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숨

2023. 11. 27.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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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사무실은 9층이었고, 가까운 도시 어디선가 지진이 났는지 건물 전체가 몹시도 흔들렸다.

잠깐의 정적 끝에 다시금 일정한 리듬으로 키보드를 두드렸을 뿐이다.

무엇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부쩍 생각이 많아져서 퇴근길에는 어두운 골목을 잠시 배회하기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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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인
나아진다는 게 뭘까
여러날 동안
여러달 동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우리를 주저하게 하는 것들
 
면담이 끝났다
그만둘 날이 정해졌다
 
사무실 이곳저곳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지진이 났대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략)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사무실은 9층이었고, 가까운 도시 어디선가 지진이 났는지 건물 전체가 몹시도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요동에 놀랐을 만도 한데 그곳의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누구도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 끝에 다시금 일정한 리듬으로 키보드를 두드렸을 뿐이다.

그 순간 우리를 주저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자리 그대로 붙박이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부쩍 생각이 많아져서 퇴근길에는 어두운 골목을 잠시 배회하기도 했을까. ‘숨’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발음해 본다. 이 단출한 말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얼마나 복잡한! 얼마나 무거운! 가끔은 숨을 위해 숨을 버리기도 하는 법인지. 그러고도 숨은 숨인지.

시의 뒷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바로잡을 기회는 있었다 분명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둔 것이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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