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왜 실패했고 무엇으로 도전하는가?

김은지 기자 2023. 11. 28.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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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라는 책을 출간했다. 부제는 ‘왜 실패했고, 무엇으로 도전하는가?’이다. 우원식 의원은 이 책이 당내 논쟁을 불러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원식 의원은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10주년 기념 녹서 발간 위원장을 맡았다. ⓒ시사IN 신선영

‘민주당이 안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정국의 중심은 줄곧 여권이 차지하고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화제의 뉴스는 정부·여당에서 벌어진다. 야당은 안 보이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쉽게 잦아들 것 같지 않아서다. ‘부자 몸조심’ 하면 총선 승리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민주당 4선 중진 우원식 의원의 생각은 다르다. 현재 민주당은 재집권에 두 번째 실패한 정당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고 정권을 잃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끝에 다시 집권했다. 문재인 정부 5년 만에 재집권을 못했다. 우 의원은 첫 번째 실패보다, 두 번째 실패가 더 뼈아프다고 본다. 앞으로 재집권이 훨씬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국민의 신뢰를 또다시 잃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 이유다. 부제가 ‘왜 실패했고, 무엇으로 도전하는가’이다. 발간위원장을 맡은 우원식 의원은 “앞으로 집권하려면 우리가 어떤 세력인지 정말 뾰족하고 정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무엇으로 집권할 건지, 지향하는 노선은 뭔지, 어떤 미래를 건설하려는지에 대해 잘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 집권 기회가 없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책은 ‘을지로위원회 10주년 기념 녹서(Green paper)’를 표방한다. 녹서는 정책의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만든 자료다. 정책의 결과를 정리한 백서(White paper)와 대비된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2013년 민주당이 꾸린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10년 동안 활발히 활동했다. 가맹점주를 위한 카드 수수료 인하,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출범 등 이름 그대로 구체적인 ‘을’들을 위한 의정활동을 펼쳤다. 초대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우원식 의원은 을지로위원회가 민주당의 체질을 바꿨다고 자부한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슬로건을 민주당의 한 정체성으로 체화했다는 의미다.

녹서 제작의 총괄 역할을 맡은 이원정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을지원국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집권을 해야 한다는 말은 많이 한다. 표를 달라고 한다. 그런데 집권해서 뭘 하려고 하는지를 말하는 정치인은 찾기 힘들다. 국민 입장에선 뭘 보고 표를 달라는 건가 싶을 수 있다. 녹서는 ‘저희가 이런 걸 좀 해보려고 합니다’를 보여준다. 물론 녹서에 나온 내용이 완벽한 이론은 아니다.” 논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우원식 의원도 같은 의견이다. 지난 8월에 펴낸 책이지만, 국정감사가 끝나고 총선 모드로 접어든 지금부터 민주당의 방향에 대해 노선 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토론이 불붙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전현직 을지로위원장 대담, 사회경제 개혁의 여섯 가지 길(민생·공정경제·주거보장·노동존중·산업전환·돌봄국가), 을지로위원회의 제언이다.

11월14일 국회에서 2시간가량 우원식 의원을 만났다. 민주당이 재집권에 실패한 이유, 현재 민주당에 대한 평가, 을지로위원회를 향한 비판에 대한 생각, 모두가 자신이 을이라 생각하는 각자도생 시절의 을지로위원회의 역할 등에 대해 물었다.

그는 구조의 문제를 강조했다. “갑과 을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누구나 을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갑과 을의 협상력을 어느 정도 맞춰줘야 한다. 그 구조를 만드는 데 정치라는 도구가 쓰인다. 특히 민주당은 이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 우원식 의원의 명함과 사무실에는 ‘정치, 힘이 약한 자들의 가장 강한 무기’라는 말이 쓰여 있다.

국회 우원식 의원실에는 그의 을지로위원회 활동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왼쪽은 김용균, 오른쪽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모습. ⓒ시사IN 신선영

‘녹서’라는 말이 낯설다.

보통은 백서를 많이 낸다. 그동안 해왔던 활동을 정리하고 평가한다. 민주당은 정권을 두 번째 빼앗겼다. 국민의 평가는, 먹고사는 문제를 제대로 못 챙기고 자기들 하고 싶은 것만 했다는 것이다. 두 번의 실패가 굳으면 앞으로 집권은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 그건 대한민국의 비극이기도 하다. 재집권 전략을 잘 꾸려나가는 것이 민주당의 핵심 과제다. 그래서 녹서의 제목을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왜 실패했고, 무엇으로 도전하는가〉로 지었다.

‘재집권’은 을지로위원회의 중요 키워드다. 실제 을지로위원회도, 2012년 대선 패배 원인을 진단하며 만들어졌다.

