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미래 사피엔스] [43] 바지 금지령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2023. 11. 2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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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5세기는 로마제국에 혼란과 치욕의 시대였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팍스 로마나’는 노인들의 기억에서만 존재했고, 로마군은 늘 야만인들에게 패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법들이 선포되기 시작한다. 우선 고대 건물을 허물어 건축자재로 사용하는 걸 금지시킨다. 그런 일들이 이미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말이겠다. 그리고 로마 남성은 바지를 입어서는 안 되며, 로마 시민은 자식에게 야만인 이름을 지어줘서는 안 된다는 규정까지 등장한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에게 바지는 야만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야만인의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로마군은 패배하고, 야만인들은 승리한다. 로마인은 야만인들에게 금과 노예를 바쳐야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고, 제국 대부분 장군과 장교는 이미 게르만 출신들의 몫이었다.

패자에게는 언제나 등을 돌리고 승자 편에 서려는 건 결국 인간의 본능일까? 찬란한 로마제국의 과거를 직접 경험한 적이 없는 로마 ‘신세대’들은 게르만들에 대한 부러움과 로망으로 가득했고, 어느덧 그들의 패션과 말투까지 모방하기 시작한다. 마치 K-팝 아이돌들이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같이 말이다.

이제 우리는 흥미로운 상상을 해볼 수 있겠다. 생성형 인공지능 덕분에 인간의 능력을 서서히 따라잡기 시작한 인공지능. 멀지 않은 미래에 모든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초지능’이 가능해진다면, ‘기계 선망’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생기지 않을까? 인간만 지능을 가졌던 시대를 기억하는 우리 ‘아날로그 꼰대’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초지능 인공지능이 당연한 미래 세대에게는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 마치 오늘날 몰래 문신을 하고 오듯, 40년, 50년 후 청소년들은 부모님들 몰래 머리에 칩을 심고, 눈에 적외선 센서를 부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기계가 점점 인간다워질 거라는 미래 인공지능 시대는 동시에 인간이 점점 기계스러워지려는 역설적 시대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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