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위 검은 상자만 덩그러니… “연극 보는 동안엔 평안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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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한 송이가 고인 물의 악취를 물리치듯, 진창에 빠진 삶을 끌어올리는 덴 타인의 작은 손길이면 족하다.
연극 '키리에' 속 죽음을 결심한 등장인물들은 누군가 지어준 따뜻한 밥과 '곧 해가 진다'는 걱정 한마디에 마음이 요동친다.
전 연출가는 "키리에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며 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뜻한다. 등장인물들은 자비를 주고받으며 자기 자신까지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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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30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키리에’다. 작품을 연출한 전인철 극단 돌파구 대표(48)를 24일 정동극장에서 만났다. 그는 “찰나의 자비(慈悲)는 오랜 시간 결심한 죽음마저 무너뜨린다”고 했다. 작품엔 결함과 결핍이 많은 인물들이 타인과 동물, 사물로부터 사랑을 배운다. 전 연출가는 “키리에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며 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뜻한다. 등장인물들은 자비를 주고받으며 자기 자신까지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희곡은 장영 작가가 썼다. 죽으러 온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독일의 검은 숲 근처에 한국인 여성 건축가가 지은 집. 30대에 과로사한 건축가의 영혼은 이 집에 깃들어 부족했던 과거의 기억을 곱씹는다. 60대 무용수 엠마가 근육이 굳어가는 남편과 이 집에 와, 죽으러 가는 사람들이 머물 여관으로 만들고, 죽음을 결심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제54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수상한 18년차 연출가인 그는 자비를 이해하기까지 많은 품이 들었다고 했다. 비(非)인간을 아우르는 사랑에 대해 알기 위해 배우, 창작진과 둘러앉아 책 ‘다르게 함께 살기 : 인간과 동물’을 한 쪽씩 소리 내 읽었다. 저자인 이동신 서울대 교수도 초청했다.
전 연출가는 약 20년 전 강원도의 한 사찰에서 한 철을 보낸 경험도 떠올렸다. 그는 “뒤늦게 연극 공부를 시작하며 불안해하던 내게 스님이 등록금을 내어주며 훗날 세상에 돌려주라고 하셨다. 그때 스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지 곱씹었다”고 했다.
검은 숲과 집, 극장까지 3개 공간이 배경인 무대엔 나무도 가구도 없다. 거대한 검은 상자뿐이다. 전 연출가는 “‘키리에’는 소설처럼 자유롭게 쓰였다. 휙휙 바뀌는 장소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단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방점을 뒀다”고 했다. 무대 장치는 최소화하고 배우들의 대사 속 촘촘한 묘사와 미세한 감정선을 강조했다. 배우 최희진과 백성철, 윤미경, 유은숙, 조어진 등이 출연한다.
“세상은 너무도 시끄러운데 이 대본을 읽을 때면 고요로 둘러싸인 듯했어요. 관객들도 ‘키리에’를 보는 동안 평안해지길 바랍니다.” 전석 2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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