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07] 아이들이 만든 ‘아트랜드’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3. 11. 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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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와 아이들, 아트랜드, 2016~진행중, 어린이용 색점토, 가변크기. /프루던스 커밍 어소시에이츠

미술가 서도호(徐道濩·1962~)가 어린 딸에게 색점토를 선물했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깔에 말랑말랑 부드러운 색점토는 어린 손으로 주물러도 자유롭게 원하는 모양이 되고, 이것저것 뒤섞으면 새로운 색이 나온다. 작가의 아이들은 색점토로 전에 없던 다양한 생물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작품이 늘어나자 이들이 머물러 살 세상도 필요했다. 아이들은 테이블 위에 새로운 나라를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을 공들여 세운 게 ‘아트랜드’다.

온갖 환상적 동식물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아트랜드’는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라고 한다. 여기서는 정부나 군주가 없는 대신 주민들이 회의를 하고, 수도승과 사원이 있지만 종교가 있는 게 아니며, 많은 생물 사이에 남녀 구별은 없다고 한다. 독을 내뿜는 위험한 나무도 있지만, 어쨌든 모든 생물은 ‘아트랜드’를 잘 지키고 있어서 기후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니 여기가 유토피아 아닌가.

‘아트랜드’는 올해 초까지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했고 미술관을 방문한 수많은 아이의 창작이 더해져 거대하고 복잡하며 신비로운 세상으로 자라났다. 현실과 다른 세계관, 거기서 살아갈 주민들, 새로운 질서를 스스로 만드는 놀이라고 하면 로블록스나 마인크래프트처럼 특히 어린이들 사이에서 절대적 인기를 누리는 게임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틀 안에서 놀기보다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을 원한다.

서도호는 그저 아이들이 ‘하게끔 놔뒀다’고 한다. 그의 부친 산정 서세옥 화백에게서 배운 게 바로 미술이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 ‘아트랜드’를 ‘서세옥의 아이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되겠다. 29일이 서세옥의 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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