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범죄 가족의 책 판매
2015년 일본의 연쇄 살인마가 회고록을 냈다. 범죄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는 사건 파일의 ‘소년 A’를 필명으로 썼다. 자기 범행에 대해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뉘우침은 없었다. 발간 사흘 만에 6만7000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보다 잘 팔렸다. 수억원을 벌었다. 앞서 그의 부모도 아들에 대한 회고록을 썼다. 다만 인세 전액을 피해자 위로금으로 내놨다.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
▶미국 최초 여성 연쇄살인범 에일린 워노스는 남성 7명을 죽인 범행 과정과 불우한 삶을 적은 자서전 ‘몬스터’로 큰 인기로 끌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결국 형장의 이슬이 됐다. 아내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오 제이 심프슨도 자서전 ‘내가 했다면’으로 큰돈을 벌었다. 종교 지도자 오쇼 라즈니시가 1970년대 낸 책 ‘배꼽’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때 ‘살아있는 성자’라 불렸지만 살인 미수와 독극물 살포 혐의에 휘말려 비운의 말로를 맞았다. 연쇄살인마 강호순은 2009년 자신의 범행을 기록한 책을 내려 했다. “내 아들들이 인세라도 받게 하겠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아무도 책을 내주지 않았다.
▶학력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씨는 ‘4001′이란 자서전을 냈다. 출판사들이 억대 착수금을 제시하며 서로 책을 내주겠다고 경쟁했다. 그런데 반성 없이 미화 위주 내용이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처벌된 한명숙 전 총리는 자서전에서 “10년간 슬픔과 억울함으로 꾹꾹 눌러 진실을 썼다”고 했다. 하지만 진실은 없고 변명뿐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남은 2019년 아버지를 옹호하고 민주당을 비판하는 ‘트리거드’라는 책을 냈다. 한 달 만에 11만부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하지만 공화당이 이 책을 대량으로 구매해 후원자들에게 나눠준 사실이 드러났다. 아버지 미화에 책 판매를 이용한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의 아내 정경심씨가 옥중 수기집을 출간했다. 남편과 딸에 이어 거의 온 가족이 책을 펴낸 것이다. 조 전 장관은 ‘조국의 시간’ ‘디케의 눈물’ 등으로, 딸 조민씨는 신변잡기성 에세이로 잇따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조 전 장관은 인세 수입만 8억원이 넘는다. 극성 지지층이 책을 사준 결과다. 정씨가 받은 옥중 영치금도 2억40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 책에서 자신들 범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는 대목은 찾아볼 수 없다. 온 가족이 책 판매와 돈벌이 궁리뿐이다. 이런 가족도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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