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6·25 참전 반대했던 ‘미스터 공화당’
미 연방의회가 최근 통과시킨 내년도 임시 예산안에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이 빠진 건 ‘아메리칸 퍼스트’를 앞세운 공화당 내 고립주의 세력이 새로운 주류(主流)에 가까워졌음을 보여준다. 대선 주자 트럼프의 독주(獨走)와 별개로 의회 체제 내 공화당은 ‘미국의 군사력으로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개입 분위기가 우세했다. 그런데 지난달 정부 셧다운 위기와 뒤따른 하원의장 축출 사건 이후 분위기가 급반전되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선 “공화당이 해외 문제에 손 떼려 했던 1930년대로 돌아가느냐”는 논쟁이 한창이다.
올 초까지도 우크라이나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던 하원 공화당 의원들 수십 명이 ‘지원 반대’로 돌아섰다. 안보관이 갑자기 바뀐 게 아니다. 내년 지역구 선거를 앞두고 “왜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지키겠다며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유권자들 압박이 거세진 탓이란 분석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이 분쟁 지역에 참전하는 데 대한 반감이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37세 공화당 대선 후보 비벡 라마스와미는 최근 공화당 토론회에서 “우크라이나는 방어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 실리콘밸리 기업가 출신인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카고 바지 입은 코미디언’이라고 폄하했다. 우크라 지원을 지지하는 의원들에겐 “피에 굶주린 자들”이라고 했다. 그런 그를 미국의 2030들이 열렬히 지지하고 있다.
먼 나라 이야기일까. 70여 년 전 한국이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다. 로버트 태프트 상원의원은 정부 지출 제한, 세금 삭감 등 보수의 가치를 대변한다고 해서 ‘미스터 공화당(Mr. Republican)’으로 불렸다. 선거철마다 유력 공화당 대선 후보로 꼽혔다. 그가 미국의 6·25 참전을 반대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 태프트가 6·25 당시 한반도에서 미군을 빼야 한다며 한 말이다. ‘더러운 평화론’을 신봉하는 한국 민주당 대표가 틈만 나면 꺼내는 이야기를 70년 전 그가 했다. 태프트는 트루먼 대통령의 파병 결정에 “나였다면 (북의 침공에도) 가만히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전쟁 이듬해엔 “(미군을) 일본·대만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을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었다. 태프트가 아이젠하워와 경쟁했던 1952년은 공화당 경선 중 가장 치열했던 선거로 평가된다. 태프트가 승리했다면 한미 관계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현재 미 정치판의 혼란스러운 싸움의 결과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6·25 때 피 흘리며 한국을 지켰던 17개 유엔군사령부 회원국 대표단들이 “유사시 한국 방어를 위해 재참전하겠다”고 얼마 전 선언했다. 어느샌가 우리는 동맹의 소중한 안보 공약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약속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거라고 믿는다면, 얼마나 순진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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