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가상현실과 궁극의 공감기계
미국의 영화제작자 크리스 밀크(Chris Milk)는 가상현실을 '궁극적인 공감기계(Ultimate Empathy Machine)'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찍이 가상현실과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잠재력을 탐구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 VR 등 최신 기술을 이용해 몰입형 콘텐츠 제작에 주력해왔다. 2015년 TED 컨퍼런스에서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흔히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가상현실은 컴퓨터와 디스플레이와 같은 IT 기술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기계가 인간에게 보여주는 영상이란 말이다. 어떻게 기계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나 직접적인 대인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감을 증진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TED 강연에서 찾을 수 있다.
크리스 밀크는 요르단에 있는 시리아 난민촌에 대한 8분가량의 짧은 영상을 제작했다. 단, 일반적인 비디오카메라가 아닌 360도 전 방향을 촬영할 수 있는 특수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했다. 사용자에게 이 영상을 VR 헤드셋을 통해 보게 했다. 이때 사람들은, 영화관에서와는 전혀 다른 경험, 즉, 프레임 너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아닌 그 세상에 직접 들어가서 그 세상에 속한 등장인물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영상은 난민촌에 사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옆에서 소녀가 말을 걸고, 미소를 띠고, 때론 눈물짓는다. 영상 속 삶이 마치 현실 같고 내가 난민촌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그 순간, 소녀가 담담하게 전하는 난민촌에서의 고단한 삶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크리스 밀크가 얘기하는 '궁극의 공감'이 아닐까 한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가상현실이 사람들, 특히 일부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아마 이 영상을 다보스 세계 경제 포럼에서 상영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영상의 제목은 '시드라에게 드리운 구름(Clouds over Sidra)'이니,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시길 바란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크리스 밀크는 예술가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타고난 예술적 기질을 발휘해 가상현실을 매개로 한 스토리텔링을 하고, 목적한 바를 이루어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가상현실에 사람들이 깊이 공감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감이란 긍정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의미 있는 관계 형성, 소속감 형성 등에 영향을 미치므로 가상환경에서의 사용자 경험을 향상하기 위해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
심리학 관점에서 공감은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과 감정적 공감(Emotional Empathy)으로 분류된다. 인지적 공감은 관점 수용(Perspective-Taking)이라고도 하며, 다른 사람의 생각, 감정,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반면 감정적 공감은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의 감정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타인의 감정과 유사한 감정을 스스로가 느끼는 것이다. 흔히 감정적 공감 능력은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며, 인지적 공감은 살아가면서 후천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알려져 있다.
가상현실은 실제 상황을 재현하는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높은 수준의 몰입감을 제공함으로써 공감을 이끌어 내는 도구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관련한 다양한 연구 사례들이 존재한다. 우리 연구팀은 111개 관련 논문을 분석해 가상현실의 몰입경험이 인지적 공감과 감정적 공감을 동시에 향상시킨다는 것을 찾아냈다.
다만, 감정적 공감은 VR 경험 후 일시적으로 증가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는 반면, 인지적 공감은 계속해서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현실은 인지적 공감을 개발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인 셈이다.
감정적인 공감을 위한 가상현실에 필요한 요소들은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 외에도 정서적으로 교감이 가능한 캐릭터, 대화형 요소, 상호작용, 문화적 포용성, 개인의 특성에 따른 맞춤화 등이 있다. 연구팀은 향후 더 나은 가상현실 경험 제공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호작용과 생체신호를 이용한 감정 분석 및 비언어적인 표현 기술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길연희 ETRI 지능형실감콘텐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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