두고 지지자들 ‘국내 문제 집중’ 요구해
기후변화 대응을 핵심 의제 중 하나로 꼽아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 불참하기로 한 배경에는 어지러운 국제 정세뿐 아니라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 내 정치적 요인도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후 문제에 비협조적인 공화당과 석유와 가스 가격 안정에 집중하라는 소비자의 요구가 바이든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기후대응에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국내에서는 석유와 가스 가격 안정에 집중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앞서 미국 언론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COP28에 불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정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불참 사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과 인질 석방 협상 등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업무 과중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언급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역시 불참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대표로는 존 케리 기후 특사가 참석할 예정이다.
기후 변화를 주요 정책 현안으로 제시해 온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퇴한 기후협약 가입을 복원하고,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후 관련 법안인 ‘인플레이션 감소법’에 서명하며 ‘기후 대통령’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인플레이션 감소법에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태양광 패널과 전기 자동차 기술 등에 최소 3700억 달러(약 480조원)의 정부 보조금을 투자하는 내용이 담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두 차례 열린 유엔 기후정상회의에도 모두 참석하며 지구 온난화에 맞서 싸우는 미국의 리더십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가격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알래스카 유전개발 사업을 재개하고 유럽으로의 액화 가스 수출을 촉진해, 환경단체와 지지자들로부터 미국을 세계 최대의 가스 수출국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AF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의 COP28 불참은 고전하고 있는 지지율과도 관련이 있다고 짚었다. 바이든의 ‘급진적 녹색 아젠다’를 공격하고 있는 공화당은 대통령이 미국 에너지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하며 더 많은 석유와 가스 시추를 위해 연방 토지를 개방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내 이슈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내 중도주의자들은 대선 캠패인을 위해 올해 미국이 기록적인 양의 원유를 생산했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기후 운동가들, 특히 바이든 선출에 도움을 준 젊은 유권자들은 석유와 가스 시추 작업을 완전히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환경단체인 생물다양성센터는 바이든 대통령이 승인한 새로운 석유 및 가스 프로젝트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그가 서명한 모든 기후 정책으로 인한 배출 감소량을 초과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고 캠퍼스의 심층 탈탄소화 이니셔티브 공동 책임자인 데이비드 빅터는 “바이든은 진보 진영을 하나로 묶는 것과 자신의 재선에 대해 정말로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 일부 고위 보좌관들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COP28 참석을 설득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그가 두바이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과 함께 지구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 역시 회의에 불참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COP28에 힘이 실리기 어려울 것이란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환경 싱크탱크인 세계자원연구소의 아니 다스굽타 회장은 “두 사람(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두바이에 나타난다면 모든 사람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지금은 세계적으로 매우 어려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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