당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컸다. 우리도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도 졌다. 곰곰이 생각했다. 왜 졌을까. 현장에서 신뢰를 잃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민주당은 집권 10년 동안 점차 현장을 찾는 일은 없어지고 국회 안에서만 이야기를 했다. 기득권화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2013년 최고위원으로 출마했다. 슬로건은 ‘현장에 답이 있다’였다. 출마 기자회견을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폐업시킨 진주의료원에서 했다. 전당대회 도중 남양유업 사태가 일어났다. ‘갑의 횡포, 을의 눈물’을 보며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을 불공정 문제 해결이라는 구체적 사안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을 다닐수록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결과, 최고위원 당선 일주일 만에 을지로위원회를 꾸렸다.

그게 10년이 됐다.

정당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한 위원회가 10년 넘게 지속됐다. 특별위원회가 상설위원회로 바뀌고, 전국위원회로까지 격상했다. 처음에는 정치권 특유의 ‘남양유업 사태를 위한 경제민주화 민생연대 특별위원회…’ 이런 이름이었다. 재미없다고 바꾸자고 했다. 그랬더니 ‘을지로위원회’라는 이름 가지고 또 말이 많았다. 경박하다는 등 조롱도 받았다. 성과로 증명했다. 정치의 본령은 누가 뭐래도 힘이 약한 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을지로위원회는 그 전까지 정치권이 민원 취급하던 문제를 경제민주화 의제로 끌어올렸다.

민원과 정치적 의제를 어떻게 구분하나?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면 된다. 권력에 의해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을이다.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고 얘기하지만 이전까진 굉장히 막연했다. 중산층·서민이 구조적 차원에서 겪는 문제까지도 민원 정도로 생각했다.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그 접근법과 과정을 을지로위원회가 제시했고, 민주당의 체질을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또 졌다.

집권하는 사이 많이 후퇴했다. 물론 한 일도 있다. 문재인 정부 동안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파견 해소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었다. 카드 수수료를 낮췄고,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했다. 핵심은 을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교섭권이다. 생태계와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걸 제대로 못했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에 가서는, 혁신만 부각되고 공정이 빠졌다. 혁신과 공정은 민주당 정부 경제정책의 두 축이어야 한다.

왜 못했나?

의지의 부족이기도 하고, 우리가 오만했다. 탄핵 때로 돌아가서 이야기해보자. 당시 촛불집회의 시작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치던 젊은 사람들이었다. 용역·파견 등의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절박함이 촛불로 번졌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2016년 4월 총선이 끝나고 지역구에서 당선 인사를 했다. 20대 중반쯤 되는 젊은 여성이 내게 다가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가만히 지켜보다, 내가 을지로위원장인 거 알고 왔나 싶어 ‘혹시 비정규직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비정규직보다 못한 용역’이라고 하더라. 그게 가슴에 아주 짙게 남았다. 그 절박한 친구들이 든 촛불이 각종 국정 농단 사건이 보도되면서 확 커졌다. 촛불 민심은 희망 없는 내 삶을 바꿔달라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검찰개혁과 같은 민주주의 과제만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경제민주화 이행으로까지 연결하는 개혁을 했어야 했다.

무엇이 오만하게 만들었나?

국민의 높은 지지만 가지고 밀고 가려 했다. 그때 민주당 의석이 123석이었다. 내가 원내대표였다. 처음 한두 번은 국민의 지지만 가지고 국회 표결을 밀어붙일 수 있다. 상황이 거듭될수록 저쪽에서 ‘왜 우리한테 명령만 하냐, 우리 요구도 들어줘’ 하는 상황이 생겼다. 정말 힘들었다. 교섭단체가 4개인데, 우리 빼고 3개 정당이 정말 야당이었다. 촛불 연대가 깨졌다. 탄핵은 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이 함께 했다. 그 인연을 빨리 묶어서 연합정치를 했어야 했다. 우리 지지도가 높다는 이유로 우리 힘만으로 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졌다.

‘권력기관 개혁이나 남북관계 정상화 등에 탄핵을 함께한 세력을 참여시키지 못했다는 자성과,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민주당은 사회경제 개혁 쪽으로 조금 더 갔으면 더 성과가 있었을 거라는 진단’을 책에서도 했다.

