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16] 마약 업자와 과거의 노예들

이응준 시인·소설가 2023. 11.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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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쯤이다. 친한 형이 있었다. 특이한 예술가이자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명문대 출신이고 강성 운동권이었다. 감옥에도 다녀왔는데, 순수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사회주의 혁명, 주사파, 그런 것은 이제 멀리 하는 생활인이었다. 한데 이 형은 술 취했을 적에 경찰과 군인만 눈에 띄면 욕하고 공격하는 괴벽(怪癖)이 있었다. 말리다가 함께 경찰서로 잡혀가 통사정 끝에 풀려났다.

이튿날, 어젯밤 왜 그랬냐고 물으니 대답이 이랬다. “제복(制服)을 보면 기분이 안 좋잖아.” 그 형 흉을 보자는 게 아니다. ‘나에 관한 얘기’를 하려는 거다. 나는 그의 그 말을 듣고는, ‘이상하다’ 혹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의 발광(發狂)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게 싫었지만, 예술가이자 지식인인 그가 제복 입은 이들에게 적의(敵意)나 혐오를 드러내는 게 ‘문화적 스타일’과 ‘진보적 뉘앙스’처럼 여겨졌다. 이게 나의 과거고, 내가 ‘속했던’ 세대(Generation)의 ‘사회적 무의식’이다. 물론 자기는 아니라고 펄쩍 뛸 사람도 많겠지. 그러나 ‘386′이라면 이런 식의 부조리에 알게 모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한 적이 없기 힘들다. 시대란 바다와 같아서, 바다에 사는 이상, 바다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2016년 8월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대선 후보 지지율이 급락하며 최대 위기를 맞는다. 7월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정책을 비판한 키즈르 칸을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키즈르의 아내까지 비꼬며 모욕한 게 사달이었다. 힐러리를 지지하는 무슬림 민주당 당원 칸 부부는 아들이 이라크에서 군복무 중 자살 폭탄 테러에 순국(殉國)한 ‘골드스타 패밀리(Gold Star family)’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유세장에서 우는 아이에게 면박까지 줘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골드스타 패밀리에 대한 예우만큼 절대적이진 않지만, 아이는 건드리지 않는 게 미국 정치의 불문율이다.

거대 야당이 순직 군인, 경찰, 소방관의 어린 유자녀들을 돕는 ‘히어로즈 패밀리’ 사업 예산 6억원 전액을 삭감했다. 온갖 해괴하고 안개에 가린 유공자들이 판을 치다 못해 동학난(東學亂) 유공자까지 등장하는 나라에서, 더구나 아이들에게 한 짓이다. 대신 운동권 카르텔의 범죄적 사업인 태양광 등속(等屬)의 예산은 4500억여 원 늘렸다. 미국 정치에서 이러면 개인은 퇴출이고 정당은 망한다. ‘암컷’이라고 불러도 침묵하는 여성 단체들과는 한통속이면서, 순국 군인, 경찰관, 소방관의 영령(英靈) ‘따위’는 유린해도 괜찮다고 믿는 국회의원들만이 저지르는 만행이다. 예전의 그 형과 ‘나’ 같은 사람들이 저들의 밥이자 토대다. 사람은 남의 노예가 되기 전 먼저 자기 과거의 노예가 되는 법이다. 마약 범죄를 소탕하는 일이 옳다면, 이 사회 ‘모든 연령층’에 마약처럼 퍼뜨려진 ‘386적(的)인 것들’을 걷어내는 일은 더 옳다. 정당(政黨)이 마약 업자 같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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