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지운 학교, 온라인에 다시 세웠다…“수복되는 그날 돌아갑니다”
“마을에 들이닥친 러시아군은 우리 교사들에게 ‘앞으로 주요 과목은 모두 러시아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인인데 왜 그래야 합니까. 제가 거절하자 그들은 학교와 집을 부수고 저를 체포해 ‘협조’를 압박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면전이 지난해 2월 발발한 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州) 노바 카호우카에서 중학교 교장으로 일하다 키이우로 피신한 이리나 두바스(53)씨는 “러시아인은 학교가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 이유로 교사들부터 포섭하려 들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그 어떤 교사도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두바스씨는 협조를 거부한 후 러시아 연방정보국(FSB)에 끌려가 겁박을 당했고 간신히 빠져나와 지난해 8월 노바 카호우카를 떠났다. 자포리자를 거쳐 키이우에 정착한 그는 그러나 단순한 피란민으로 구호 자금만 받고 살지 않았다. 두바스씨는 “러시아가 점령했지만 우리 학교는 그들의 바람대로 러시아어 학교가 되지 않았고 결국은 텅 비게 되었다. 단, 물리적 학교만 비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정든 학교는 두고 떠나야 했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공간이 있습니다. 코로나 때 잘 구축해둔 온라인 학교 말이죠.” 그가 교장이었던 ‘(노바 카호우카) 중등학교 3호’는 ‘우크라이나 최고 학교 100′에 꼽힐 정도로 우수한 학교였다.
두바스씨는 키이우에 정착한 후 뿔뿔이 흩어진 교사와 학생들을 수소문했다. 건강이나 다른 가족을 돌봐야 하는 등의 이유로 노바 카호우카에 남은 교사 4명을 제외하곤 모두 온라인에 학교를 다시 열자고 의기투합했다. 우크라이나의 여러 도시, 유럽의 여러 나라에 흩어진 이들을 모아 만든 인터넷 공간의 ‘중등학교 3호’는 지난해 9월 개학했다. 현재 교사 34명, 학생 632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때 학생이 670명이었으니 94%가 온라인 학교에 합류한 셈이다. 교사 임금 등 학교 운영비는 전처럼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원한다. 유니세프(UNICEF) 같은 비영리단체가 때때로 컴퓨터 등을 기부하기도 한다.
이 학교 교사와 학생의 가장 큰 바람은 언젠가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주를 되찾아 ‘진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다. 두바스씨는 “얼마 전 설문을 했는데 이미 새 도시에 완전히 뿌리내린 이들을 제외하고 80%가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더라. 지금은 여기저기 흩어져 만날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바로 그날, 나는 노바 카호우카로 향할 것”이라고 했다.
두바스씨는 지난 6월 댐이 붕괴해 노바 카호우카의 많은 건물이 물에 잠겼을 때도 학교는 무사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고 한다. “학교 바로 앞에서 물이 차오르길 멈췄다고 하더군요. 그리운 학교가 우리를 기다리며 잘 견뎌주고 있다는 신호 아닐까요. 우리는 침울하지 않습니다. 많이 웃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반드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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