‘최저임금 1만원’은 문재인 대통령만의 공약이 아니었다. 2017년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 유승민 후보도 동의했다. 그런데 최저임금만 올리면 망한다. 우리가 내건 건 ‘소득주도 성장’이지 ‘임금주도 성장’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소득을 올려줘야 한다. 그 방법을 같이 찾아야 한다. 구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유통 재벌과 자영업자 사이 불공정의 문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경제민주화 과제를 같이 진행해야 한다. 패키지 정책이다. 그런데 최저임금만 올랐다. 결국 최저임금 정책은 을과 을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우원식 의원은 “민주당은 탄핵을 계기로 연합정치를 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시사IN 이명익

앞으로 민주당이 무언가 바꾸려고 한다면 연합정치가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그때 입법 개혁 연대를 만들었어야 했다. 탄핵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는데, 끈을 놓쳤다. 그 과제 수행에 성공했다면 검찰개혁도 사회경제 개혁도 해냈을 거다. 씻을 수 없는 과오다.

최근 통과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도 ‘문재인 정부 때 왜 안 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정부 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못했다. 그래서 다시 야당이 되고 어디 그런 문제가 생겨서 갈 때마다 내 발목을 콱 잡는다. ‘너희 정부 때 뭐 했냐’ ‘우원식 너는 뭐 한 거냐’ ‘그때 왜 죽을 각오로 안 했냐’라는 말이 제일 가슴에 남는다. 노란봉투법이라고 불리는데, 홍길동법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 자기 회사 사장을 사장이라 못 부르게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사장이 자기 회사 직원 아니라며 만날 이유 없다고 하니,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말이라도 한마디 하려고 노동자들이 옥상에 올라가고 굴뚝에 올라간다. 핵심은 교섭권을 주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중소기업·자영업자·가맹점·대리점·플랫폼 입점 업체 등에게 교섭권을 주자는 내용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다. 정치권에서 잊힌 사람들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주고, 그들에게 표를 달라고 해야 한다.

민주당의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그렇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는 윤석열 대통령의 폭정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다. 우리가 여기서 어떤 정책이나 희망을 준 건 아니다. 그런데 이 결과를 보고, 잘 관리하면 다음에 이길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이길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성하지 않고 계속 폭정을 하면. 그런데 그렇게 이긴 게 지난번 탄핵이다. 상대의 실수에 기댄 승리는 오래 못 간다. 우리가 왜 지난번에 실패했는지 제대로 분석하고, 노선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이번 정기국회가 중요하다. 예산과 법안으로 단초를 보여줘야 한다. ‘쟤들이 집권하면 저렇구나’ 하는 시금석이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뼈아프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

아직 그러한 목소리가 두드러지지는 않는 것 같다.

당내 친문(문재인)·친명(이재명) 세력이 한 덩어리가 되어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그것보단 더 넓혀야 한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은, 우리의 과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다. 우리의 부족한 점이 뭐였고 앞으로 뭘 만들어갈 거냐라는 점으로 봐야 한다.

녹서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진보·보수 언론의 비판이 있다. 세금 정책만으로 부동산을 잡으려 했다거나, 집 사고 싶은 욕망을 죄악시하는 태도(공급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대한 지적이다.

좀 더 중점적인 문제로 부동산 정책의 일관성을 꼽고 싶다. 대책을 16번 냈다. 코로나로 인한 특별한 상황까지를 고려하면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국민을 설득해갈 것인가, 또 어떤 정책 수단을 가지고 해나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민심과 동떨어진 얘기를 하고, 너무 많은 대책을 내놓았다. 집이 갖고 있는 ‘욕망의 성질’을 잘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도덕적 접근으로 문제를 제압하려고 했다. 그게 실패라고 생각한다.

2014년 을지로위원회는 아프리카 노동자 착취 논란이 일었던 현장을 찾아 문제 해결에 힘썼다.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우원식 의원. ⓒ시사IN 신선영

을지로위원회에 대한 비판도 있다.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꼭 낳지는 않는다’는 내용이다. ‘언더도그마(약자는 선하다는 관점)에 빠져 있다’는 공격도 있다.

선한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얘기는 구조를 겨냥한다. 불평등·불공정한 구조를 바꾸자는 것은, 굉장히 치열하고 근본적인 얘기다. 그저 좋은 말이 아니다. 모든 관계는 상대적이다. 중소기업은 갑도 되고 을도 된다. 교섭력이 약한 관계일 때 그것을 키워주는 것이, 불공정 해소다. 구조적인 불공정 문제 해결은 시대정신이다.

모두 ‘내가 을’이라고 주장하는 각자도생의 시절이기도 하다.

우리 정치권이 너무 못해서 그렇다. 공정한 구조를 만들고, 그 성과가 표가 되게 해야 한다. 효능감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당의 총노선을 만들기 위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 다른 생각을 하자는 사람들이 나타나 논쟁에 불을 붙였으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특히 당원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싶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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