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들을 집으로”···러시아 여성들 시위 확산
병사 가족들 불만 증폭
시위 확산 경계하는 정부
강경 진압보다 회유책
“그가 영웅적인 일을 하고 조국을 위해 진심으로 피를 흘렸다면 이제 가족에게 돌아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길을 내줄 때가 됐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한 러시아 여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상에서 러시아 병사들을 1년 넘게 전장에서 돌려보내지 않고 있는 정부를 비판하며 내뱉은 말이다. 이 여성은 “우리가 동원한 군대는 세계 최고의 군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군대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남편과 아들을 전장에 보낸 러시아 여성들이 최근 정부에 병사들의 귀환을 촉구하는 항의 시위를 거리와 온라인에서 벌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19일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동원된 이들에게만 조국이 있는가”라고 외쳤다. 앞서 지난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집회 참가자들은 “무기한 동원에 반대한다”고 적힌 포스터를 들었다. 텔레그램에는 지난 9월 “집으로”라는 이름의 채널이 개설됐다. “군인들과 가족들이여, 단결해서 권리를 쟁취하자”는 구호에 공감하는 러시아 여성 1만8350명이 채널에 가입해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동원 해제령이 나오기 전에는 지난해 전선에 투입한 군인들을 돌려보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해 12월 병력 교체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으나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러시아 의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9월 병사들은 이번 전쟁이 끝나야 귀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부는 현재 전선에 있는 군인들을 전역시키고 병력 충원을 위해 추가 동원령을 내릴 경우 정부에 대한 민심이 악화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 정치 평론가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새 동원령을 내리는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특히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는 여성들의 이 같은 움직임이 전국적 이슈로 번지지 않도록 구금이나 체포보다는 회유책을 사용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열린 한 시위의 경우 당국이 집회를 허용하는 대신 시위 장소를 거리가 아닌 관공서 강당으로 바꾸고 언론 취재를 금지하는 쪽으로 타협하기도 했다.
모스크바 시위를 조직한 마리아 안드리바는 당국이 군인 가족들을 돈이나 혜택을 통해 회유하려 한다면서 “돈을 받는 대가로 우리에게 침묵하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남편과 아들”이라고 꼬집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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