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전세사기 피해자입니다, 국민의힘 탈당합니다”

문광호 기자 2023. 11. 28. 15: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실효성 없는 특별법 개정 촉구
“김기현 대표 한 번만 만나달라”
국민의힘 당사 찾았지만 무응답
민주당과 달리 법 개정에 소극적
대구 전세사기 피해자 정태운씨가 28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탈당 신고서를 들어 보이며 김기현 대표와의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문광호 기자

“어릴 때부터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살면서 국민의힘 당원으로 살아왔습니다. 탈당 신고서가 작성되기 전에 저희 한 번만 만나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대구 전세사기 피해자 정태운씨는 28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이같이 외쳤다. 정씨와 함께 모인 전세사기 피해자 대표 8명은 눈물을 삼키며 김기현 대표와 면담을 요청했지만 어떠한 호응도 없었다. 당사 입구에 늘어선 경찰들은 피해자들의 진입을 저지했다. 30분 간 실랑이 끝에 국민의힘에서 당직자가 나와 이들의 면담요청서를 받아 갔다. 피해자들은 지난 5월과 10월에도 면담을 요청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현행 전세사기 특별법이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특별법 개정을 촉구했다. 당초 국회가 지난 5월 특별법을 통과시킬 당시 부대의견으로 “국토교통부 장관이 법 시행 이후 매 6개월마다 전세사기의 유형·피해 규모 등을 면밀히 검토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지난 5월22일 국토교통위 소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부대의견을 삽입한 취지는 법의 미비점을 보완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도 대안이 필요하다는 민주당 주장에 “그렇다”고 동의했다.

내달 1일은 국회가 약속한 특별법 시행일로부터 6개월이 되는 시점이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지난 1일 “여야가 전세사기 특별법에 대해서 합의하면서 6개월마다 입법을 보완하자고 분명 약속했다”며 일찌감치 법 개정을 추진했다. 지난 20일 ‘전세사기 근절 대책 및 보완입법 추진 특별위원회’를 꾸리기도 했다.

반면 여권의 태도는 소극적이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지난 22일까지도 민주당의 개정 추진에 “파악해보겠다”며 “서로 이견이 있었던 내용을 포함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취지로 답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이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법 운영 결과와 피해에 따른 지원 상황을 보고 부족한 점이 나오면 그런 부분을 여야 협의를 통해 개정을 하자는 게 전제”라며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1일 김정재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은 요구사항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이 개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사안은 크게 세 가지다. 피해자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생긴 채권을 일단 정부가 매입하고 이후에 집주인 등에게 회수하도록 하는 ‘선 구제 후 회수’와 경·공매 시 최우선 변제금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위한 주거비 지원, 그리고 피해자로 인정 시 대출조건 완화 등이다. 김주호 전세사기피해대책위 실무지원 팀장은 “지금 특별법에는 그런 내용이 다 없어서 실질적인 도움은 거의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행 전세사기 특별법은 피해자의 주택이 경매 등 매각 절차에 들어간 경우 경·공매 유예·정지를 신청할 수 있게 했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공매에 들어가게 된 원인인 건물주의 보증금 미반환 상태는 유예 이후에도 지속되기 때문이다. 무적(활동명) 전세사기 대책위 공동위원장은 “경·공매 유예는 말 그대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뒤로 미룬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별법이 보장하는 경·공매 시 우선매수권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은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현행 특별법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매입도 요청할 수 있게 했지만 실효성은 없다. 지난 27일 국토부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기대한 특별법상 LH의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과 매입임대 전환도 아직 한 건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내달 9일 종료되는 올해 정기국회를 특별법 개정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보고 있다. 대책위는 호소문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는 열흘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오는 12월9일 정기국회가 끝나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이 사실상 무산되기 때문”이라며 “이 와중에도 내년 총선을 노리고 있다는 원희룡 장관은 유튜브에 나와서 전세사기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자기 홍보에 혈안이 돼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분노와 피눈물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함수훈 수원 전세사기 대책위 부위원장은 “전세사기 피해자 중 사망자가 또 나와야 들어줄 건가”라며 “사회초년생이 일을 시작해 1억원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드는지 아시나. 피해자들의 말을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한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계속 노력은 하고 있다”며 “국토위에서 계속 얘기하고 있고, 피해자들과도 몇 번 만났다. 세미나도 하고 국정감사에서도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