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칼럼] 북한 위성과 전쟁억지력
북한이 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우주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발표를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지난 5월과 8월의 두 차례 실패를 솔직히 인정했던 점, 그리고 미국 등 제3국의 관측 결과와 대체로 일치한다는 점에서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지난 5월 서해상에 떨어진 잔해를 통해 확인한 결과 북한 위성에는 조잡한 수준의 구형 디지털카메라가 장착돼 있었다는 점, 설사 카메라 수준이 개선됐다 하더라도 실시간에 가까운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위성이 5~6대는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아직까지 북한이 이 위성을 우리에게 실질적 위협으로 사용하기엔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그러나 김정은이 이미 지시한 바와 같이 북한은 위성을 쏘아올리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는 점에서 위성 대수의 한계는 머지않아 극복할 것으로 보이고, 실패한 8월의 2차 시도 이후 불과 서너 달 만에 성공한 데에는 러시아의 직접적인 도움이 있었던 게 틀림없기 때문에 예상했던 지정학적 위험은 곧바로 현실이 됐음이 확인됐다. 러시아가 북한에 엔진 기술만 제공했는지 아니면 이미 위성사진 기술까지 제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절박한 입장에 처한 러시아가 북한제 탄약의 대가로 위성사진 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게다가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직접적 지원과 중국의 방관은 유엔 안보리를 무력화시키는 효과까지 갖고 있어 우리로선 골치 아픈 일이다.
일각에선 ‘9·19 군사합의’의 부분 폐기가 과연 적절한 대응인가를 놓고 논란이 있었지만, 지난 23일 북한이 이미 전면 폐기를 선언한 마당이라 지금 잘잘못을 따져봐야 아무 실익도 없게 됐다. 굳이 따지자면 북한은 이미 해안포 사격, 총격, 무인기 영공 침범 등 중대한 위반 사례만 해도 17건에 이르고 해안포 개방과 같은 비교적 경미한 위반 사례까지 따지면 3000번 이상 합의를 위반했기에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합의를 유지해봤자 전략적으로 우리에게 이득이 될 게 없는 상황이었다.
한반도 긴장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합의 유지를 바라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위협이 현실적이지 않으면 평화도 없다는 게 전략의 기본 중 기본이다. 상대의 합의 위반에 대해 아무 제재도 안 하면서 줄곧 경고만 해봤자 위반해도 괜찮다는 전례만 만들어줄 뿐이다. 긴장 수준이 높아지고 한 번 더 합의를 위반했다가는 정말 함께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야 비로소 협박용 무기를 내려놓는다는 게 전략론의 기본이다. 미국이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협상 직전 일부러 긴장 수준을 높였던 게 대표적 사례다.
그러니 이미 폐기된 ‘9·19 군사합의’를 놓고 왈가왈부를 계속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대응책 마련에 전념해야 할 때다. 당장 오는 30일 미국에서 발사하기로 예정된 정찰위성 성공에 만전을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팰컨9 발사체는 이미 여러 차례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는 신뢰성 높은 발사체이기는 하지만 만에 하나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군 최초의 정찰위성을 발사한다는 것은 한국형 킬체인의 고도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발의 원점을 선제 타격하는 킬체인은 현재로선 가장 중요한 억제 수단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킬체인 무용론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고, 무엇보다 미군과 달리 킬체인에 사용되는 한국군의 무기들은 한 번도 실전에 투입된 적이 없는 것들이다.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실제로 가능한지 확인해볼 기회는 없었다. 게다가 북한은 어떻게든 킬체인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해오고 있다. 우리가 위협을 감지하고 30분 이내에 원점을 타격하는 능력을 갖추는 동안 북한은 어떻게든 그 30분이 되기 전에 발사하는 능력을 개발해왔다는 뜻이다.
전쟁은 70년 전에 정전됐지만 전쟁이나 다름없는 무력 경쟁은 어쩌면 더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명운을 건 채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그리고 우리의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는 유연한 발사능력을 완성하려 하고 있다. 혹시라도 그리된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북한의 협박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이런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완벽하게 비대칭적인 억제능력을 완성해야 한다. 위협이 현실적으로 느껴져야 평화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사합의 논란을 넘어서 우리의 전쟁억지력의 현실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구해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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