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위 '꼬마기업' 몰락에 中 '배터리 공룡'들 긴장하는 이유는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3. 11. 2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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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빅3 후보 JEVE 주력 톈진공장 폐쇄…CATL·BYD 편중 구도 리스크 수면 위로
왕리푸 JEVE CEO가 지난 2022년 실적설명회에서 2025년 생산능력 확충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바이두

한때 중국시장 점유율 5%대를 구가하며 포스트 CATL·BYD 후보로 손꼽혔던 중국 배터리(이차전지) 기업 JEVE가 사실상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이젠 0%대 점유율로 10위권 밖이지만 JEVE의 몰락이 중국 배터리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상당하다. 고착화한 양강구도 속에서 후발주자들이 사실상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여서다.

중국 현지언론은 27일 중국 소재 기업으로 한때 글로벌 배터리사 반열에 올랐던 JEVE의 톈진(天津)공장이 오는 12월 1일부터 생산을 중단한다고 보도했다. JEVE의 나머지 네 개 공장도 순차적으로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회사가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가운데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JEVE 테스트도 실패 'CATL·BYD와 꼬꼬마들'
JEVE는 2009년 설립됐다. 톈진 등 5개 공장에 연산 총 10GWh 캐파(생산능력)다. 이번에 문을 닫는 톈진공장 캐파는 1.5GWh 정도다. CATL·BYD 양강 체제가 굳어진 2017년 중국서 점유율을 5.3%까지 끌어올리며 나름 돌풍을 일으켰다. 그런 JEVE를 눈여겨 본 중국 정부가 2018년 공산당 재벌 푸싱(복성·復星)그룹에 JEVE를 맡겼고, 푸싱이 지분 36.8%를 보유한 사실상 국영기업이 됐다.

중국에서 정부의 간택을 받는다는 건 성장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2018년 인수 당시 푸싱은 "5년 내 JEVE를 CATL·BYD의 대항마이자 중국 내 3대 배터리사로 키우겠다"며 야심을 불태웠다. 점유율이 0%대까지 떨어진 작년까지도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왕리푸(王立普) 사장은 지난해 "배터리 개발은 타당성검증-산업화-대량생산의 세 단계로 이뤄지는데 우린 세 번째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했었다.

중국 내 한 산업전시회에서 참석자들이 JEVE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사진=바이두

JEVE는 그러면서 2025년까지 생산능력을 100GWh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1등인 CATL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에 납품해 장착시킨 배터리 총량은 191.6GWh다. 2~3등 BYD와 LG에너지솔루션이 각각 70.4GWh 정도다. JEVE가 계획대로 연 100GWh의 생산능력 구축을 실현했다면 적어도 덩치 면에선 이들의 대항마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푸싱이 선언한 '5년째'인 올해, 돌아온 소식은 주력 공장의 가동 중단이다. 올 1~10월 텃밭인 중국시장 점유율 경쟁에선 한국기업 LG에너지솔루션(1.9%, 8위)에도 밀린 13위(0.3%)다. 중국 정부가 시도한 JEVE 빅3 테스트의 종언이었다.

소수과점 필수지만…韓 3파전이 부러운 中
배터리는 단순조립이 아니라 노하우가 필요한 화학적 공정이다. 공격적 확장으로 노하우를 축적하고 표준을 선점하는 소수가 시장을 과점한다. 세계 최대 배터리 시장인 중국도 마찬가지다. 1~10월 기준 CATL이 42.8%, BYD가 28.6%를 점유한 양강구도다. 3위인 CALB는 9.0%고 4위부턴 5%에도 미치지 못한다. 7위부턴 아예 1~0%대로 사실상 있으나 마나다.

한 중국 배터리기업 관계자는 "중국 산업당국은 유력 배터리기업 숫자가 글로벌 전기차 플레이어의 절반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며 "최소 세 개의 빅 플레이어를 둬 기술혁신을 자극하고 시장을 상호보완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3대 빅 플레이어 구도는 LG엔솔·삼성SDI·SK온으로 구성된 한국의 구도이기도 하다.

이전의 중국이라면 언제든 정부가 개입해 시장을 3강으로 재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미묘하게 변했다. 중국산 배터리·전기차 등에 대한 서방의 글로벌 규제가 강화된다. 인위적 시장 재편을 다시 시도한다면 IRA(인플레이션방지법)로 칼을 갈고 있는 미국에 추가 제재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 JEVE가 그대로 좌초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거다.

시장 분위기도 중국에 우호적이지 않다. 무리수는 통할 가능성이 클 때만 둘 수 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배터리 시장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특히 중국 기업들이 집중하고 있는 중저가 시장에서 수요가 눈에 띄게 둔화한다. 한정된 경제회복 재원을 첨단 산업에 집중투자하기로 결심한 중국 정부가 배터리 구조조정에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을 얼마나 배정했을지도 알 수 없다.

보조금 둘러쳐 기껏 키운 게 CATL 하나?
중국 CATL의 한 배터리 생산기지 내부./사진=바이두
중국 CATL과 BYD가 물량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구조도 수명이 다했다. 글로벌 시장에선 LG엔솔이 CATL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선 이미 한국 기업들이 중국 배터리 기업들을 멀찍이 따돌렸다. 상대적으로 균형잡힌 기술력을 인정받는 CATL도 설비 가동률이 60%대에 그친다. 저가품 중심인 데다 자사 전기차용 수요가 대부분인 BYD에 대해선 아예 기술적 회의론이 나온다.

배터리업계는 중국 배터리의 현 상황이 전기차 보조금 만리장성을 이용해 성장시킬 때부터 예정된 리스크라고 본다. 한 한국 배터리기업 관계자는 "CATL마저 기술력 면에서 흔들린다면 중국 배터리기업은 내수시장 외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상황이 된다"며 "기형적 보조금 쇄국정책을 펼치면서 만들어낸 게 겨우 CATL 하나냐는 자조적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격화하자 CATL과 BYD는 정부의 수시 개입에도 불구하고 상호 비방전을 벌이고 있다. BYD가 CATL의 배터리 발화 문제를 연이어 공론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없이 많은 전기차가 운행 중인 중국이지만 발화 사고는 언론에 단 한 건도 보도되지 않고 있다. 리콜 문제 등이 불거진다면 치명적이다.

중국 배터리사들과 함께 시장을 키워나가야 할 글로벌 배터리 업계의 고심도 깊어진다. 다른 한국 배터리기업 관계자는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량의 15~20%에 머물고 있는 데다 ESS(대용량에너지저장장치) 수요까지 생각하면 배터리 시장은 아직 성장할 여력이 무궁무진하다"며 "중국 기업들도 내실있게 성장하면서 시장을 함께 키워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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